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음이여...

눈을 들어보니 온데간데없네요

by 김필필

만물이 소생하는 봄의 환희를 지나 인생의 젊음만큼이나 거침없고 투박한 여름의 한가운데에 진초록 나무에 살랑이는 바람조차 그 무게감이 느껴지는 오후 시간...


모든 것은 세상에 나고 존재가 만발하고 깊이가 여물어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는 생사의 과정 안에 놓여있다. 그것이 길가에 무더기로 핀 잡초이건 귀하디 귀한 영물이건 피해 갈 수 없는 길이다. 하물며 발길에 차이는 돌부리 조차 바위에서 떼어져 나와 둥글둥글한 돌멩이의 과정을 거쳐 점차 마모되고 모래알이 되어가면서 그 또한 다르지 않은 세상의 이치에 속해 있을진대 나는 무슨 배짱으로 그 지난한 과정이 한편에 비켜서서 기다려 줄 거라고 믿었던가.

찬란한 젊음이 더디 가길 바라면서도 당연하게 아직도 한창인 젊음의 밭에 뿌리를 내리고 있을 줄로 알았다.


몸보신 하나 없이 피로를 모르던 몸뚱이도, 아무것도 바르지 않아도 생기 넘치던 피부도, 세상이 나를 중심으로 돌아간다는 확신에 가까운 자신감도 지구의 중력을 느끼며 더디 가고 겸손하게 땅을 향해 떨어져 갈 때....


자꾸 늘어지는 사지는 누가 잡아당기는 것이고, 계절마다 홍역 치루 듯 병과 공생하는 몸뚱이가 덧없이 느려지는 것은 또 무엇의 작용이란 말인가.

찬란할 때 그 빛을 몰랐고, 날것의 생생함을 촌스럽다 여겼으며 세상이 다 아름다워 보이던 마법은 그 어떤 주문으로도 깨어지지 않을 줄 알았다.


인간의 어리석음은 소중한 것을 잃고 난 후에야 아쉬워하고 돌아보는구나. 젊음이 있었던 듯도 하건만, 이미 멀어져 가는 생생함과 찬란함과 눈부심의 끝자락을 부여잡고 '그땐 그랬지'로 아쉬움을 달래 본다.


날숨에서조차 느껴지던 에너지가 빠져나가 쇠하는 기력을 느끼는 예민함을 바라보며 창밖에 한창인 여름을 하염없이 부러워한다.


박완서의 글이 생각난다.


그래, 실컷 젊음을 낭비하려무나.


넘칠 때 낭비하는 건 죄가 아니라 미덕이다.


낭비하지 못하고 아껴둔다고 그게


영원히 네 소유가 되는 건 아니란다....



- 박완서 , <그 남자네 집> 中



실컷 낭비조차 못해봤던 나의 젊음이여....

하나하나 모아 아껴뒀다 쓰려했건만,

쥘 수도 없는 것, 어느 센가 날아가버렸다.

허공에 떠도는 나의 젊은 날을 붙잡아 두고 싶지만

걸음걸이마다 덕지덕지 매달린 시간에 몸도 마음도 무겁다.

내가 가진 것이 모두 내 것인 줄 알았는데

몸도 마음도.... 시간도 내 편이 아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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