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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재석 Jan 21. 2019

             나의 로고테라피*

이 글은 '푸른글터' 청소년잡지 원고청탁을 받고, 2018년 상반기 발행된 잡지(푸른글터 vol 25)에 실린 글입니다. 


                       

     

  

                                                   * 우리는 피할 수 없는 고통이나

                                              시련을 삶의 한 부분으로 받아들이고

                                                   해석하는 방법을 배워야 한다.

                                                  - 빅터 프랭클(로고테라피 창시자)



                  

  “아빠는 집 지으면 안 돼? 토, 일요일은 학교 기숙사에서 나와야 되는데, 계속 이런 하꼬방 같은 데서 지내야 되냐고!”

  나는 매사에 미적대는 아빠가 짜증이 났다. 여름방학에는 엄마가 있는 부산 집에서 지냈다. 2학기를 맞아서 순창 시골집으로 돌아왔다. 아빠를 따라 순창으로 온 지도 어느새 1년 6개월이 지났다. 원래 이 집에는 할머니 한 분이 사셨는데 요양원에 들어가면서 세를 놓았다. 아빠는 부엌과 화장실이 안방에 딸린 수리된 집을 얻어서 운이 좋았다, 며 싱글벙글했다. 나도 처음에는 ‘시골집이 이만하면 됐지 뭘 바라겠어.’ 했다. 마을을 둘러봐도 아직 화장실이 마당 한 귀퉁이에 있는 집도 있었다. 그러다 올해 나는 태도를 확실히 바꿨다. 2학년 때 같은 반이 된 친구 가영이 집들이를 갔다 온 뒤로 내 눈이 뒤집어졌다. 2층 양옥집에 정원까지 깔끔하게 정리된, ‘전망 좋은 집’ 같은 월간잡지에서나 나올 법한 집을 본 탓이다.        

  “아빠는 정말 정착할 마음이 있는 거야, 아니면 간만 보고 있는 거야!”

 나는 아빠를 매몰차게 몰아붙였다.

  “아직 요양 반, 농사 반 중이다.”

 아빠 특유의 구렁이 담 넘어가는 소리다. 뭐가 반반이야! ‘양념 반 후라이드 반’ 치킨 시킨 것도 아니고…. 마당에서 키우는 ‘순돌이’ 강아지에게나 던져주고 싶은 말이다.

  “아빠 내 친구 집들이 사진, 카톡으로 던져준 거 봤지?”

  “그래 재미있게 놀다 오라고 했잖아.”

  “내가 친구 집 너무 좋다고 했지, 재미있게 놀다 온다고 했어. Why you don’t understand my mind?”

  “아빠는 네 친구 부모님과 생각이‥, 아니 철학이 다르다고 해야겠지.”

  “또 개똥철학 이야기하고 있네. 집 잘 지으면 철학이 없고, 어디 이런 흙집에서 살면 철학이 있는 거야.”

 아빠는 창문을 보며 빙긋이 웃더니, 잠시 고개를 숙였다.

  “아빠는 순창 오면서, 너에게 선택권을 줬다. 엄마하고 부산에 남을 건지, 아니면 아빠와 함께 다른 환경에서 공부해 볼 건지.”

     

  처음 순창제일고 1학년에 입학했을 때다. 산골유학 왔느냐, 며 난 순창 친구들 놀림감이었다. 나는 질세라 ‘뭐라 케샀노, 내가 그렇게 팔자 뒤집힌 년으로 보이나!’ 하며 뒤끝 올라가는 사투리를 작렬하자, 반 친구들은 배꼽을 잡고 뒤로 자빠졌다. 사투리가 찰진 게 재미있단다. 친구들과 사소한 말다툼을 할 때도 ‘니 주둥이 쪽바로 놀려라이, 디쥔다(죽는다)!’ 이 한마디 하면 싸움이 안 된다. 친구들은 뭔 소린가, 하면서도 먼저 깔깔거린다. 시골로 전학 와서 1학년을 무사히 보낸 건, 순전히 경상도 사투리의 힘이었다. 사실 따지고 본다면 나는 놀림감이었다. 악의 없는(?) 놀림감. 그저 고만고만한 친구들 사이에서 양념 캐찹 뽕뽕, 뿌려주는 깨소금 역할은 했다. 때 묻지 않은 순창 친구들과 사귀게 해 줘서 아빠에게 고맙기도 했다.

     

 엄마는 베타 맘이다. 아마 알파 맘이었다면 나를 순창에 가도록 내버려두지 않았을 테다. 현대사를 배우다 보면 1960년 대 외화벌이를 위해 독일로 보내진 간호사와 광부 이야기가 나온다. 엄마도 꽃다운 20대 나이 때, 독일은 아니지만 사우디아라비아 병원에 간호사로 파견되어 외화벌이 일꾼으로 대한민국에 기여했다고 늘 자랑한다.  외국 물을 먹어서 인지, 외화벌이에 앞장선 무수리과科 (궁중에서 허드렛일로 총대 맨 여종) 인지 몰라도 사고가 개방적(?)이다. ‘내 딸 편한 데로 되소서!’ 주의다.

 그래도 ‘집 밖은 위험해’, 하는 엄마인지라 내가 순창에 와 있을 땐, 하루가 멀다 하고 전화를 해댔다. 안부전화인지, 땡땡이치는지 확인 하려는 건지, 꼭 한심하다는 투로 전화했다.  사실 내가 엄마하고 사는 걸 포기하고 순창을 택한 건, 엄마 등살에 숨쉬기 운동이 힘들어서이다. 내 나이 때는 가슴을 쫙 펴고 숨은 제대로 쉬어야 하는 거 아니야. 엄마는 주위 사람들에겐 ‘내 딸이 비상한 앤데….’ 하면서 내 앞에선 ‘딱, 자기 몸 상하지 않게 큼 대충대충 공부하는 스타일’ 이라며 못마땅해 했다. 고등학교 다니는 언니들 보면, 밤 열두시, 한 시까지 학원에 잡혀서 학원 생활인지, 학교생활인지 모르는 공부를 하고 있었다. 나는 겁에 질렸다. 거울을 보면서 혹여나 팔팔한 내 10대 얼굴이 상할까봐 걱정됐다.

     

 아빠가 임대한 쌈채소 비닐하우스에는 1학년 여름방학 때, 처음 가봤다. 순창에선 학교 기숙사 생활을 하다 보니, 토·일요일을 제외하고는 딱히 시골집에 갈 일이 없었다. 마을에는 할머니, 할아버지들뿐이라 바깥에는 잘 나가지 않았다. 아빠가 빌린 비닐하우스는 마을에서 떨어져 있어 걸어 다니기에는 멀었다. 엄마와 함께 순창읍에서 김밥을 사들고 아빠가 일하는 비닐하우스를 찾았다. 나는 쌈채소가 이렇게 종류가 많은 지, 태어나서 처음 알았다. 그냥 고기집 가면 흔히 나오는 깻잎하고 청상추가 다 인 줄 알았는데….

 아빠는 모종판에 심어놓은 새싹부터 딸 때가 된 쌈채소까지 하나하나 일러줬다. 적겨자, 치커리, 적근대, 비트, 케일, 청상추, 쑥갓, 치콘, 뉴그린…. 아빠는 용케도 이름을 다 외웠구나 싶었다. ‘어떻게 새싹 잎사귀만 보고도 금방 알 수 있지? 내 눈엔 도진개진이구먼’. 엄마는 역시 무수리과 기질이 있어서 팔을 걷어붙이고 쪼그려 앉았다. 쌈채소를 툭툭, 따는 것이 손놀림이 예사롭지 않았다. 아빠는 잘하네, 하는 말 대신 ‘당신 배살 빼는 데는 최고 운동’ 이라며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웠다. 나는 쪼그려 앉는 게 물구나무 서기 보다 더 어려웠다. 2, 3분을 참지 못했다. 급기야는 ‘적겨자’를 따다 잎 뒷면에 붙은 벌레군단 때문에 악!, 소리 지르며 뒤로 나자빠졌다.

 “역시, 여름에 적겨자는 안되겠어. 자고 일어나면 벌레가 생기니. 친환경 농약을 뿌려도 그 때 뿐이고. 휴!”

 아빠는 벌레 때문에 멀리 도망가 있는 나는 아랑곳 않고, 적겨자를 뿌리째 뽑아버렸다. 뽑은 적겨자를 발로 밟아 으깼다.

 “아니 힘들게 심어놓고 농약으로 잡아야지, 다 뽑아버릴 거야!”

 엄마는 못마땅한 말투다.

 “사람들 입으로 들어가는 채소잖아, 너무 농약을 치기도 그렇고….”

 “그러게 농사 아무나 짓는 거 아니랬지. 팔자에도 없는 농사짓는다고. 쯧쯧”

 엄마는 채소를 담은 박스를 들고, 비닐하우스 밖으로 나가버렸다. 나는 계면스러워 엄마 뒤를 졸졸 따라 나갔다. 그래도 부부는 부부였다. 밤에 잘 때 ‘끙끙’ 앓는 소리한다며, 엄마는 아빠의 다리를 주물러 주었다.

 

 한 참 무더운 여름은 지나가고 있었다. 시골에 와서야 계절이 무르익는다는 말을 눈으로도, 손끝으로도 만져봤다. 시골집에 딸린 텃밭에는 고추랑 호박, 서리태, 오이가 나란히 심어져있다. 주렁주렁 달린 고추는 초록에서 빨강으로 옷을 갈아입고 있다. 나는 눈길을 돌려 마루 벽면에 걸린 화이트보드를 바라봤다. 아빠가 메모지에 쓴 자작시가 한편 붙어 있다.

     

     

오래된 빗살무늬 인양

햇아침이 텃밭에 비스듬히 걸려있다

밀짚모자를 눌러 쓴 농부는

수염을 늘어뜨린 옥수수가

일렬로 선 사열대 앞에 섰다

앞에 총, 좌로 봐!

농부는 거수경례로 답하며 텃밭에 들어선다

붉음과 초록을 반반 갖춘 첫 두둑의 고추들

태극훈장을 주렁주렁 달았다

옆 두둑엔

무성한 초록 잎사귀로 온 몸은 은폐한 서리태가

검은 총알을 숨기고 있다

대검을 치켜세운 대파 사이로

바람이 싹둑싹둑 잘려져 고랑으로 모아진다

잎을 몇 단씩 쌓으며 일용할 보급품을 대는 채소

줄기를 뻗어 그물망을 타고 오르는

오이는 노오란 꽃봉오리를 터뜨리며

제국의 텃밭에 깃발을 펄럭인다

고랑을 따라 바람 길이 나고

한 철의 폭우와 전쟁을 겪었으며

돌아서면 자라는 잡초들로

농부는 매일매일 마음 밭, 시름을 솎아냈다

첫 열매가 익어가는 7월, 그 바람엔

첫 키스 향이 스며있고

바람 길을 따라가는 농부가 있다

     

 아빠는 여기서 마음 텃밭을 짓고 있는 걸까? 시 속에 등장인물은 농부라기보다는 무슨 강태공 같은 느낌이 났다. 계절을 읽으며 세월을 낚는…, 아니면 제국의 텃밭을 가꾸며 때를 기다리는 무림고수(?), 아무튼 나하고는 계절 감각이 달랐다. 나에게 계절이란 여름에는 에어컨 바람 타령이나 하고, 겨울에는 패딩이 짧은 게 좋은 지 긴 게 좋은 지, 유행 따라가기도 바빴는데…. 나는 메모지 밑에다 한 수를 거들었다. ‘한량이 따로 없군요. 좋은 세월 낚아서 나도 덕 좀 봅시다.’

  

 2학년 여름방학에 들어가기 전에 아빠는 담임선생님에게 호출을 받았다. 나는 학교 상담실에서 도저히 납득할 수 없는 반성문을 쓰고 있었다. 반 친구 한슬기가 나한테 왕따 당했다, 고 엄마까지 데려와서 고자질한 거다.

 “전후 사정이 어떻게 되었던 딸 친구가 왕따라고 느꼈다면 죄송합니다.”

 아빠는 정말 전후 사정, 아니 막말, 참말 안 들어보고 먼저 죄송하단다.

 “저는 담임이고, 역사과목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특히 한국사에 관심이 많아서 제가 귀여워하는 아이입니다. 역사 과목은 1등급입니다. 그래서 또래끼리 가르쳐 보라고 한 친구를 붙여주었는데 아마 안 좋은 감정이 쌓였나 봅니다. 학습 외적으로도 따돌림을 당했다고 그 친구가 그러네요.”

 담임은 내가 쓴 반성문을 아빠에게 건넸다. 아빠는 천천히 읽다, 한숨을 쉬었다.

 “어차피 써야하는 반성문이라면 한 번 종이를 내려놓고 묵묵히 바라봐라. 너하고 친구 사이에서 누구 편도 들지 말고, 마치 제삼자가 둘을 바라보는 글을 써봐. 지금 담임선생님 앞에서 할 말은 아니지만 너도 중학교 때 상처가 많았잖아.”

 아빠는 내의 중 2때 사건을 떠올리는 듯했지만 더는 주절주절 말하지 않았다.

     

 엄마는 내가 재능이 있다고 생각했는지, 일반 중학교보다 예술과목과 잉글리시 존(English Zone)이 있는 사립 종교 학교에 보내기를 원했다. 아빠는 기독교를 믿는 부모 밑에서 자라서 인지, 미션 스쿨을 좋아했다. 나도 싫지만은 않아서 ‘똑똑이’만 뽑는다는 미션 스쿨 편입시험을 쳐봤다. 결원이 생겨 보충하는 자리라 경쟁률이 높지 않을까 했는데 합격통지서를 받았다. 나는 괜히 어깨가 으쓱하며 공부 좀 하네, 싶었다. 그럼 학교생활은 어땠냐? 고, 첫날부터 학급에서 헛소문이 돌았다. ‘제 잘난 체하는 애야’, ‘기숙사에서 제 하고 한 방 안 쓸래’ 나는 원치 않았지만 3학년 선배들 방에 배정되었다. 선배들은 과학고나 외국어고 응시하는 게 목표였다. 2층 침대 천정에 빼꼭히 수학공식이 낙서되어 있었다. 그 무게 때문에 천정이 주저앉을  것 같았다. 나는 또래들과 학년을 같이 올라온 것도 아니고, 본디 이 곳 족보도 아니다 보니 친구 사귀기가 어려웠다. 시기 질투까지 받으니 외톨이라는 생각마저 들었다. 한 날은 화장실에 용변을 보는데, 반 친구 목소리가 문 넘어 들려왔다. ‘전학 온 애, 이번 중간고사 성적 자기는 잘 나왔다고 자랑하는데, 아무래도 커닝한 것 같데.’ 그들끼리 말을 지어내고 있었다. 나는 담임선생님을 찾아가서 노골적으로 험담하는 친구를 일러바쳤다. 진실공방이 이어졌지만 결국 피해자는 나였다. 집과 너무 먼 기숙사에 갇혀 나는 오갈 때도 없었다. 나는 두 달 만에 손들고 담임과 아빠 면담을 요청했다.

 “딸하고 많은 이야기를 했는데, 다시 전학해야겠습니다. 조치를 해 주시죠.”

 아빠는 단호하게 몇 마디 했다. 담임에게 전후 사정을 물어보지도 않았다. 담임은 황당하다며 ‘한 학기는 지내보고 결정해도 늦지 않다’고 사정했다.

 내가 기숙사 짐을 싸고 나오는 날, 나에게 유독 험담을 많이 했던 친구 둘이 찾아왔다. 아마 담임이 사과하라고 시켰을 테다. 친구 둘은 눈물도 흘리며 잘못했느니 용서해 달라고 빌었다. 나는 순간 마음이 흔들렸다. 아빠 차를 타고 학교를 나오면서 ‘아빠 한 학기는 더 다녀볼까?’ 하고 물었다. 아빠는 지긋이 웃으며, ‘눈물을 보인 그 친구들에게 한 번 전화해봐’ 했다. 아빠는 답을 예상하고 있었을까? 친구들은 뭔 생뚱맞은 소리냐, 며 조금 전과는 목소리 색깔을 확 바꿨다.

 “아빠는 알고 있었어?”

 “진실을 알아보라고 한 거야. 아빠는 너도 그 애들도 아니잖아, 그냥 제삼자의 입장에서 너희들을 바라보는 거지. 네가 이해하기 어려운 말인지 모르겠지만, 제삼자가 되면 너희들 개개인보다 너희를 둘러싼 환경이 보이지. 자기 반에 따돌림받는 학생이 있다는 추궁을 피하고 싶은 담임선생님, 다른 가치도 많은데 성적만으로 평가받는 학생들, 내 등수를 누가 끌어내릴까 조마조마해하지. 특히 기숙사 생활에 갇히다 보면 왕따를 당했을 경우, 어디 하소연할 데도 마땅치 않아. 한번 찍히면 다른 먹잇감이 생길 때까지 계속 놀림감이 되겠지.”

  

 나는 그때 아빠와 나눈 대화가 떠올랐다. 아빠는 내가 더는 먹잇감이 되지 않게 해 주었다. 그리고 지금은 나를 순창이라는 전혀 낯선 환경으로 데려왔다. 상처가 아물도록 약을 발라주고 싶었는지 모른다. 나는 빈 종이를 앞에 놓고 묵묵히 바라봤다. 담임에게 역사 점수가 잘 나온다는 이유로 나는 편애를 받고 있었다. 슬기는 마치 담임처럼 구는 내 수업 방식에 짜증이 나 있었다. 나는 ‘이 정도는 외워야지’하며 마치 못 외워서 점수가 안 나온 양 충고하고 있었다. 은연중에 나온 말투가 친구와 담을 쌓고 있었다. 슬기는 나보다 잘하는 게 많은 친군데 공부 때문에 왠지 열등감을 느끼고 있었다.  나는 한번 심호흡을 하고 반성문을 고쳐 적었다.  

 아빠는 학교를 나오면서 ‘History repeats itself.’ 하며 주절거렸다.

 “카를 마르크스란 분이 이런 말을 했어. 역사는 반복된다. 한 번은 희극으로, 한 번은 비극으로. 그럴듯한 말이지 않니?”

 나는 아빠를 힐끗 쳐다보며 톡 쏘았다.

 “아빠, 나 피곤해. 그만하자.”

     

 내가 순창에 아빠를 따라온 건, 공부에 짓눌려 살기 싫어서였다. 아빠가 더 좋아서 따라온 게 아니다. 아빠는 사회생활에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 타입이었다.  옛날 선비처럼 평생 글이나 쓰면서 살고 싶다고 입버릇처럼 말하는데, 막상 책을 몇 권 내고도 회사생활을 그만 두지 못했다. 아마 아빠가 생각한 만큼 책으론 돈벌이가 안 되었던 모양이다. 아빠는 홍보 리서치 회사를 친구 분들과 운영했는데 특히 국회의원 선거나 지방 선거철에는 스트레스를 엄청 받았다. 스트레스라는 게 엉뚱하게도 아빠가 홍보를 맡은 후보자들이 당선되느냐, 안되느냐는 문제가 아니었다. 엄마하고 둘이 나누는 대화를 얼핏 엿듣다 보면, 후보자 비위를 맞추느라 발 담그고 싶지 않은 구정물에 몇 번을 담갔다, 며 엄마에게 하소연했다. 아빠는 스트레스로 당뇨병이 점점 심해졌다. 차를 몰고 가다 오른쪽 다리에 마비가 와서 교통사고를 낼 뻔했다. 급기야 병원에 입원해서 치료를 받았다. 그제야 이대로 살아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든 모양이다.    

 아빠는 부산에서 가능한 멀리 떨어진 순창을 택했다. 1톤 트럭을 빌려 직접 이사 짐을 실었다. 짐이라고 해봤자 혼자 살 가재도구에 옷가지, 이불 정도. 그래도 책은 손을 놓을 수 없었는지 종이박스에 꽤 담았다. 이사 전날, 엄마는 책 박스를 걷어차며 한 판 시비를 걸었다.

“책이나 파먹고 사는 당신이 땅 파먹고 살 것 같나!”

엄마는 성격이 한 번씩 롤러코스트를 탈 때가 있다. 한번 성깔을 내면 말과 행동이 동시다발이다. 책을 담고 있는 박스를 걷어차며 역정을 냈다.

“애까지 마음 싱숭생숭하게 만들고!”

“박스는 차도 좋은데 내 자존심까지 차지 마라. 애한테 강요한 적도 없잖아.”

“이제 중 3이 무슨 생각이 있겠노. 그저 나한테 잔소리 안 듣고 싶겠지!”

아빠는 방바닥에 널브러진 책을 주섬주섬 주워, 새 박스에 꾹꾹 눌러 담았다. 나는 엄마, 아빠가 싸우는 풍경을 그저 지켜봤다.

 ‘아무리 그래도 엄마 눈에는 내가 생각 없는 애로 보이나? 뭐야, 내가 엄마하고 살면 더 나은 애로 살고, 아빠 따라가면 덜 떨어진 애가 되는 거야. 나도 내 결정권을 가져야 되는 거잖아.’

 이런 생각을 엄마에게 금세 들켜 버린 모양이다. 엄마는 돌아서더니 나에게 삿대질을 하며 한마디 했다.

 “너도 똑바로 결정해! 이런 무책임한 아빠를 따라갈 건지.”

     

 나라고 왜 걱정이 없겠는가. 첫째로 중학교 때 편입했던 미션 스쿨처럼 친구를 못 사귀면 어쩌지 싶었다. 둘째는 아빠도 걱정거리였다. 엄마 말처럼 무책임하게 못살겠다고 다시 돌아가자고 하면 어쩌지 싶었다. ‘고등학교 너마저….’ 절친에게 배신당한 시저의 대사는 하고 싶지 않았다. 인생은 실패를 통해 경험을 얻는다, 고 누가 말했는가. 나의 중학교 때 상처가 이곳에서는 살아남는 지혜의 한 수가 돼 주었다. 도시 친구들과 달리 입시학원 생활에서 해방되었고, 남들이 좋다는 대학을 굳이 나까지 좋아할 필요가 뭐 있어, 싶었다. 교정은 더없이 넓었다. 탁 트인 운동장 가로수 길을 따라 아름드리 플라타너스 나무가 뻗어있었다. 늦가을엔 저 키 큰 나무에서 대책 없이 떨어지는 낙엽을 쓸어 담으며 ‘뭔 사서 생고생이야!’하겠지만 이만하면 나쁘지 않았다. 내가 조금 오버해서 친구에게 상처를 준 점은 학교생활에 한 점 옹이로 남았다. 나는 이런 소소하고 확실한 행복을 아빠 때문에 빼앗기고 싶지 않았다. 아빠에게 집 짓자고 떼를 쓰는 진짜 이유이기도 했다. ‘아빠도 이제 고만 고민하고 정착해’, 하는 경고 메시지였다.

     

 “나는 아빠가 집을 지으면 후회하지 않을 거라 생각해. 나도 여기 올 때, 조마조마한 마음이 있었지만 지금은 누가 등 떠밀어도 떠나고 싶지 않아. 그래, 기숙사 생활도 나쁘지 않고, 토, 일요일 눈 딱 감고 이 집에서 지낼 수 있어. 그런데 아빠는 정착하고 싶은 마음 없어.”

 나는 영화 ‘슈렉’에 나오는 장화 신은 고양이 눈빛 표정으로 애원하듯 말했다.  

 “아빠도 왜 집 짓고 싶지 않겠니. 그런데 아직 엄마하고 합의가 안됐어.”

 참 아빠다운 답변이었다. 손오공이 뛰어봤자 부처님 손 안 이듯 기, 승, 전, 결론은 결국 엄마였다.

  

 이제 집짓기 2 라운드에 들어갔다. 내 것을 얻고자 한다면 엄마에게도 싫지 않은 소원 하나는 들어줘야 했다. 바로 내가 꺼낸 카드는 순창군에서 세운 기숙형 입시학원인 ‘인재숙’에 들어가는 거였다. 엄마는 여기 왔을 때, 마땅한 입시학원도 없는 데, ‘인재숙’이라도 있어 다행이라며 너무 좋아했다. 사실 엄마만 좋아하는 게 아니다. 공부 좀 하는 자식을 둔 순창 엄마들은 기를 쓰고 넣고 싶어 하는 곳이다. ‘순창을 넘어 대한민국의 별이 되자’는 슬로건 마냥 강남 학원 강사를 모셔놓고 학원비 100% 지원하는 공립학교보다 더 나은 군립형 학원이었다. 엄마는 내가 ‘인재숙’ 입학시험을 치보겠다고 하자, 놀란 표정을 지으며 철들었다는 둥, 내 새끼 맞나, 는 둥 화색이 만연했다. 단 내가 내민 조건은 아빠가 정착하게 도와달라는 거였다. 정말 내가 철이 든 건 맞는 것 같다. 영양소 중에 딱, 철만 빠진 아빠를 다 생각하고 말이다.

 ‘엄마, 아빠가 달라졌어요.’ 뭐 이런 방송 프로그램을 찍는 출연자도 아니고, 엄마와 아빠는 말나 온 김에 뿌리를 뽑는다고 순창 이곳저곳 땅을 보러 다니더니 집터를 결정했다.   

 나는 아빠에게 어떤 집을 짓고 싶냐, 고 물었다.

 “촌스러우면서도 촌티(?) 나지 않는…….”

 “뭐시기라고요? 여기 전라도 말로 참 거시기하네.”

 “가난하게 때론 소박하게 살아온 동네 어르신들이야, 그분들 나이만큼이나 이 곳 집들도 늙어버렸지. 나는 이 분들의 집과 조화로우면서도 마을에 활기를 불어넣는, 그런 집을 내 손으로 직접 짓고 싶구나. 그런데 너를 보니 촌티(?)는 나지 않아야 되겠고……. 훗훗.”

 나도 아빠를 따라 깔깔거리며 웃었다.

 

  나는 인재숙 시험을 봤다. 첫째 시험 난이도에 놀랐고, 둘째는 ‘한 명이라도 더 넣어주자’는 주의인지 낙제점수에 가까웠는데 합격한 데 놀랐다.  

 학교 수업을 마치면, 곧바로 인재숙으로 향했다. 저녁 식사 후부터 밤늦게까지 학원 수업을 받아야 했다. 편안한 집을 얻으려고 한 일이 내 코를 내가 꿰고 말았다. 나는 토, 일요일도 보충수업 때문에 인재숙 밖을 나가지 못했다. 자연스럽게 학교 친구들과도 멀어졌다. 학교 친구들은 날 배려한다고 밤늦게 카톡을 주었다. 괜히 친구들 단잠을 설치게 하는 것 같아 불편했다. 아빠는 집 짓는 아저씨들을 도와 낮에는 함께 공사를 하고, 밤에는 혼자서 뒤치다꺼리를 한다며 카톡으로 사진을 보내왔다. 그런데 하나도 기쁜 마음이 없었다. 그 무엇보다 나를 슬프게 만든 건 따로 있었다. 나에게 왕따 당했다는 한슬기 친구들이 인재숙에 다니고 있었다. 학교에서도 서로 말을 섞지 않는데, 인재숙까지 얼굴을 봐야 하다니…. 그들이 해코지하는 일은 없었지만 복도를 지날 때마다 날 무시하는 눈빛이 여간 신경 쓰이지 않았다. 나도 무시하면 그만이지 했지만 쉽지 않았다. 나는 또다시 중학교 때처럼 인재숙에 갇혀 버렸다. 인재숙에 밤늦게까지 수업에 붙들려 있으니 체력도 고갈되었다. 학교 수업에도 집중하지 못했다. 입시와 상관없는 학교 과목 시간에는 엎드려 자기에 바빴다. 오히려 학교 성적이 오르지 않았다.  

 ‘오! 내가 무슨 짓을 한 거지.’

 나는 아빠처럼 주절거렸다.

 ‘역사는 되풀이되는 거야. 한 번은 희극으로, 한 번은 비극으로.’

 나는 아빠가 하루빨리 집을 짓기를 빌었다. 엄마에게 딱히 변명할 말은 아니지만 인재숙을 그만두고 집에서 다니겠다, 고 말할 셈이다. 속내 그대로 말이다.

 아빠에게 이런 내 마음을 알리려고 카톡을 했다

.

 

   딸 : 아빠는 엄청 우울해 본 적 있어?

       자기 일 때문에 말이야.

                                          

                                               아빠  : 딸,  새벽 한 시야.   갑자기 무슨 일?


   딸 : 난 나 때문에 엄청 우울하거든.

                                          

                                               아빠 : 심각한 일이니?


   딸 : 인재숙에 또 갇힌 기분이야.

                                          

                                               아빠 : 아빠 보고 도와달라는 거니? 전에처럼


   딸 : 아니, 내가 바보 같냐고 묻고 싶어서ㅠㅠ

       내가 싼 똥을 내가 밟고 있는 기분이거든

                                           

                                              아빠 : ^^;; ????


   딸 : 난 이제 집에서 학교 다닐 거야.

        그러니 아빠도 정신 차리고 빨리

       집지어. 미래에 다닐 지도 모를

       좋은 대학 때문에 지금 희생하고 싶은 마음

       눈곱만치도 없고, 인재숙 선생님들이

       억지로 점수에 맞춰서 in 서울하라고 하는데

       내가 실적용도 아니고 난 지방대학이 더 좋아.

       내가 좋아하는 친구들과 수다도 떨고,

       내가 가고 싶은 학과도 찾아 갈 거고.

       내가 그 친구를 왕따했는지 모르겠지만,

       내 본래 의도도 아니었고,

       나하고 맞지 않은 친구 때문에 내가 미안해

       하면서 살 필요성도 느끼지 못하겠어.

       난 그냥 나대로 살고 싶어.   

       지금 행복하지 않는데 뭔 미래야.

                                       

                                                         아빠 : 헉! 딸,

                                                                  다 컸네.^^;; 

                                                                 이젠 울먹이지도 않고.

                                                                  아빠도 아빠 몫은 다 할게.


 

  아빠가 집짓는 동안, 난 내 고민에 빠져있었다. 아빠가 가끔씩 카톡으로 보내는 집 짓는 사진도 그냥 넘겨 버렸다. 엄마는 집 짓는 일을 도와준다며, 며칠을 휴가 내어 왔다. 야참으로 치킨을 들고 밤늦게 인재숙을 찾아왔다. 난 엄마에겐 더는 못 다니겠다, 는 말을 꺼내지 못했다. 맛있는 치킨을 아작아작 씹어 먹으면서 차마 그 말이 입 밖으로 어떻게 나와. 엄마는 딱, 철없는 부녀지간이라고 말할지 모르겠다. 자기가 한 말에 책임도 못 지는 것들이…, 하면서.  엄마도 와서 도와준다니 나도 집 짓는 현장에 가보고 싶었다. 내 고민 때문에 아빠가 보내준 사진을 건성으로 넘기기도 했지만, 사진만으로는 집이 어떻게 생겼는지 궁금하기만 했다.

  “아빠, 주말에는 나도 도울게. 머리도 식힐 겸.”

  슬며시 웃는 아빠와 난 하이파이브했다.

 

 아빠와 엄마, 나는 차에서 내려 집 정면에 섰다. 지붕공사는 끝났고 내부공사만 남아있었다.

 집 구조가 좀 특이했다면 보통 농촌 집들은 삼각지붕을 많이 쓰는데, 아빠는 지붕을 엇갈리게 만들었다. 꼭 옆에서 보면 엑스(X) 자 모양이다.

  “아빠, 왜 지붕을 저런 식으로 만들었어? 다 삼각지붕인데…”

  “삼각지붕이 무난하긴 한 테…. 엇갈리게 해보니 장점이 많아. 거실과 부엌 쪽 지붕은 별장 느낌이 나도록 천정을 높게 잡았지. 햇볕과 바람이 잘 통하게 하려고, 안방과 작은방 쪽은 천정을 낮게 해서 겨울에 단열효과도 주고, 또 그 위쪽 공간은 다락방으로 활용할 수 있고. 그보다 사실 아빠는 직접 집을 지으면서 내 삶에 대한 성찰도 함께 담았으면 했어. 중국 사상가 중에 노자란 분이 쓴 도덕경에 ‘위학일익, 위도일손, 시중(爲學日益, 爲道日損, 時中)’이란 말이 나와. ‘배워서 더해가는 것과 깨달음으로 비워가는 것의 역동적 균형’ 뭐 이쯤으로 풀이할 수 있지. 아빠는 유학까지 하면서 지식과 경력을 많이 쌓았지만, 세상을 살면서 여러 경험을 하고, 시련도 고통도 겪어보니 뭘 악착같이 추구하는 것보다 내 것을 비우고 겸손하게 사는 삶도 중요하다는 걸 깨달았어. 뭐 너무 순진하면 바보취급 받으니까 그 균형을 맞출 필요는 있지. 그래서 쌓고 비워가는 삶의 균형을 잘 맞추자는 뜻에서 액스(X) 지붕을 택한 거야.”

 엄마는 옆에서 듣고 있다 한마디 거들었다.

 “꿈보다 해몽이라더니, 나는 저축해서 돈을 착착 쌓아놓으면, 당신은 가져다 쓴다고 거덜이 난다는 뜻이겠지. 공사비나 아껴서!, 거덜 나면 더 줄 돈도 없으니까.”

 나는 입을 막고 풋풋, 거리며 웃었다.  

 엄마와 나는 집 외벽을 꾸밀 방수목에 페이트 칠을 했다. 페인트가 방수목에 깊이 스며들도록 몇 번을 칠하다 보니 하루해가 저물었다. 나는 도구를 정리하면서 지는 해를 바라봤다. 초침과 분침, 시침이 흘러가는 교실의 전자시계가 아니라 내가 선 자리에서 그림자가 흘러가는 해시계를 보면서 하루라는 의미가 새삼스럽게 느껴졌다. 집이 완성되면 친구들을 데려와서 집들이할 거라고 아빠에게 귀띔했다.

     

 그 날이 왔다. 금요일 오후, 아빠는 수업 마치는 시간에 맞추어 교문 밖에 마중 나와 있었다. 나는 친구들과 아빠 트럭을 타고 새 집으로 향했다.

 친구들이 ‘와!’하면서 탄성 지를 정도는 아니었지만, 시골 풍경과 딱 어울리는 아빠의 손때가 묻어있는 촌스러운 집이었다. 아빠는 흙을 사용하여 내부를 도배하고 싶었는데 집 짓는데 시간이 오래 걸릴 것 같아 포기했단다. 나는 아빠 마음을 안다. 나 때문에 포기했다는 걸. 아빠는 그동안 집 짓는 스토리를 손짓 발짓하며 설명했고, 나와 친구들은 거실에 둘러앉아 차려 놓은 음식을 먹으며, 깔깔거리며 들었다. 거실 큰 창틀에는 시골 풍경이 한 아름 담겨있다. 난 저 창문으로 매일매일 계절이 익어가는 풍경을 볼 테다. 마치 마음에 행복을 담은 사진처럼…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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