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tGPT의 등장 이후, 광고 업계에는 이상 기류가 흘렀다.
“미래에는 AI가 마케터를 대체할 수 있지 않을까요? “라는 질문을 받는 일이 부쩍 많아졌다.
처음에는 ‘뭘 모르는 소리’로 여겨졌던 이 질문이, 진지한 고민으로 바뀌는 데에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AI 기술이 빠르게 발전하면서, 일정 수준 이상의 카피와 로고, 톤 앤 매너 가이드, 마케팅 전략안 등을 불과 수분 만에 생성할 수 있게 됐다.
그렇다고 해서 AI가 마케터를 완전히 대체할 수 있게 되었다는 말은 아니다.
AI가 만든 콘텐츠가 넘쳐날수록, 오히려 사람 냄새나는 작업물에 대한 수요가 더욱 뚜렷해졌다.
만들기는 쉬워졌지만, 차별화는 어려워졌다.
광고 업계에 AI가 도입되면서 가장 먼저 드러난 변화는 콘텐츠 제작 방식이었다. 하루 만에 수십 개의 카피와 이미지를 만들어볼 수 있게 되었으니 당연한 일이다. Midjourney부터 Runway, ChatGPT까지, AI 덕분에 작업에 드는 리소스가 획기적으로 줄어들었다.
AI가 가져다준 장점은 명확하다.
- 콘텐츠 제작 비용과 시간이 눈에 띄게 줄었고
- A/B 테스트도 빠르게 시도할 수 있으며
- 초개인화 콘텐츠도 대량으로 가능해졌다
그러나 단점도 분명히 있다.
- 모든 브랜드가 비슷해지기 시작했고
- 색다른 시도를 찾아보기 어려워졌으며
- 스스로 기획하는 창작자를 찾기가 힘들어졌다
AI로 만들어진 브랜드의 다중 정체성
AI는 고객의 이름뿐 아니라, 위치·라이프스타일·심리 상태까지 면밀하게 파악해 적재적소에 고객이 혹할 만한 메시지를 노출한다. 메타 Asc+, 구글 Pmax, 네이버 카탈로그 광고의 효율이 유독 높은 이유도 여기에 있다.
물론, AI 기술이 '효율 극대화'라는 꿈같은 결과만을 가져온 것은 아니다.
개인화된 커뮤니케이션을 지향하다 보니, 브랜드의 아이덴티티가 흐려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 도래했다. 자연스레, AI의 개인화 능력을 활용하되 브랜드 고유의 정체성은 잃지 않는 방법을 찾는 이들도 많아졌다. Boost Juice도 그중 하나였다.
Boost Juice의 사례
Boost Juice는 AI를 활용해 개별 고객에게 맞춤형 스무디를 추천하되, 커뮤니케이션 전반에서 “건강한 에너지”, “자연스러운 활력”이라는 핵심 메시지만큼은 고수했다.
시드니 오피스 워커에게는 “오후 3시 슬럼프 탈출용”, 멜버른 피트니스 마니아에게는 “운동 후 회복용”으로 제품을 다르게 포지셔닝했지만, 근본적인 브랜드 톤은 동일하게 유지했다.
덕분에, 매출도 브랜드의 아이덴티티도 공고히 할 구 있었다.
AI 시대의 3가지 역설과 해법
초개인화 역설 (Hyper-Personalization Paradox)
AI를 활용해 제공하는 개인화된 경험이 오히려 불편함을 야기하기 시작했다. 너무 정확한 예측이 ‘감시받는다’는 느낌이나 ‘조작당한다’는 불안감을 유발했기 때문이다.
이러한 심리를 꿰뚫어 본 브랜드들은 개인화 서비스의 수준을 적절히 조절하기 시작했다.
Domain의 사례
호주 최대 부동산 플랫폼 Domain은 사용자의 검색 이력과 소득 추정치로 매우 정확한 매물을 추천할 수 있었지만, 의도적으로 ‘무작위 추천 서비스’도 활용했다.
소득 대비 너무 비싼 집도 가끔 보여주고, 완전히 다른 지역의 매물도 섞어 “혹시 관심 있으실까요? “라는 톤으로 제안하는 형태로 말이다.
사용자가 “왜 이걸 추천했나요?” 버튼을 누르면 “때로는 예상 밖의 선택이 인생을 바꿀 수 있어서요”라는 메시지를 보여줌으로써 초개인화 경험에 대한 거부감을 상쇄하기 위해서였다.
진정성 프리미엄 (Authenticity Premium)
AI가 완벽한 결과물을 제공하기 시작하면서, 역설적으로 불완전하지만 진정성 있는 작업물의 가치가 높아졌다. 완벽한 AI 생성 콘텐츠보다 약간 어눌하지만 진심이 담긴 사람의 메시지가 더 큰 감동을 주는 현상이 발생하기 시작한 것이다.
KeepCup의 사례
KeepCup은 2023년 Plastic Free July 캠페인에서 광고용으로 연출된 완벽한 이미지 대신, 실제 고객과 카페 바리스타들이 촬영한 생활 속 컵 사진을 활용했다. 고객이 KeepCup을 사용한 모습을 SNS에 공유하면 환경 단체에 기부가 이뤄지는 방식으로, 참여 과정 자체가 브랜드 메시지가 됐다. Keepcup은 ‘당신의 컵’이라는 무언의 메시지를 통해 생활 속 진정성을 부각했고, 그 덕분에 브랜드 커뮤니티의 자발적인 확산이 일어났다.
효율성 편향 (Efficiency Bias)
AI가 제공하는 효율성에 지나치게 의존하다 보면, 의미 있는 가치를 종종 놓치게 된다. ROI로 측정하기 어려운 감정적 가치를 간과할 위험이 있다는 의미다.
Bank Australia의 사례
Bank Australia는 2024년 Clean Money 캠페인을 통해 “당신의 돈이 어디에 쓰이는지가 세상을 바꾼다”는 메시지를 전했다. 이 캠페인은 AI 제작물이 아니라, 실제 고객의 목소리와 인터뷰를 중심으로 구성됐다.
2025년 ‘The Bank Australia Needs’ 캠페인에서는 150명이 넘는 고객이 직접 촬영에 참여해 자신의 가치관과 은행을 선택한 이유를 이야기했으며, 효율보다는 진정성과 신뢰를 우선시한 결과 Bank Australia는 ‘지역과 함께하는 은행’이라는 이미지를 한층 강화할 수 있었고 장기적으로 고객 충성도를 높일 수 있었다.
AI 시대의 브랜딩 실무 가이드
1단계: AI와 인간의 역할 분담 체계 구축
AI의 담당 업무 (자동화 영역)
- 초기 아이디어 생성: 브레인스토밍 세션에서 AI로 100개 아이디어 도출 후 인간이 필터링
- 배리에이션 제작: 선정된 콘셉트를 바탕으로 다양한 버전의 카피·이미지·영상 대량 생성
- 데이터 분석: 고객 반응·트렌드 분석·경쟁사 모니터링을 AI가 24시간 수행
- A/B 테스트 운영: 실시간 성과 측정 및 최적화 자동 실행
인간의 담당 업무 (크리에이티브 및 전략 영역)
- 브랜드 전략 수립: 핵심 가치·포지셔닝·장기 비전 설정
- 최종 의사결정: AI 제안 중 브랜드에 가장 적합한 옵션 선별
- 감정적 스토리텔링: 데이터로 측정되지 않는 고객 감정과 문화적 맥락 해석
- 위기관리: 예상치 못한 상황에서의 브랜드 대응 전략
실무 워크플로우
기획 단계 (1~2일): 인간이 전략 방향 설정 → AI가 관련 데이터 분석 및 인사이트 제공
아이디어 개발 (1일): AI로 50~100개 콘셉트 생성 → 인간이 브랜드 적합성 기준으로 10개 선별
콘텐츠 제작 (2~3일): AI로 선별된 콘셉트의 다양한 버전 제작 → 인간이 감정적 임팩트 기준으로 최종 선택
시장 테스트 (1주): AI 툴로 A/B 테스트 실행 → 인간이 결과 해석 및 브랜드 전략 반영 여부 결정
최적화 (지속): AI로 실시간 성과 모니터링 → 인간이 주간 단위 전략 조정
2단계: 브랜드 정체성 보호 시스템 구축
브랜드 아이덴티티 체크 리스트
- 미션 스테이트먼트: 모든 AI 생성 콘텐츠가 브랜드 미션과 일치하는가?
- 핵심 가치: 3~5개의 핵심 가치가 모든 메시지에 반영되고 있는가?
- 브랜드 보이스: 톤 앤 매너 가이드라인을 AI 프롬프트에 명확히 포함했는가?
- 시각적 일관성: 로고·컬러·폰트 사용 규칙이 지켜지고 있는가?
[타깃] 30-40대 고소득 여성 / 뷰티 관심자
[콘텐츠 유형] 블로그 글 / 인스타그램 포스트 / 광고 카피
[톤 앤 매너] 전문적이지만 친근하게, 감성적·따뜻하게
[금지 사항] 본문 내 1인칭 표현 제외
[문단 구조]
1. 서론(트렌드와 연계, 200~300자)
2. 본론 1: (핵심키워드)란? (300자)
3. 본론 2: (핵심키워드)의 효과 (300자)
4. 본론 3: (브랜드명)의 (핵심키워드) (300자)
5. 결론(CTA 포함, 200~300자)
[유의 사항] 정확한 정보, 공신력 있는 정보만 제공할 것, 출처도 표기
감정 인사이트 수집 도구
- 소셜 리스닝: AI로 브랜드 관련 온라인 대화의 감정 분석 (긍정/부정/중립 비율)
- 고객 여정 매핑: 각 터치포인트에서의 고객 감정 변화 추적
- 실시간 피드백: 콘텐츠 게시 후 첫 1시간 내 반응 분석
감정을 브랜드 메시지에 반영하는 방법
감정 패턴 인식: “고객들이 언제 가장 좌절감을 느끼는가?”
원인 분석: “왜 그 시점에 그런 감정을 느끼는가?”
소구점 발굴: “우리 브랜드가 어떻게 도움이 될 수 있는가?”
메시지 개발: “감정적 니즈를 해결하는 구체적인 메시지는?”
효과 검증: “실제로 고객 감정이 개선되었는가?”
감정을 반영한 메시지의 성과를 측정하는 지표
- 충성도 측정: 브랜드에 대한 고객의 감정적 애착 정도(월간 측정)
- 감정 회복 시간: 부정적 사건 후 고객 감정이 회복되는 데 걸리는 시간
- 감정 증폭률: 긍정적 브랜드 경험이 고객 추천으로 이어지는 비율
4단계: 진정성 구현 실행 방안
진정성을 담은 콘텐츠 기획
- 실패담 공유: 월 1회 브랜드의 시행착오나 학습 과정 공개
- 직원 스토리: 분기별 실제 직원들의 개인적 경험과 브랜드 가치 연결
- 과정 공개: 제품 개발 및 의사결정 과정을 실시간으로 공개
- 고객 참여 유도: 브랜드 결정에 고객 의견을 실제 반영하고 그 과정 공유
진정성 측정 지표
- 신뢰도 점수: 고객이 브랜드를 얼마나 진실하다고 느끼는가 (NPS 방식)
- 참여 수준: 고객이 브랜드 콘텐츠에 얼마나 깊이 관여하는가 (댓글 및 공유 현황 분석)
- 충성 고객 비율: 적극적으로 브랜드를 방어하고 추천하는 고객 비율
위험 관리
- 시나리오 분석: 발생가능한 리스크와 대응 방안 사전 준비
- 일관성 점검: 브랜드 메시지와 실제 액션의 일치 여부 주간 점검
- 피드백 루프: 브랜드 진정성에 의문을 제기하는 고객에 대응할 수 있는 방안 마련
5단계: ROI 측정 및 최적화
정량적 지표
- 브랜드 인지도 상승률: AI 도입 전후 인지도 변화
- 콘텐츠 제작 효율성: 시간당 생산되는 콘텐츠 수량과 품질
- 고객 획득 비용: AI 활용으로 얻을 수 있는 마케팅 비용 절감 효과
- 전환율 개선: 개인화된 메시지 도입 후 전환율에서 드러난 변화
정성적 지표
- 고객의 감정 지수: 고객이 브랜드에 대해 느끼는 긍정적인 감정
- 차별화 인식: 경쟁사 대비 브랜드만의 차별점을 인식하는 정도
- 장기 충성도: 지속적으로 고객과의 관계를 강화할 수 있는지에 대한 여부
월간 실적 모니터링 과정
1. 데이터 수집: AI 도구로 모든 마케팅 활동의 성과 데이터를 자동 수집
2. 인사이트 도출: 숫자 뒤에 숨은 고객 행동 변화의 의미 해석
3. 전략 조정: 데이터 기반으로 다음 달 브랜딩 전략 수정
4. 팀 교육: 새로 발견된 인사이트를 팀원들과 공유하고 업무에 반영
AI는 이제 단순한 보조 도구를 넘어, 브랜딩의 핵심 축으로 자리 잡았다. 아이디어 생성부터 콘텐츠 제작, 데이터 분석, 개인화 마케팅까지, AI는 시간과 비용을 절감하며 효율성을 극대화해 준다.
그렇다고 효율성이 곧 차별화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모든 브랜드가 비슷한 목소리를 내기 시작한 현시대에서 살아남고 싶다면 브랜드 고유의 정체성과 진정성을 지켜나가야 한다.
AI의 강점을 적극 활용하되, 인간만이 줄 수 있는 감정적 깊이와 문화적 맥락을 결합해야 한다는 뜻이다.
결국, AI 시대 브랜딩의 성공 열쇠는 AI와 사람의 균형이다. AI는 무한한 가능성을 제공하지만, 브랜드에 “생명’을 불어넣는 것은 여전히 사람이 해야 할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