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행복하기 위해 사는 게 아니라고?
진화심리학자라는 서은국 연세대 심리학과 교수가 쓴 <행복의 기원>이라는 책을 읽고 있는데, 뭔가 좀 이상하다.
책에서 인간이 행복감을 느끼는 것은 오로지 '생존과 번식'을 위해서라고 한다. 즉 행복은 삶의 이유도, 목적도 아니고 생존을 위해 필요한 도구일뿐이라고 한다.
이 책에서 '행복'은 '쾌감'과 거의 같은 말로 쓰이는데, 인간의 "가장 본질적인 쾌감은 먹을 때와 섹스할 때"라면서 "진화의 여정에서 쾌감이라는 경험이 탄생한 이유 자체가 두 자원(생존과 번식)을 확보하도록 하기 위함이었다"고 결론 짓는다.
그러면서 그 근거로 인간은 100% 동물이며, 인간의 조상은 목숨 걸고 사냥을 하고 기회가 생길 때마다 짝짓기에 힘쓴 자들이라는 것이다. 무엇을 위해? 삶의 의미를 찾아서? 자아성취? 그게 아니라 고기를 씹을 때, 이성과 살이 닿을 때 한 마디로 느낌이 '굿'이었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진화한 현대의 인간에게도 동물적 본능이 100% 그대로인 이유에 대해서도 인류의 역사 600만 년 중에서 농경생활을 하며 문명인으로 살아온 세월은 고작 6000년으로, 1년 365일로 치면 2시간에 불과할 정도로 너무 짧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여기까지는 뭐 그럴 수도 있겠다 싶었다. 쉽게 동의할 수 없는 건 다음 대목이다.
책에서 "인간은 새로운 것에 놀랍도록 빨리 적응하는 동물"이기 때문에 큰 돈을 벌거나 초고속 승진, 원하던 상대와 결혼 등 어떤 대단한 조건을 갖게 되어도 행복감은 곧 초기화돼버린다고 주장한다. 결국 큰 성취나 성공은 행복을 지속시켜주지 못하며, 결국 먹는 것과 섹스가 행복(쾌감)의 원천이라는 것이다.
저자의 주장대로 인간이 새로운 것에 '놀랍도록 빨리 적응하는 동물'이라면, 과거 인류의 역사가 아무리 길다 한들 문명인으로 살아온 최근의 6000년에 '놀랍도록 빨리 적응'한 동물이 현세의 인간이라고 볼 수도 있지 않을까? 또한 원시인에게는 생존과 번식의 수단이 사냥으로 획득한 고기나, 힘으로 쟁취한 섹스라 치더라도, 현대의 인간에게는 돈과 성공이 생존과 번식의 주요 수단으로 변화한 것 아닌가? 진화심리학의 관점으로 보더라도 이 또한 진화의 결과물 아닌가?
동의하기 어려운 점은 또 있다.
저자는 "많은 사람이 돈이나 출세 같은 인생의 변화를 통해 생기는 행복의 총량을 과대평가한다"면서 "아무리 대단한 조건을 갖게 되어도, 여기에 딸려 왔던 행복감은 생존을 위해 곧 초기화돼 버린다"고 주장한다. 그러면서 몇 가지 예를 드는데, "30년 적금을 부어 새 집을 샀을 때나 수년 동안 몸과 약간의 영혼까지 팔아서 얻은 승진이 주는 즐거움도 불과 며칠"이라고 주장한다. 심지어 좋아하는 사람과 결혼을 해도 예식장을 나서는 순간부터 행복감이 떨어진다고 말한다.
특히 "초고속 승진의 기쁨, 뇌의 행복전구가 켜지는 이유는 승진 자체가 아니라 승진이 가져다주는 사람들의 축하와 인정 때문"이라고도 하는데, 나는 동의하기 어려웠다. 승진은 주변의 축하와 인정이 아니더라도, 자신의 결정권한과 자율성이 더 커지고 넓어졌다는 점에서 적지 않은 만족감을 준다.
인간은 같은 일을 하더라도 타인의 지시에 의해 어쩔 수 없이 해야 하는 일과, 스스로의 판단과 결정으로 하는 일의 만족감과 성취감은 천지 차이다. 우리가 군대에서 상관의 명령에 따라 왜 그 일을 해야 하는지도 모르고 억지로 할 때가 가장 괴로운 것도 그 때문이다. 강제동원되어 하는 농사일과 자기 땅에 씨를 뿌리고 자라는 모습을 보며 수확하는 재미가 얼마나 다른지를 저자는 모르는 것 같다.
저자는 명품 가방을 샀을 때도 기쁨은 잠시뿐이라는데, 나는 그렇지 않을 거라 생각한다. 그 가방을 들고 나갈 때마다 행복해하는 사람은 과연 없을까?
저자는 또한 책 <행복의 기원>을 주제로 한 '그랜드마스터클래스' 강연(유튜브)에서 "돈은 최소한의 결핍 수준을 넘으면 더 이상 행복에 큰 영향을 주지 않을 뿐 아니라 거의 없어진다"라고 말했다. 과연 그럴까?
그는 책에서 "돈을 자신이 아닌 남을 위해 쓸 때 더 행복해진다는 연구들이 나오고 있다"면서 한 실험결과를 소개한다. 대학생들에게 돈을 주고, 한 조건에서는 이 돈을 스스로를 위해 쓰라고 했고, 다른 조건에서는 남을 위해(가령 선물 구입) 쓰도록 했다. 그 후 행복감을 비교해보니 남을 위해 쓴 그룹의 행복감이 높았다고 설명한다.
만일 그렇다면 이 결과는 앞의 주장과 상치된다. 즉 돈이 많으면 많을수록 남을 위해 더 많은 돈을 쓸 수 있는 여력이 커지지 않나? 당장 내 경우만 해도 그렇다. 나는 지금도 돕고 싶은 단체나 사람이 많은데, 내 재정 여력상 더 많은 도움을 주지 못하는 게 안타깝다.
저자는 이렇게 결론을 내린다. "행복은 관념적인 생각이나 태도, 가치가 아닌 구체적 경험이다. 의미있고 가치로운 삶이 행복한 삶은 아니다." 그러면서 이렇게 쐐기를 박는다. "철학자들이 가치로운 삶이라고 한 것을 현대인이 자꾸 행복과 연관을 시키는데, 이런 삶을 추구할수록 많은 경우에는 자기의 경험적인 즐거움과 행복은 줄어들 가능성이 크다."
그런데 그 '의미있고 가치있는' 행동이 타인을 돕는 일이라면, 그 일로 내 행복감이 높아진다면 그게 관념이나 생각, 태도가 아니라고 할 수 있을까?
게다가 그는 외모에 대해서도 이렇게 말한다. "외모 상위권과 하위권 사람들의 행복값을 비교해보면, 외모와 행복은 유의미한 관계를 보이지 않는다. 즉, 내가 다른 사람 눈에 얼마나 아름답게 보이느냐(객관적 미모)는 자신이 느끼는 행복감과 관련이 없었다. 객관적으로 얼마나 많이 가졌느냐보다 이미 가진 것을 얼마나 좋아하느냐가 행복과 더 깊은 관련이 있다."
특히 마지막 문장, "객관적으로 얼마나 많이 가졌느냐보다 이미 가진 것을 얼마나 좋아하느냐가 행복과 더 깊은 관련이 있다"고? 좋아한다는 것, 그게 관념이나 생각, 태도가 아니면 대체 무엇일까
물론 나도 물질적 풍요가 곧 행복과 비례한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이 책에서 공감이 가는 이야기도 적진 않다. 그런 이야기를 간추리면 다음과 같다.
"좋아(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음식을 먹는 것, 그것이 바로 행복이다."
"가장 빈곤한 인생은 곁에 사람이 없는 인생이다."
"행복한 이들은 공연이나 여행 같은 '경험'을 사기 위한 지출이 많고, 불행한 이들은 옷이나 물건 같은 '물질' 구매가 많다."
"학계의 통상적 견해는 행복 개인차의 약 50%가 유전과 관련이 있다고 본다."
"행복은 기쁨의 강도가 아니라 빈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