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의를 권리로 착각하는 사람들

by 량과장

나는 좋은 사람이고 싶었다.


먼저 나누고, 먼저 베풀고, 먼저 손 내미는 사람이 결국 오래 남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누군가를 도와주고 나면 마음이 가벼워졌고, 내가 꽤 괜찮은 인간이 된 것 같았다. 그래서 나는 자주 주었고, 쉽게 양보했고, 생각보다 오래 참았다.


호의를 권리로 착각하는 사람들을 만나기 전까지는.


호의가 당연해지자 사람들의 태도는 변했다. 무언가를 주면 자연스럽게 받았고, 아무것도 해주지 않으면 이유를 궁금해했다. 더 준 날보다 덜 준 날이 또렷하게 기억되는 관계들. 나는 분명 호의로 베풀기 시작했는데, 어느새 호의는 의무가 되어 있었다.


그때 알았다.


한 번의 호의는 감동이 되지만, 반복되면 기준이 된다는 것을.



커피 한 잔이 일상이 됐다


친하게 지내던 지인이 있었다. 가끔 밥도 사고, 커피도 샀다. 별생각 없이 한 행동들이었다.


그는 나를 만날 때마다 밥집을 미리 골라왔다. 처음에는 그냥 부지런한 사람인 줄로만 알았다. 꽤 괜찮은 식당들만 골라 찾아왔으니까. 딱 한 가지 이상한 점이 있다면, 계산해야 할 타이밍만 다가오면 그가 자리를 비웠다는 것이다.


한 번은 내가 잠깐 전화를 받으러 나간 사이, 그가 먼저 계산을 끝낸 채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나는 고마운 마음에 다음에 내가 내겠다고 말했다. 그 말을 들은 그의 표정이 미묘하게 굳었다.


“어, 그래.”


그 한마디가 이상하게 내 발목을 붙잡았다. 열 번 중 한 번 상대가 계산을 했을 뿐인데, 갚아야 할 빚이 생긴 것 같았다. 이상했다. 내가 밥을 사면 일상이었고, 상대가 밥을 사면 사건이 됐다.


한 번의 호의가 어떻게 정기구독이 됐는지 나는 정확히 기억하지 못한다.

그냥 어느 날 그렇게 되어 있었다.



기준은 높아지기만 한다


직장에서도 비슷한 일이 있었다.

처음 생긴 후배에게 나는 꽤 신경을 써줬다. 모르는 게 있으면 알려줬고, 어려운 일이 있으면 같이 풀었고, 힘들어 보이면 밥도 샀다. 처음에 후배는 감사해했다. 진심이 느껴졌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후배의 태도가 바뀌었다. 모르는 게 생기면 고민하지 않고 바로 물어봤다. 어려운 일이 생기면 나에게 가져왔다. 밥은 늘 내가 샀다.


바쁜 일정에 쫓기던 어느 날, 나는 그의 연락에 바로 답하지 못했다. 그러자 후배가 물었다.


“선배 요즘 많이 바쁘세요?”


그 말 안에는 왜 이렇게 늦게 답하느냐는 뉘앙스가 섞여 있었다.


나는 그 순간 내가 언제부터 24시간 응답 의무를 갖게 됐는지 생각해 봤다. 기억이 없었다. 계약서에 서명한 적도 없었다. 그저 잘해줬을 뿐인데, 어느새 친절은 기준이 되어 있었다.


그리고 한번 생긴 기준은 낮아지지 않았다.

높아지기만 했다.



고마움의 유통기한


오래 알고 지낸 친구가 있었다. 나는 그 친구가 힘들 때마다 시간을 냈다. 밤늦게 전화를 받은 적도 있었고, 급하게 달려간 적도 있었다. 그때마다 친구는 고마워했다.


그러던 어느 날 내게도 힘든 일이 생겼다. 친구에게 연락을 했더니 일정이 빠듯하다고 했고, 나는 괜찮다고 했다. 며칠 뒤 친구는 또 내게 연락했다. 힘든 일이 있다면서. 나는 그녀를 위해 시간을 냈고, 그날 친구는 말했다.


“항상 옆에 있어줘서 고마워.”


항상. 그 단어가 걸렸다. 항상 있어줘야 한다는 전제가 이미 깔려 있었다.



배려는 의무가 아니다


그들이 못된 사람이냐고 하면, 꼭 그런 것은 아니었다.

받다 보니 당연해지고, 당연해지다 보니 기대하게 되고, 기대하다 보니 없으면 서운해할 뿐이었다. 못된 마음이 아니라 나쁜 습관에 더 가까웠다.




그들이 생각하는 나의 역할은 항상 고정돼 있었다. 베푸는 쪽. 챙기는 쪽. 늘 있어주는 쪽.


그 역할을 내려놓으려고 하면 관계가 흔들렸다. 내가 달라진 게 아니라 원래대로 돌아가는 건데도, 상대 눈에는 내가 변한 사람이 됐다.


나는 좋은 사람이고 싶었다.

그리고 그 마음이 결국, 누군가가 내 호의를 권리처럼 여기게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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