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야드 연가(戀歌)ep.24

젊은날, 리야드로 떠난 취업방랑기이자, "썸"타는 이야기

by 김재석



ep.24 사하라 사막





‘사하라’는 아랍어 뜻 그대로 사막이다. 마호멧이 이집트에 왔으니 사하라에 가보자고 했다.

‘말대로 사막에 뭐가 있지? 난 돌무덤이 더 좋은데’ 하는 말이 목구멍까지 올라왔다가 내려갔다. 아키코의 부탁을 단 칼에 거절하는 그의 명대사가 너무 좋았다. 레벨 차이가 어마어마한 두 마디가…. 일생에 한 번 들을까 말까한 인생 대사를 듣고 어떻게 돌무덤이 좋다고 말할 수 있겠어.


“아키코, 난 돌무덤을 보러 온 게 아니야. 미스 수진이 걱정돼서 온 거야.”


랭글러 지프차를 타고 사하라 사막으로 가는 내내 그의 말이 뇌리 속에서 떠나지 않았다. 그런데 사하라 사막이 점점 다가오자 또 머릿속 두 녀석이 싸웠다.


나쁜천사 : 사막에 가면 지네하고 뱀 있다.

착한악마 : 와우! 모닥불 피워놓고 구워먹자!


오아시스 한 곳을 들렸다. 그곳에 거주하는 베두인에게 마호멧은 물건을 구매했다. 나무장작, 석유, 텐트, 그리고 사막에서도 재미있게 놀 수 있다며 ‘샌드 보드’를 골랐다. 그는 어릴 땐 리야드 근처 사막에서 샌드보드 타고 놀았단다.

‘난 어릴 때 고무줄놀이 하며 놀았는데….’


“베두인들이 원래 낙타타고 목축하는 사람들 아니었나요? 아니면 아라비안나이트에 나오는 도둑들, 음, 좀 좋은 말로 해 주면… 사막의 해적!”

“하하하, 그런 시절도 있었죠. 사막의 자손들은 다 베두인의 후손이죠. 나도 마찬가지고. 지금은 다른 돈벌이가 있으니까…, 사막에 떠있는 무진장한 별들을 팔아먹죠.”

마호멧은 같은 베두인 후손이라도 자기는 석유를 팔아먹는다며 오순도순 이야기를 나누면서 오는데, 하얀 사막이 나타났다. 지프차가 결코 작지 않은 석회암 꽃송이가 군데군데 피어있는 모래언덕 사이로 들어갔다. 사막은 가도 가도 모래만 있는 곳인 줄 알았는데, 여기엔 자연이 조각한 천연 스핑크스가 도처에 있었다. 아마 이집트의 선조들은 하얀 사막의 석회암 조각을 보고 스핑크스를 만들었는지 모르겠다.


우리는 사하라로 더 깊이 들어갔다. 정말 지평선까지 모래언덕이 굽이굽이 펼쳐진 곳까지 갔다. 그는 차를 잠시 세우더니 타이어 바람을 뺐다.

“이제부터 진짜 사막 레이스를 할 거예요. 롤러코스터를 탈 테니까.”

“모래에 처박히면 어떻게요?”

나는 오들오들 떨면서 무서워했다.

“타이어 바람을 안 빼면 진짜 처박혀요.”

그는 자빠지는 시늉을 했다.

“전에 라마단이 끝나고 축제기간에 병원에 찾아갔었죠. 그때 미스 수진에게서 이런 말을 들은 것 같은데…, 인샬라.”

그는 얄밉게도 나의 말을 한방 먹이듯 되갚아주었다.

그가 그때 고백을 했었다. 영문판 코란을 들고 와서 “코란에 그대와 나의 손을 나란히 얻고 함께 기도했으면 합니다.” 했다.

나는 그의 말이 사우디식 사랑의 고백일까? 신앙으로의 초대일까? 하며 고개를 끼우뚱했다.

그리고 “인샬라” 했었다.


“신의 가호에 한 번 맡겨보시죠.”

나는 두 손을 합장하고, 장난기 가득한 눈으로 말했다.

“인샬라.”


랭글러 지프차로 롤러코스터를 타거나 샌드스키를 타다 모래언덕에 쳐박힌 이야기는 사하라를 찾은 진짜 이야기가 아니니 상상에서 즐기자.


밤이 찾아왔고 그는 텐트를 쳤다. 그리고 모닥불을 피웠다. 한국에서도, 사우디 리야드에서도 보지 못한 2억 개의 별이 밤하늘을 수놓았다. 나는 모닥불 위에 냄비를 올리고 가방에 넣어온 신라면을 끓였다. 꼭 한 번 그에게 대접하고 싶었다. 그가 한국 서민들이 먹는 라면을 뭔 맛으로 먹었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그가 물을 벌컥벌컥 들이켠 걸 보면 짭짭했던 것 같다. 나는 입가심으로 터키식 커피를 끓여주었다.


“여기서 작가(생텍쥐베리)가 어린왕자를 만났다고 했어요.”

나는 그의 말에 가슴을 쓸어내리는 뭉클함을 느꼈다. 난 단 한 번도 어린왕자를 아름다운 동화책으로 읽은 적이 없다. 이야기로 된 영어 문장을 외우기 위해 구입했을 뿐이다. 지푸라기 같은 심정으로, 이거라도 읽어봐야지, 했다.

“It's little lonely in the desert. It's also lonely with people.”

(사막에 있으면 조금 외롭다. 사람들 속에 있어도 마찬가지다.)

그는 어린 왕자에 나오는 한 구절을 되뇌었다.

“미스 수진에게 처음 어린왕자의 이 구절을 듣고, 가슴을 쓸어내렸어요.”

그는 손짓으로 잭팟이 팍, 터진 흉내를 냈다.

“나는 아람코에 있어도, 호화로운 집에 있어도 외로웠어요. 늘 비판적이었죠. 사우디가 더 나아졌으면 좋겠는데, 아버지가 처음 결혼 서약할 때 약속한 대로, 바람을 안 피웠으면 엄마가 떠나지 않았을 건데…. 모든 게 못마땅했어요. 코란을 읽는 건 좋아하지만 자기 입맛에 맞게 해석하면서 지하드를 일으키고, 악용하는 사람들도 너무 싫었어요.”

나는 그가 말하는 동안 줄곧 밤하늘만 바라봤다. 머릿속으로 이러면서 말이다.

착한악마 : 아웃사이더 프린스 씨, 그렇게 골치 아프게 살면서 석유 팔아먹을 게

아니라 여기서 별을 팔아먹어요.

나쁜천사 : 여긴 지네와 뱀 천지라니까. 독이나 쪽쪽 빨아먹고 살라고.


“그래서, 아웃사이더 프린스 씨. 양 어깨에 있는 선행과 악행을 기록하는 천사들이 뭐라고 하던가요?”

나는 손을 양 어깨에 가져가며 저울 다는 흉내를 냈다. 그는 생뚱맞은 내 모습을 보며 한바탕 웃었다.

“역시 미스 수진다운 질문이네요. 하하하.”

그는 시선을 밤하늘로 옮겼다.

“사막의 여우가 말해주더라고요. 흐흣, 아니 어린왕자에게 말했나?”

그는 나를 다시 바라봤다.

“좀 더 시간을 가지자고. 오직 너의 여우가 되려면 길들여지는 시간이 필요하다고.”

나는 마호멧이 정말 어린왕자를 동화책을 읽었구나 싶었다. 어릴 때 노는 것도, 책을 읽는 것도 모든 면에서 나와는 차원이 달랐다.

‘난 어떡해요. 이 진지남을….’

“모래시계를 엎어놓으면 모래가 쌓이듯이, 시간의 모래를 쌓아가야겠죠. 아직 젊으니까.”

그와 나의 눈이 마주쳤다. 모닥불에 그의 푸른 에멜랄드빛 눈동자가 반짝반짝했다. 그 어떤 별보다 아름다운 빛이 적막한 사막에서 빛났다.

“그건 그렇고, 시간의 모래가 꽤 쌓인 것 같은데 생각은 해봤어요…. 음, 인샬라, 한 거. 흐흣.”

그는 갑자기 유머남으로 분위기를 바꿨다. 이 분위기에서 같이 웃어야 할지, 말아야 할지. 나는 잠시 모닥불을 바라봤다.

“사실, 이번 여행을 하면서 마호멧의 말을 몇 번이고 몇 번이고 생각했죠. 남자에게도 쉽지 않은 일이지만, 여자에게는 일생이 걸린 문제잖아요. 블루모스크에 가서 예배도 참석하고, 알라에게 기도도 했어요.”

그는 그래서? 하며 궁금해 하지 않고 침묵했다.

“나 혼자 결론내리기가 쉽지 않았어요. 사실, 이번 여행에 꼭 데려오고 싶은 친구가 있었어요. 화상병동 간호사인데 그 친구는 나와는 다른 비행기를 탔죠. 사우디 생활을 못 견디고 한국으로 돌아갔어요. 만약 그 친구가 사우디 생활을 잘 견디고, 이번에 같이 여행했으면 오히려 결정하는데 도움이 되었을 텐데….”

“사막의 여우같은 친군가요?”

“딱, 그 표현이 맞겠네요.”

“그런 친구가 돌아가 버렸어 마음이 많이 아팠겠어요.”

나는 마냥 고개를 끄덕끄덕 했다. 그의 미소가 모닥불에 잔잔하게 흔들렸다.

“시간의 모래를 더 쌓아야겠네요. 결국 인샬라, 이네요.”


나는 마호멧과 오랫동안 별이 지는 밤하늘을 바라봤다.

나의 머릿속에선 장난기 많은 나쁜천사와 착한악마가 살고 있다. 둘은 위로되는 거짓과 불편한 진실 사이에서 티격태격하지만, 단지 내가 이런저런 생각들이 많을 뿐….

사랑은 정체가 뭘까? 태초에 오직 사랑만이 있었다는 낭만적인 밤하늘에 있는 것일까? 아니면, 콩딱콩딱, 뜨거운 피를 펌프질하는 심장의 울림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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