듣도 보도 못한 진주역사 김경현의 진주이야기 100선
최근 발간된 <김경현의 진주이야기 100선> 개정증보판에는 두 인물에 대한 아주 민감한 이야기가 실려 있다. 개천예술제를 주도하고 경남일보 사장을 지냈던 파성 설창수와 서예가로 유명한 은초 정명수가 그들이다.
1945년 해방과 함께 일제잔재 청산 차원에서 철거되었던 진주농업학교 일본인 교장 이마무라 다다오(금촌충부)의 송덕비를 정명수와 설창수가 1988년 일본까지 가서 다시 세웠다는 것이다. 비문은 설창수가, 비명은 정명수가 썼다. 이들은 한국에서 송덕비를 만들어 배에 싣고 가는 수고로움까지도 감수했다고 한다.
심지어 설창수는 생전 이마무라 교장이 교훈으로 썼던 '誠而勤'을 "내 자식들에게 주는 가훈으로 삼는다"고 할 정도로 그를 숭모했다. 그는 또 해방 후 경남일보 주필로 있던 중 일제 경찰 순사부장 출신 사장의 친일경력을 논설을 통해 변호했던 사실도 김경현의 다른 책(일제강점기 인명록)을 통해 밝혀졌다.
은초 정명수 또한 작고(2001년)할 때까지 진주에서 어른으로 추앙받는 인물이었으나 1941년 <매일신보>에 일제의 대동아 해방 성전을 기리는 '흥아유신' 축하광고를 냈고, 일제 말기에는 전시 민간통제기구인 '경방단' 단장을 지내기도 했다.
김경현은 이번에 재출간한 책에서 이들이 일본까지 가서 세운 송덕비를 "일본언론은 크게 보도했으나 어찌 된 영문인지 국내언론에서는 단 한 줄도 보도되지 않았"는데, 이는 "자신들의 행위가 그렇게 당당하다고 보기 어려웠는지 아니면 일말의 부끄러움이 남아 있었는지 알 수 없지만, 보도자료를 만들어 언론에 돌리지 않고 쉬쉬했기 때문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김경현에 따르면 이마무라 교장은 진농에서 항일사건이 일어나자 사건에 연루된 학생들을 모조리 퇴학 및 무기정학 처분을 내렸던 인물이다.
이번 책 출간을 계기로 정명수 설창수 두 사람의 친일의혹에 대한 논의가 이어지길 바란다. 특히 일제 말기 전시 상태에서 경방단장을 했던 이력이라면 친일혐의가 아주 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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