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시골살이

詩골살이 ep.5 제국의 텃밭

시골사는 이야기를 담은 에세이형 시

by 김재석

제5화 제국의 텃밭


5월의 꽃놀이가 끝나고, 녹음의 계절 6월도 지나갔다.

7월! 삼복더위와 게릴라성 폭우, 며칠간 이어진 장맛비로 날씨가 끈적끈적하다. 이틈을 타 집 앞 텃밭에는 풀들이 무성히 자랄 기세다. ‘이 놈의 잡초!’ 하며 뽑아내고 뽑아내도 어디 숨었다 나타났는지 돌아서면 자라있다.

‘풀들의 전략(도솔 펴냄, 이나가키 히데히로 씀)’ 을 보면 쇠뜨기(일명 뱀풀)는 3억 년 전부터 생존해 왔는데, 그 끈질긴 생명력은 위기관리 능력의 탁월함에 있다고 한다. 드러난 잎, 줄기보다도 땅 속에 내린 뿌리가 8할 이란다. 뽑혀도 뽑혀도 그 뿌리의 힘으로 되살아난다고 한다. 이러니 이제 입문한 초보 농부가 그 오랜 세월 땅에 뿌리를 박고 살아온 풀들을 이겨내기가 만만치 않을 수 밖에….

나는 집 앞에 백 평 정도 텃밭을 일구었다. 텃밭에는 옥수수, 오이, 고추, 대파, 서리태, 쌈채소 등이 열매를 맺고 있다. 누구는 블로그를 만들어 깨알 같은 즐거움을 주는 텃밭을 자랑하는데, 나는 근심을 달래보려 텃밭을 가꾼다. 더러 혹자는 사먹는 것 보다 낮지 않냐, 고 한다. 돈과 노력만으로 따지면 차라리 사먹는 쪽을 택하고 싶다. 농사 초보라 서툴다 보니 이런 말이 불쑥 튀어나온다.

나는 키보드로 글씨를 파종하고 모니터에 글밭을 일구는 재미로 살아왔다. 때론 책이나 기고글로 열매를 맺을 때면 그간의 노고가 눈 녹듯이 풀리기도 한다. 텃밭의 뭇 작물들도 열매를 맺을 때가 가장 행복할 것이다. 유전자 코드에 입력된 제 모양을 제대로 그려낸 뿌듯함이 있을 듯 하다. 글도 작물을 키우는 것과 뭐가 틀리겠는가. 생각의 글씨를 파종하다보면 단어들이 제 짝을 찾아가고, 문장으로 자라나며 생각이 그려낸 지도를 완성한다.

나는 텃밭을 둘러보다 자기 이름에 걸맞은 열매를 맺은 작물들에게 한마디 했다.

“제군들, 그대들의 노고를 치하한다. 우리는 텃밭이란 한 배를 탔다. 때론 폭염과 폭우, 그대들보다 더 질긴 생명력을 이어온 풀들과도 싸워 이겨야 한다. 그대들을 싸우게 하는 힘은 무엇인가? 소명이다. 자신의 씨앗에 담긴 유전자 코드를 완성하는 소명이다. 그대들은 혼자가 아니다. 이 텃밭에서 우리라는 이름으로 함께 싸우는 것이다.”

텃밭은 식물자원 다양성을 가지고 있고, 넓게 보면 농촌은 먹거리를 생산하고 경관을 가꾸며, 기후와 환경을 지켜내는 첨병 역할도 한다. 그리고 그 속에서 작물 하나하나는 자신의 열매를 맺으려 혼신의 힘을 다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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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국의 텃밭


오래된 빗살무늬 인양

햇살이 아침 텃밭에 비스듬히 걸려있다

밀짚모자를 눌러 쓴 농부는

수염을 늘어뜨린 옥수수가

일렬로 선 사열대 앞에 섰다

‘받들어 총, 왕께 경배!’

농부는 거수경례로 답하며 텃밭에 들어선다


붉음과 초록을 반반 갖춘 첫 두둑의 고추들

태극훈장을 주렁주렁 달았다

옆 두둑엔

무성한 잎사귀로 온 몸을 은폐한 서리태가

검은 총알을 숨기고 있다

대검을 치켜세운 대파 사이로

바람이 싹둑싹둑 잘려져 고랑으로 모아진다

잎을 몇 단씩 쌓으며 일용할 보급품을 대는 채소

줄기를 뻗어 그물망을 타고 오르는

오이는 노오란 꽃봉오리를 터뜨리며

제국의 텃밭에 깃발을 펄럭인다


고랑을 따라 바람 길이 나고

한 철의 폭우와 전쟁을 겪었으며

돌아서면 자라는 풀들로

농부는 매일매일 마음 밭, 시름을 솎아냈다


첫 열매가 익어가는 7월, 그 바람엔

첫 키스 향이 스며있고

바람 길을 따라가는 농부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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