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업사원의 '나 활용법'
여느날 처럼 영업을 다니다 거래처에서 잠시 커피를 마시며 쉬고 있는데 장과장님으로 부터 전화가 왔다.
혹시 인테리어 견적을 낼 수 있냐는 것이다. 급하게 지물포 사장님을 대신해서 소비자 견적을 내러 가야하는데 본인은 너무 먼 거래처에 있어서 당장 갈 수가 없으니 대신 가줄 수 있냐고 물어보신것이다.
난 당연히 견적 내는 방법을 몰랐다. 알아야 한다고 생각해 본적도 없었다.
벽지 영업 사원으로서 기본적으로 벽지가 한롤에 몇평 (그 당시엔 제곱미터를 사용하지 않았다) 이고, 벽지 무늬를 어떻게 맞춰서 시공해야하고 부자재가 어떻게 얼마나 사용되어야 하는지 정도만 알고 있었지 인테리어 견적을 내는일은 벽지 영업사원에겐 전혀 상관없는일인것 같았다.
견적 내는 방법은 몰랐지만 '줄자' 는 가지고 있었기에 바닥 치수 와 벽 높이를 실측해서 전달해 주겠다고 했고 장과장님은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다고 부탁한다고 했다. 그렇게 난 소비자의 현장으로 실측을 나갔고 바닥 치수와 벽의 높이등을 실측해서 장과장님께 전달해 드리고 회사로 돌아왔다.
여느때 처럼 한밤중에 창고를 정리하며 장과장님과 대화를 나누게 되었는데 낮의 소비자 견적은 어떻게 되었는지 물어보았다. 장과장님은 내가 바닥, 벽의 치수를 실측해서 전달해준 덕분에 잘 계산해서 견적을 내었다고 말씀하셨다. 난 궁금했다. 그것만으로 견적이 가능한건지? 실제로 보지 않고 견적을 낼 수 있는지? 그리고 장과장님은 견적을 어떻게 낼 수 있는건지?
내가 궁금해하는걸 장과장님은 눈치채고 견적 내는 방법에 대해 가르쳐 주셨다.
생각보다 쉬웠고 재미있었다. 몇 시간동안 노트에 그림도 그려가며 설명해셨고 밤이 늦도록 견적 내는 방법에 대해 배웠다.
그렇게 열심히 견적내는 방법에 대해 배운 후 장과장님께 여쭤보았다.
왜 벽지 영업사원이면서 이런걸 알고 있냐고. 배워서 뭐하실거냐고. 지물포 차리시려고 그러냐고.
그러자 장과장님은 또 다시 나에게 가르침을 주셨다.
지물포 사장님들은 일이 없는날은 한가하지만
현장에 직접 작업이라도 나가시는날엔 지물포를 비우는일이 많았다.
그런날 지물포에 손님이 찾아오시면 응대를 하기위해 급하게 현장에서 차를 끌고 오시거나 그렇지 못한 경우 그 손님을 놓치게 되는 경우가 많았는데 그럴때 지물포 사장님들이 장과장님에게 전화해서 부탁을 하신다는거다.
지물포의 경우 한명의 손님이 가져다주는 매출이 전체 매출에 주는 영향이 크다.
한개의 지물포가 한달에 평균 6~7개 정도 인테리어를 진행하고 비수기엔 그 반도 안되는 작업을 하기 때문에 손님 한분 한분이 정말 귀할 수 밖에 없는데 작업 중 찾아오는 손님을 놓치게 되는건 지물포로써는 타격이 클 수 밖에 없다.
그래서 대형 지물포의 경우 상담 직원을 따로 고용하기도 하고 어떤 지물포는 사장님이 현장 업무를 하지 않고 시공 인력을 한명 더 부르는 경우도 있다.
장과장님 왈,
지물포 사장님들이 급하게 손님 응대를 해야하는데 못오는 상황이 있어서 인건비를 추가로 들여가며 상담 직원을 뽑기도 하고 도배사나 장판기사를 따로 부르기도 하잖아. 그러면 지물포 사장님들은 그날 하루 15만원~20만원 정도 인건비를 추가로 지불해야되거든.
난 지물포 사장님들이 그 비용 아끼고 차라리 내 벽지 그만큼 들여놓으시라고 내가 직접 손님 응대 해드리는거야. 상황만 가능하면 그게 어려운일도 아니고 나도 재미도 있고.
근데 내가 견적을 내고 일이 성사되면 벽지며 바닥재며 전부 우리 물건을 쓰게 되니 얼마나 좋니.
또 그 사장님들은 그 고마움 잊지 않고 손님이 오면 우리 벽지 카달로그를 먼저보여주실거야.
그가 했던것 처럼 나도 내 거래처 사장님들이 날 편하게 부르실 수 있도록 미리 언지를 드려놨었고,
내 거래처에서도 상황이 급할때 나에게 견적을 부탁하셨다. 당연하게도 내 거래처엔 우리 회사 벽지와 부자재의 사용 비중이 높아졌고, 그에 고무된 난 더 욕심을 내어 장판 시공도 배웠다.
그후 특별히 가까웠던 지물포에 무료로 장판 시공을 해주기도 하고 가벼운 장판 보수도 해주게 되었다.
그 지물포들엔 내가 원하는 만큼 벽지나 부자재를 내려놓을 수 있었다.
-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