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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석주원 Jul 22. 2022

랜덤의 미래

Ludogogy_005

마라톤 선수가 집어 든 물병


"우리는 실제보다 상상에 의해 더 많은 고통을 받는다." 


로마 제국 시대의 정치가 세네카(Lucius Annaeus Seneca, BC 4년~ AD 65년)가 한 말이다. 인간은 예측할 수 없는 상황에서 두려움을 느낀다는 뜻이다. 하지만, 동시에 인간의 호기심을 자극하고 삶을 즐겁게 만드는 것 역시 상상에서 시작한다.


대부분의 영어단어가 라틴어나 그리스어에서 유래했지만, '랜덤(Random)'은 프랑크어와 독일어에서 유래했다. 프랑스어 'rant'와 옛 독일어 'randa'는 '빠르게 달리다'라는 뜻이다. 빨리 달리다 보니 어떤 것을 급하게 고르게 된다는 의미다.



빠르게 달리는 마라톤 선수들이 휴식 지점에서 집어 드는 물병에 랜덤의 의미가 있다.



한국의 배달 애플리케이션에서도 비슷한 의미를 찾아볼 수 있다. 배달 음식을 하나 시키고 싶은데 직접 고르기는 귀찮고, 음식은 빨리 받길 원하는 이용자를 위한 선택지가 바로 '랜덤 메뉴'다. '고민하는 시간을 줄여주고 빠르게 선택해준다'를 생각해보면 그 뜻이 일치한다.


우리 주변을 살펴보면 랜덤에 의한 선택과 결과들이 곳곳에 녹아있다. 그중에서도 '상상으로 인한 즐거움', '무작위에서 느낄 수 있는 원초적인 즐거움'을 대표하는 것은 바로 '로또'다. '당첨된다면 당첨금으로 뭘 하지?'라는 상상으로 일주일을 행복하게 보낼 수 있다.


해외에서는 가문 대대로 내려오는 행운의 숫자(Lucky number)가 있다. 복권을 구입할 때마다 한 게임 정도는 이 행운의 숫자를 활용해 조합하기도 한다. 하지만 한국은 '빠르게 달리기'를 더 좋아한다. 숫자를 마킹 하는 과정조차도 빠르게 생략하는 '자동 선택'이다. 랜덤의 뜻에 가장 부합하는 형태라고 할 수 있다.



누군가는 인생의 답을 여기에서 찾는다. (출처: 게임화저널 노유래)



재미와 중독의 경계 '랜덤 박스'


랜덤은 일상의 즐거움이 되기도 하지만, 어두운 부작용도 공존한다. 주변에서 '랜덤 박스' 또는 '럭키 박스'로 포장해 판매하는 비즈니스에서 이런 부작용을 쉽게 볼 수 있다. 이용자가 구매한 '랜덤 박스'에는 다양한 상품이 들어있다. 회사는 그중에 비싼 명품도 들어있다고 홍보한다. 사람들의 기대심리를 최대한 자극한다. 하지만, 실상은 주로 중국산 저가 물품을 그럴싸하게 포장해 판매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런 부정적인 형태의 '랜덤 박스'는 온라인 게임에서도 그대로 사용된다. '확률형 아이템'이 대표적이다. 특히 한국 모바일 게임의 '뽑기', '강화' 콘텐츠는 사회적으로 문제가 되고 있으며, 현재는 규제 대상으로까지 논의되고 있다.


대부분의 유럽 국가는 이러한 '확률형 아이템'을 미성년자에게 판매하지 못하도록 규제하고 있다. 2018년, 네덜란드와 벨기에서는 확률형 아이템이 도박법을 위반한다고 판정하기도 했다. 유럽에서는 '랜덤 박스' 뿐만 아니라, 국내에서 인기를 얻고 있는 포켓몬 빵의 스티커조차 부정적인 시각으로 보고 있다. 포켓몬 스티커 모으기를 하나의 '추억'과 '놀이'로 받아들이는 한국과는 대조적이다. 


이렇게만 놓고 본다면 랜덤으로 인한 긍정적인 효과보다 부작용이 더 큰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규제와 관련된 논의가 있다는 것은 그만큼 이용자의 관심을 꾸준하게 끌 수 있는 요소가 있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양날의 검과 같은 랜덤 요소를 어떻게 하면 새롭게 만들어 나갈 수 있을까? 



빵보다 띠부띠부씰의 인기가 더 높다. (출처: SPC 삼립 Youtube)


통제할 수 있는 랜덤


랜덤의 진정한 가치는 '통제'에 있다. 언뜻 랜덤이 가진 의미나 가치와는 정반대로 느껴진다. 게임을 만드는 과정에서 생각해보자. 기존의 부정적인 형태의 랜덤은 고객의 지갑을 더 많이 약탈하기 위한 목적으로 사용됐다. 게임에서 '랜덤 박스'는 게이머들이 플레이하면서 얻을 수 있는 모든 아이템을 담는다. 그리고 그 아이템을 게이머들에게 얼마만큼 줄 것인지도 계산한다. 게이머들에게 주는 아이템의 수량이 많으면 '랜덤 박스'를 다양한 형태와 등급으로 나누어서 구성한다.


등급이 높은 '전설 박스'에서는 좋은 아이템이 나오도록 구성하는 대신 비싸게 판매한다. 다른 '일반 박스'는 게임에서 얻기 쉬운 아이템만 모아 놓는다. 대신, '일반 박스'는 별다른 과금 없이, 특정 콘텐츠를 플레이하는 것만으로도 쉽게 얻을 수 있도록 설계한다. 이미 많은 아이템이 들어있는 박스는 '이벤트'를 붙인다. 새로운 아이템, 기간 한정 아이템을 얻을 수 있도록 추가한다. 확률은 낮지만, 특정 기간에만 얻을 수 있는 아이템이라는 것을 게이머들에게 노출한다. 


게임 메커니즘으로 활용되는 랜덤은 기존의 구성 요소를 활용해, 게이머들이 새로운 재미와 가치를 원하도록 유도한다. 형태에 따라 랜덤을 통제하는 것이다. 사실 대부분의 게임에서는 이런 방법을 당연하게 생각했다. 그러나 이런 과정은 결국, 게이머들의 불신과 한국 게임의 위기를 불러왔다.



어떤 제품이 들어있는지 알 수 없는 '랜덤 박스' 자판기. (출처: 게임화저널 노유래)


랜덤의 미래는 '부정적인 경험'을 삭제하는 것


주목해야 할 점은 게이미피케이션적 접근을 통해 랜덤의 형태를 긍정적으로 바꿀 수 있다는 것이다. 앞으로 랜덤은 이용자가 느끼는 '불신'을 해소하고, 긍정적인 경험을 극대화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 그러기 위해선 랜덤으로 인한 손실을 최대한 적게 만들면서, 불신을 신뢰로 회복하기 위한 변화가 필요하다. 이용자가 보상을 얻기 위해 들인 시간과 노력에 비례해, 더욱 좋은 것을 얻는 방법을 제시해야한다. 랜덤으로 인한 스트레스와 박탈감은 모두 제거하고, 대신 행복과 설렘, 즐거움만 남기는 것이다. 


예를 들어, 월급을 '랜덤 박스'로 받는다고 생각해보자. 아마 많은 직원이 두려움을 느낄지도 모른다. 확률에 따라 원래 자신이 받던 월급보다 더 낮을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월급을 랜덤으로 지급하고도 모두 행복하게 만들 방법이 있다. 바로 기존의 월급보다 무조건 더 받을 확률로만 구성하는 것이다. 부정적인 '마이너스'는 완전히 삭제하고, 오직 '플러스'만 남기는 '월급 플러스 랜덤 박스'다.


물론 회사는 조직을 유지하는데 문제가 생길 수도 있다. 이는 감당할 수 있는 총량을 정하고, 박스를 열 수 있는 조건을 제시해서 보완할 수 있다. 기본적으로 '랜덤 박스'를 원하는 직원만 열 수 있도록 한다. 열고 싶지 않으면 기존의 월급을 받으면 된다. 대신 '랜덤 박스'를 원하는 직원은 회사의 발전을 위한 아이디어 제안이나 특정 성과 목표 달성 같은 조건을 만족해야 한다. 다양한 피드백과 아이디어를 수용하는 체계를 구축하는 것이다.


월급을 '랜덤 박스'로 받길 원하는 직원이라면, 평소 자기 업무와 회사에 대해 생각한 바를 진솔하게 보고하거나, 팀의 목표 달성을 위해 함께 협동하고 노력해야한다. 이 과정을 거친 직원만이 '월급 플러스 랜덤 박스'를 열 수 있다. 이 과정을 통해 긍정적인 경험을 한 직원들은 다음에도 반드시 '월급 플러스랜덤 박스'를 원할 것이다. 물론, 그 상승량은 기대한 것과 차이가 있을 수 있겠지만 말이다. 


앞으로 랜덤 요소를 활용하는 방식은 더 많은 시행착오를 거쳐야 한다. 이 과정을 통해 랜덤이 하나의 메커니즘으로 활용할 수 있을 만큼 진화하고 발전해야 한다. 더 깊고 정교한 연구를 기반으로 게이미피케이션에서 활용할 수 있을 정도의 수준에 도달해야 한다. 랜덤의 긍정적인 요소는 교육 및 훈련, 마케팅, 서비스 등 다양한 산업에서 충분히 활용할 수 있다. 이제 랜덤을 어떻게 활용할 것인지, 그리고 앞으로 어떤 노력이 필요한지를 생각하며 랜덤의 미래를 열어나가야 한다.


출처 : http://www.gami-journal.com/news/articleView.html?idxno=4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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