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러의 격려 - 베란 울프 지음, 박광순 옮김
이른바 성공한 사람들은 '인생은 비즈니스'라고 믿으며 행동이나 태도를 결정해 나간다. 이런 유형의 사람들이 언제나 맨 먼저 던지는 질문은 "어떤 이득을 얻을 수 있을까?"다. 어떤 새로운 경험에 대해 무엇보다 먼저 "이것이 내게 얼마나 가치가 있을까?"라고 생각한다. 이런 생활방식에 기반을 둔 세계에서는 경쟁에 이기느냐 지느냐에 따라 행복이 결정된다. 이것은 동물 세계에서 보이는 적자생존의 방식이다. 약한 자가 강한 자에게 잡아먹힌다. 적자(適者)가 그 힘으로 약자를 희생물 삼아 살아남는다. 이 경우에는 삶이 악착같은 공격과 성공적인 방어의 문제가 되어버린다. 잔인한 승리와 비참한 패배 사이를 오가는 삶이다.
오늘날 대다수의 사람들이 인생은 비즈니스라고 생각하고 있다. 그들의 인생철학은 기본적으로 공격적인 경쟁과 개인의 능률을 중시한다. 고층 건물, 러시아워, 초고속 자동차, 고압적인 판매술 등은 모두 개인 경쟁이 낳은 눈부신 성과다. 노예제도나 전쟁, 계급투쟁, 전제정치, 농노제, 이웃 강국에 의한 소국의 착취도 마찬가지다.
'힘이 곧 정의다'라는 신념은 이처럼 '오로지 비즈니스적이기만 한' 인생 관점에서 직접 연유된 것이다. 이러한 공격적 이기주의가 행복을 방해하는 다양한 형태의 신경쇠약을 초래한다. 가정이나 사업체 내에서 개인적 위신이나 권력을 손에 넣으려고 싸우는 모습을 본 적이 있는 사람은 이런 생활방식이 얼마나 유해한지 잘 알고 있다. 세계사 책을 읽어봐도 알 수 있다. '그곳에서 어떤 이익을 얻을 수 있을까?'하는 획득주의 정파가 실패하는 것을 보면 누구나 다 깊은 인상을 받을 것이다.
우리는 이런 파괴적인 경쟁 체제가 개인이나 국가에 무서운 재난을 초래하는 것을 간과하곤 한다. 인간의 경쟁 체제는 한쪽이 대승리를 거두었을 때 동물들의 경우와는 달리 그 자리에서 상대방을 죽이거나 하지 않는다. 대신 장애자나 불구자, 혹은 타인에게 의존하는 무기력한 인간이 생기게 된다. 범죄나 변태적인 행동, 정신장애가 초래되고, 승자나 패자나 똑같이 그로 인한 희생이나 손실에 짓눌리게 된다.
우리가 인간으로서 행복해지려면 수동적 인간처럼 스스로 만족에 겨운 눈으로 우리의 인생을 바라봐서도 안 되고, 또 비즈니스적인 인간의 탐욕스런 눈으로 인생을 바라봐서도 안 된다.
행복은 우리 인간이
훌륭하고 멋진 인생에 투자하는 대가로
자연이 지불해주는 이자다.
그것은 완성되었을 때의 포상금이 아니라,
올바른 방향으로 첫걸음을 내디딜 때부터
받을 수 있는 배당금이다.
게다가 복리로 늘어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