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님의 침묵

비정규직 노동자에게 침묵하는 우리 사회

by Jeff Kang

영동 고속도로 인천 방향 마지막 톨게이트인 '군자 톨게이트'


집이 인천인지라 여행을 다녀오거나 본가에 다녀올때면 이 톨게이트를 이용하게 됩니다.

이곳엔 다른 톨게이트에서 보기 힘든 고객 쉼터가 마련되어있어 커피도 한잔하고 담배도 한대 태우며 여독을 달랠 수 있기에 자주 들르게 됩니다.


그런 편안한 쉼터가 최근 시끄러워지고 있습니다.

곳곳엔 시위를 뜻하는 현수막들이 걸려있고 근무하시는 분들의 복장에도 역시 시위 문구가 적혀있습니다.

고객을 대하는 근무자들의 따뜻한 미소는 그대로인데 톨게이트에 감도는 기운은 심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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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년을 일해도 신입 사원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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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 전 박카스 라는 에너지 드링크 광고속에 등장한 고속도로 수납원의 모습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고속도로를 이용하지만 실제로 고속도로 요금소에서 근무하시는 수납원분들

그들에 대해 잘아는분들은 많지 않을것 입니다.


저 역시 고속도로 요금소의 수납원 분들에 대해 잘 몰랐고

단지 그 분들이 '한국도로공사' 의 직원분들이라고 알고 있었습니다.


고속도로에서 통행료를 지불할때나 간혹 요금 문의를 위해 톨게이트 사무실에 방문할때에도 이 수납원분들의 안내를 받아 처리해왔기 때문에 너무도 당연하게 이 분들이 한국도로공사의 직원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이분들은 한국도로공사의 직원이 아닙니다.

한국도로공사에서 도급을 받아 운영하는 민간 회사의 직원분들 입니다.


예전엔 이분들은 한국도로공사 소속의 비정규직 근로자였습니다.

그러다 한국도로공사가 일방적으로 전국 톨게이트를 민영화(하청도급) 하였고, 그때 근무하던 비정규직 수납원들은 도급업체의 직원이 되었습니다.


하청도급은 짧게는 1년에서 길게는 5년까지 도급업체와 한국도로공사간 계약으로 진행되고 도급업체의 계약기간이 만료되면 도급업체 소속의 수납원분들은 다음 도급업체의 신입사원이 되어 다시 신입사원으로 근무하게 되는것 입니다.


우습게도 저 박카스 광고속의 여성분이 실존 인물이었다면, 지금도 저분은 호봉도 직급도 없는 신입사원일 것 입니다.



우리 때문에 고객분들이 불편하면 안되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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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납원분들의 정규직 전환을 요구하는 시위를 보며 몇분에게 여쭤본적이 있습니다.

버스나 지하철, 화물 노조처럼 파업을 시도할 생각은 없느냐고..


그때 돌아온 답에 가슴이 먹먹해지고 할말이 없어졌습니다.

" 우리가 힘들다고 모든 사람 힘들게 할 순 없잖아요."


한국도로공사 고속도로 수납원분들 중 한국도로공사에 직고용을 주장하는 1500여명이 6월 30일 강제해고 통보를 받았습니다. 총 수납원 6500여명 중 5000여명은 한국도로공사에서 설립한 자회사에 재고용되었고 자회사 설립에 반대하던 1500여명은 고용법이 금지하고 있는 강제해고를 당했습니다.


혹자들은 이렇게 얘기합니다.

"자회사 만들어서 정직원해주면 되는거 아니냐?"


자회사가 수납원들의 연봉을 '한국도로공사' 직원에 상응하게 제공할 수 있고, 정년을 보장할 수 있다면 이분들 모두 자회사로 편입되는것을 반대하지 않았을 것 입니다.


10년 일하면 10년치 호봉 받을 수 있고, 60세 정년까지 일할 수 있는 기회를 주는 자회사라면 그리하였을 겁니다. 하지만, 지금의 상황 수습에 급급한 도로공사가 깊은 고민없이 궁여지책으로 내놓은 자회사로 그저 편입된다면 자회사는 그저 또다른 '하청 도급 업체' 일 뿐 입니다.


그렇기에 지금 이 시간 1500여명의 수납원분들은 고속도로 요금소가 아닌 '일반도로' 에서 목소리를 높이고 계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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님은 갔습니다. 아아 사랑하는 나의 님은 갔습니다.
KakaoTalk_20190630_175912579.jpg 군자톨게이트 쉼터 편의점에 붙은 '이달의 독립운동가 - 만해 한용운'


씁쓸한 마음으로 군자 톨게이트를 나오는데 편의점 한쪽 벽에 붙은 이달의 독립운동가 포스터가 보였습니다.

'민족의 희망을 노래한 독립투사' 만해 한용운 선생님.


님은 갔습니다. 아아 사랑하는 나의 님은 갔습니다.

(중략)

아아 님은 갔지만은 나는 님을 보내지 아니하였습니다.

제 곡조를 못이기는 사랑의 노래는 님의 침묵을 휩싸고 돕니다.


짧게는 5년 길게는 20년을 일해온 수납원분들

그 분들이 이 정부에 희망했던 하나의 희망 정규직 전환


'내 나라의 애국가를 내가 부르는 당연한 일에 왜 내가 왜놈들에게 사과를 해야하느냐'

라고 옥에서 부르짖던 한용운 선생의 모습


'내가 다니고 있는 회사의 직원이고 싶은 당연한 일을 왜 들어주지 않느냐'

라고 부르짖는 고속도로 수납원들...


6월은 한용운 선생께서 독립을 희망하던 때에도,

고속도로 수납원들이 정규직 근로자로 인정해달라고 외치는 지금도

참 잔인한 계절인것 같습니다.


님은 아직 침묵하고 계실겁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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