나의 장난꾸러기 하나님

생애 최초의 교통사고- 하필 호주라니...

by 김필필

호주에서의 일상은 어느 것 하나 새롭지 않은 것이 없었고, 그렇다고 특별할 것도 없었다. 모두가 하는 일상생활을 장소와 공간을 달리하여 영위하는 새로움과 늘 하는 의식주 생활의 평범함이 호주의 하루하루를 채웠고, 우리는 그 새로움이 익숙함이 될 것을 기대하며 매 순간순간을 버티고 견디며 지냈다.


사람 사는 것은 모두 똑같지만, 그렇다고 모두 똑같지만은 않더라. 그들이 살아왔던 삶의 방식은 이방인에게는 전혀 새로운 어떤 것이었고, 그들의 조상들이 채워왔던 역사와 전통은 타인이 겪어내고 적응해야 하는 마음가짐 없이는 걸림돌에 불과했다. 태어나는 순간 자연스럽게 체득했을 그들의 자연환경과 가치관과 생활방식은 우리 같은 외지인들에게 극복해야 할 장애물이자 도전해야 하는 미션이었다.

새로운 삶을 살기 위해서는 세 가지 중 한 가지를 바꾸라고 말한다. 만나는 사람을 바꾸거나 하는 일을 바꾸고 난 사는 곳을 바꾸라고..... 그중 한 가지만 바꾸더라도 지금까지 살아왔던 삶과는 전혀 다른 삶을 살아볼 수 있다는 글을 읽은 적이 있다. 자의 반, 타의 반으로 나는 이 세 가지를 몽땅 바꾸게 되었다. 만나는 사람들은 한국 사람들에서 순수하기 그지없는 오지인들로, 하는 일은 대한민국 공무원에서 호주 시골학교 다니는 아이들의 보호자로, 사는 곳은 반구를 달리 한 남반구 호주의 삶으로.... 모든 것을 순식간에 바꾼 만큼 나의 삶은 확실하게 새로운 길을 가게 되었고, 이 모든 것은 절대자 하나님의 큰 그림이 아니고서는 불가능했다는 것을 늘 느껴왔던 터....

내가 가는 길이 우연이 아니고 나만의 선택이 아님을 잘 알고 있는 나의 호주 생활은 불안함 뒤에 삶에 안정감을 주고 원동력이 되는 믿음이 늘 존재하고 있었다.

호주 생활에 적응 중 단연 힘들었던 부분은 운전이었다. 우리나라와 반대되는 핸들을 가지고 세상 어디에도 없는 신호체계를 자랑하는 호주의 교통과 어마 무시한 벌금, 고속도로와 국도의 구분이 애매하고 다양한 제한속도를 자랑하는 시골길 마저 어느 것 하나 신경 쓰지 않아도 되는 것이 없었다. 20여 년의 영어교육을 통해 습득한 단어들과 손, 발을 이용한 제스처로 겨우 중고차를 장만하고 혹시 모를 사고를 대비해 영어 독해능력을 총동원하여 자동차 보험을 들고 난 후에 겨우 운전을 시작했다. 자동차가 없이는 일상생활이 어려운 호주의 생활 덕분에 운전은 급격하게 늘었고, 한국에서 15여 년의 무사고를 자랑하는 운전실력을 호주에서도 어김없이 발휘할 수 있게 되었다. 매일매일 아이들을 학교로 실어 나르고 마트며 관공서 또한 자동차로 다니며 호주 시골길에 적응해 갔고, 주말마다 한 시간의 고속도로를 달려 번잡한 시티에 위치한 한인 교회를 다니며 얼추 현지인 정도의 운전실력을 나름 인정받고 있던 어느 날......


일 년 전 7월의 어느 날, 남반구에 위치한 호주는 한 창 겨울의 문턱으로 다가가고 있었고 주일을 맞이한 우리는 시티에 위치한 교회를 가기 위해 차에 올랐다. 그런데 아무리 시동을 걸어도 시동이 걸리지 않았고, 당황한 우리는 문제의 원인이 무엇일까 찾기 시작했다. 아무래도 배터리의 문제인 것 같았는데 어떻게 해야 할지 도무지 생각이 떠오르지 않았고, 마침 일요일이라 각자 집에 있을 것 같은 이웃들의 집 문을 두드렸다. 어찌나 창피하던지, 괜히 발걸음이 무겁고 마음속으로 도움에 필요한 문장을 영작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아...... 영어 못하는 서러움이 또다시 푹 발 할 때 즈음 도착한 이웃집 문을 두드리면서 이미 세 문장쯤 완성되었던 내 마음속의 영작문은 흔적도 없이 사라진 후였다.


문 밖으로 나온 옆 집 두 아이의 엄마는 나의 손짓, 발짓과 학창 시절 영어교육으로 다져진 고급 어휘(?) 몇 마디로 - 예를 들어 배터리 이즈 곤, 데드 배터리.... 지금 생각해도 얼굴이 후끈거리는 고급진 어휘들이다 - 상황을 파악했으나 자기는 배터리 충전을 위한 리드선이 없다고 했다. 다시 찾아 나선 윗집은 아이가 넷이고 차를 세 대나 가지고 있었다. 그 집에는 반드시 있겠지 하는 기대로, 이번에는 고급 문장으로 도움을 요청하리라 하는 다짐으로 현관문에 다다랐지만, 튀어나오는 말들은 처음 집에서와 별반 다르지 않았다. 어쨌든 두 번째로 방문한 이웃집에는 다행히 리드선이 있었고, 친절하게도 직접 차를 몰고 와 우리 차가 다시 시동이 걸리게 도움을 주었다. 이웃집 아주머니가 어찌나 천사 같던지 땡큐 땡큐를 연발하며 아주머니의 갈길을 배웅하고 나자 동생의 표정이 심상치 않았다. 내가 이웃집을 방문한 사이 뭐라도 해 볼 요량으로, 그녀도 고급 어휘를 사용하여 우리가 들었던 자동차 보험회사에 도움을 요청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돌아온 답변은...... 우리 차는 보험에 가입되어 있지 않다는 것이었다.


이럴 수가.... 화들짝 놀란 우리는 약 6개월 전에 받았던 보험회사 이메일들과 은행계좌 등을 확인해 보았다. 역시 생활영어는 수능 영어와 다르더라..... 보험회사에 보냈던 계좌가 잘못되어 돈은 되돌아왔었고, 우리는 보험에 가입되지 않은 채 6개월가량을 호주 시골과 번잡한 시티를 활개 치고 다녔던 것이다. 무식하면 용감하다고 했던가..... 확인도 제대로 하지 않고 당연히 보험에 가입되었다고 안심한 채 운전했던 우리를 생각하자 간담이 서늘해졌다.

이렇게라도 알게 된 게 얼마나 다행이냐 생각하며 다시 보험에 정확하게 가입하였고, 자동차 배터리로 보험 가입이 되지 않았음을 알게 된 사실이 기가 막히고 신기했다. 이 또한 우연이 아니고 누군가의 간섭과 도움이 있다는 사실에 은연중 안심이 되기까지 했다.

그렇게 무사히 다시 보험에 가입하게 되었고, 전보다 더 안정된 마음으로 또다시 시작된 호주 생활. 정확히 일주일쯤 지난 7월의 넷째 주 금요일이 되었다. 금요일마다 아이들은 농구클럽의 원정경기를 다녔고, 그 주는 가까운 도시의 스테디움에서 경기가 잡혀있었다. 그리고 또 다른 옆 도시에서 겨울을 맞이한 눈꽃 페스티벌을 한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다. 겨울이지만 눈을 볼 기회가 적었던 우리가 살 던 지역에서 눈꽃 페스티벌은 귀한 볼거리였고, 마침 눈이 그리웠던 아이들의 바람대로 우리는 두 지역을 차례로 방문하기로 했다. 익숙한 지역이긴 했지만 두 지역을 방문하기엔 시간이 빠듯하기도 했고, 겨울엔 해가 빨리 지는 데다가 시골길은 가로등도 거의 없는 터라 운전자인 나는 긴장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나름 치밀하게 시간계획을 짜고 옷을 두툼하게 입은 후 원정에 나선 나는 먼저 이웃 도시의 눈꽃 페스티벌을 방문했다. 페스티벌에는 인근 산에서 공수해 온 눈으로 작은 동산을 만들어 어린이들이 눈을 만지고 놀 수 있게 만들어 놓은 장소, 눈사람을 만들 수 있는 공간 등이 있었고 다양한 푸드트럭과 간단한 스포츠를 할 수 있는 공간들을 마련해 놓고 있었다. 한국처럼 멋진 페스티벌과 축제 분위기는 없었지만 호주 사람들처럼 소소하고 소박한 즐거움이 있었다. 초조하게 시간을 체크한 후, 아이들을 재촉하여 푸드트럭에서 판매하는 핫도그를 하나씩 들고 차에 탑승했다. 이제는 고속도로를 달려 옆 도시의 농구장을 찾아 농구클럽 경기에 참여해야 했다.


7시에 시작하는 경기에 맞춰 6시 30분쯤 출발했고, 익숙한 도시들이긴 했지만, 두 도시를 연결하는 고속도로는 처음 달려보았기에 약간 긴장이 되었다. 더군다나 겨울의 문턱에 들어선 호주의 7월의 저녁은 벌써 해가 사라진 지 오래였다. 가로등이 드문 시골길에서 고속도로로 통하는 입구를 찾아야 했다. 평소 시간 약속에 예민한 편이기도 했고, 계획한 일을 깔끔하게 처리하는 게 몸에 배어 있던 터에 그 날의 운전이 미션처럼 느껴졌다. 게다가 표지판은 영어였다..... 흐드드드드드.....


번닙이라는 도시로 가야 하는데 내비게이션이 알려주는 고속도로 입구 표지판은 멜버른을 가리키고 있었다. 방향지시등을 오른쪽으로 넣고, (우리나라와 반대이므로 상대 차선을 가로질러 고속도로에 들어가야 했다.) 기다리는데 바로 50미터 앞에 번닙으로 가는 고속도로 입구가 있었다. 내비게이션에서 잘 보이지 않던 미세한 차이가 50미터 앞의 고속도로 입구였던 것이다. 당황한 나는 다시 왼쪽 깜빡이를 넣고 조심스럽게 천천히 50미터 전방의 고속도로 진입로로 다시 전진했다.


사방에서 전조등이 번쩍이고 어딘가에서 귀를 찢는 듯한 경적소리가 들렸다. 시속 80킬로미터 도로에서 바로 50미터 앞의 잘

보이지 않은 고속도로 진입로를 찾아야 했기에 거북이처럼 주행하고 있던 우리 차에 굉음을 내며 덤벼드는 자동차가 있었다. 아마도 같은 고속도로 진입로로 들어가고자 하는 자동차였으리라, 거북이 같은 주행속도에 경적을 울리면서 우리 차를 앞질러 차를 대려고 했던 것 같다. 갑자기 '쿵' 하는 묵직한 굉음과 함께 차가 흔들렸고, 경적을 울리던 차는 우리 앞을 지나쳐 저만큼 미끄러져 멈췄다. 갑자기 시간이 멈춘 것 같았다. 뒷 자석에 있는 아이들이 걱정되었다. 다행히 거북이 주행 중이었기에 물리적인 충격은 크지 않았지만 놀랐을 아이들을 생각하면 끔찍했다. 아이들은 소리에 놀라고 차의 묵직한 흔들림에 또 한 번 놀란 듯 놀란 토끼 눈으로 멍하게 서로를 바라볼 뿐 다친 곳은 없는 듯했다. 갑자기 추위가 몰려온 듯 손이 달달 떨리고 이가 부딪히는 소리가 내 귀에 들리는 것 같았다. 한국에서 15년 이상 무사고였을 정도로 사고처리 경험도 없는 데다고 그곳은 호주였다. 사고처리 방법도 생소할 것이고, 무엇보다 더 영어로 상황을 설명하고 처리해야 한다는 부담감에 정신이 번쩍 났다. 아이들을 안심시키고 조심히 차에서 내렸다. 마침 상대방 차량 운전자도 비상 깜빡이를 켜고 차에서 내리고 있었다. 양성평등이든 뭐든 그런 걸 따질 겨를도 없었고, 편견이라도 좋으니 성격 좋은 여성이길 바랐다. 멀리서도 몸 이곳저곳에 피어싱을 하고 짙게 화장을 한 모습이 심상치 않았다. 키도 덩치도 나보다 큰 호주 젊은이는 성큼성큼 다가왔다. 여자여서 그나마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차 상태를 살펴보는 그녀는 사뭇 진지하고 심각했다. 달달 떨리는 손 부여잡고 그녀의 눈치 살피랴 내 차의 상태 살피랴 정신이 없으면서도 호주에서 사고가 처음이다, 어떻게 처리하면 되느냐 더듬더듬 묻고 있는 나는 또 사뭇 그럴싸했다. 이 와중에 근본 없는 자기애는 또 무엇인지......


정신없이 내 신분증과 운전면허증을 내밀고 상대방 운전면허증을 요구했다. 동생은 옆에서 찰칵찰칵 전문가 포스로 사고 현장과 차량 상태들을 사진에 담고 있었다.

그런데 지갑에서 자신의 신분증을 꺼내 나에게 내미는 그녀의 손이 나 못지않게 덜덜 떨리고 있었다. 신분증을 보니 이제 갓 20살을 넘긴 나이였고, 화장과 피어싱을 걷어낸 옛 된 얼굴은 두려움과 충격과 공포로 얼룩져있었다. 세월의 연륜이 이런 것인가. 그녀의 떨리는 손과 두려움에 휩싸인 얼굴을 보고 나이를 확인하는 순간 떨리는 내 가슴이 누그러지고 마음이 진정되었다. 그녀는 얼마나 떨리고 무서웠을까 이해가 되고 호주에서 난생처음 교통사고를 겪는 나보다 더 경황이 없고 당황했을 그녀가 걱정이 되었다. 서로의 운전면허증을 사진으로 남기고 보험에 들었는지 서로 확인한 후 보험회사에 전화로 사고처리를 맡기기로 했다. 이제 끝난 거냐고 묻는 나에게 그녀는 그런 것 같다고 말하며 한 숨을 쉬었다. 그녀의 한 숨에 나도 모르게 손을 뻗어 한참이나 위에 있는 그녀의 어깨를 토닥이며 '아유 오케이?'라고 물었다. 놀란 그녀의 가슴을 다독여 주고 다 괜찮다고 안심시켜 주고 싶었다. 한국이었다면 별 거 아니니 걱정하지 말라고 안심하라고 말해주고 싶었지만, '아유 오케이'로 모든 하고 싶은 말들을 갈음하면서 우리는 헤어졌다.


사고 처리 때문에 늦게 도착한 농구 경기에서 극적인 우승을 하면서 마음을 추스르고 다시 돌아오는 차 안. 한 껏 부풀었던 하는 호주에서조차 베스트 드라이버라는 오만과 만용이 수그러들었고 다시 한번 초심으로 돌아가 안전운전을 마음에 새기며 천천히 집으로 돌아왔다. 사고 처리를 위해 보험회사에 영어로 전화해야 하는 인생 최대의 난관이 눈 앞으로 다가왔다는 불안감에 심장박동이 빨라지고 머리가 지끈거리며 폐까지 입 밖으로 나올 정도로 한 숨 쉬기를 잠시. 갑자기.......... 빠듯한 호주 생활에 보험회사에 사고처리 비용 청구할 수 있는 게 어딘가 라는 생각이 들면서 보험 들길 잘했다..... 그런데 보험을 언제 들었더라......


헉........ 그리고 바로 일주일도 되기 전 말도 안 되게 자동차 배터리가 방전되면서 우리 차가 보험에 가입되어 있지 않았다는 것을 발견했던 사실이 떠올랐다. 우연 같은 배터리 방전 에피소드로 보험 가입을 확인하게 하고 서둘러 보험에 다시 가입한 후 겪은 생애 최초의 교통사고라니..... 이렇게 드라마틱하고 신기한 일이 또 있을까....... 참 신기하고 재미있게 우리를 이끄는 힘을 느꼈다.

하나님이 이런저런 상황들을 구상하고 배치하여 우리를 호주로 보내시고 호주 일상 하나하나를 설계하는 장면이 떠올랐다. 그런데 이것들이 어리바리하게 보험을 빼먹었네.... 하나님이 얼마나 애가 타고 답답하셨을까. 아무리 무언가 계시를 줘도 룰루랄라 속도 없이 냅다 운전하고 다니는 꼴이 얼마나 물가에 내놓은 애를 보는 부모의 심정 같았을까. 에라이~~ 이런 마음으로 배터리 하나 꺼 놓으시며, 그렇게라도 '요놈들아 얼른 보험 다시 들어라~ 큰 일 난다' 하셨을 것을 생각하니 웃음이 났다. 우연치고는 절묘한 타이밍으로 배터리 방전과 보험회사 확인 그리고 교통사고를 맞이한 난 또 생각해 본다. 이렇든 저렇든 이것저것 장치를 하고 설계를 하시면서 우리의 호주 생활을 지켜보고 계실 하나님을..... 아무래도 나의 하나님은 장난꾸러기가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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