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한다는 것은 사랑하는 것처럼 행동하는 것일 뿐
자신을 희생해 오로지 상대를 위해 최선을 다하고 싶다는 실체적인 맹목적 충동 따위는 존재하지 않는다. 확실히 말하자면 이러한 때에는 상대를 버리고 싶은 기분이 당연히 든다. 하지만 서로가 그렇게 맹목적인 충동을 가지고 있다는 환상, 배신하고 싶다는 마음 따위는 전혀 없다는 환상을 믿고 그 환상을 좇아 행동하는 것이 연애이다.
따라서 사랑한다는 것은 사랑하는 것처럼 행동하는 것일 뿐, 진실한 연애와 위장된 연애 사이에는 아무런 차이도 없다.
모든 인간관계에 대해 말할 수 있는데 특히 연애에서의 관계는 오로지 두 사람이 공유하는 공동 환상에 달려 있다. 공동 환상의 수준과 질이 두 사람 관계의 수준과 질을 결정한다.
두 사람이 각각의 개인으로서는 얼마나 훌륭한 인간이든 또 얼마나 비열한 인간이든 하나의 환상을 공유해 서로 연결되어 있는 한 그 관계 속에서 두 사람은 완벽히 같은 수준의 인간이다.
훌륭한 사람과 비열한 사람이 만났을 때 거기에 연애 관계가 설립하기 위해서는 같은 수준에 닿을 필요가 있다. 그렇지 않으면 관계는 성립되지 않는다. 평소 성실하고 훌륭한 남자(여자)가 어떤 여자(남자)와의 관계에서 어처구니 없이 비열한 행동을 하거나 반대로 천한 근성의 소유자인 남자(여저)가 연애를 시작하고 몰라볼 정도 좋은 사람이 되거나 하는 것은 그 때문이다.
공동 환상의 수준이 높은 경우에도, 낮은 경우에도 어쨌든 두 사람은 같은 수준이 된다. 한쪽은 높은 수준에 있고 다른 쪽은 낮은 수준에 있을 수는 없다. 만일 한쪽은 높은 수준에 있고 다른 한쪽은 낮은 수준에 있다면 같은 환상을 공유하고 있지 않은 것이며 결국 관계가 성립되지 않는다.
공동 환상을 높은 수준으로 유지하기 위해서는 엄청난 노력이 필요하다. 그것은 사소한 불신 따위를 계기로 걸핏하면 낮은 쪽으로 흘러가기 쉽다. 공동 환상의 수준이 내려가면 두 사람 모두 그 수준으로 떨어진다.
가정법원 등에서 이혼하네 마네, 하고 싸움하는 부부를 상담해본 적이 있는 사람이라면 쉽게 이해할 테지만 그런 경우 부부는 완전히 같은 수준으로 떨어져 있다.
-게으름뱅이 학자, 정신분석을 말하다, 기시다 슈 지음, 권정애 옮김, 펄북스, 1만 6000원
잘 이해되지 않는 부분도 있지만, 어쩌면 그런 것도 같다. '공동 환상'이란? 어쩌면 서로가 상대방에게서 공통적으로 얻고 싶은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