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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태인 Jan 05. 2022

퇴직 후 퇴직선배를 만나다 : 양운진

양운진 전 교수와 저녁  술

공식 백수가 된 새해 첫 월요일. 선배 백수를 만났다. 황송하옵게도 내가 청한 게 아니라 선배께서 먼저 불러주셨다.

백수로 행복하게 사는 방법에 대해 많은 질문을 던졌다. 다소 무례할 법한 질문에 대해서도 자상하게 말씀해주셨다. 하지만 아직 이해하지 못한 게 많다. 다음에 또 뵙고 여쭙겠다고 했더니, 그러라고 하셨다.


지금부터 내가 할 일을 정했다. 퇴직 후 멋지게 사는 선배들을 찾아 그분들의 노하우를 배우는 일이다.


주량이 무학 화이트 3병이라는 양운진 선생. 처음엔 내 취향에 맞춰 진로를 마시다가 싱겁다며 두 병째부터 화이트를 시키셨다. 오늘처럼 기분 좋은 날은 3병, 집에서도 하루 2병씩 매일 마신다고 하셨다.

양운진 선생님과 함께

1949년생으로 우리나라 1세대 환경운동가인 양운진 선생은 제주도에서 할아버지도 교사, 아버지도 교사인 집안에서 태어났다.


“(일제시대) 할아버지가 교사로 있던 학교에서 어린아이들이 싸움을 하다가 조선말을 써버린 거야. 그래서 학교에서 기합(징계)을 줘야 한다는 논의가 붙었는데, 교무실에 일본인 교사가 2/3이고 한국인 선생은 두셋 명밖에 없었어. 그런데 어떻게 이 한국학생 편을 들어야 할까. 순간적으로 생각했다고 보진 않지, 평소에 생각한 게 있으니까.

제주도는 꿩이 많아. 애들이 들에 산에 다니다가 꿩 알을 주워 와. 그래가지고 그 꿩 알을 암탉이 알 품는 데다가 넣어두는 거야.”


-꿩 알은 달걀에 비해 작지 않습니까?

“큰 차이는 없어. 조금 작아. 그래놓으면 암탉이 그걸 다 품어가지고 새끼가 나와. 암탉이 새끼(병아리)를 데리고 이렇게 왔다갔다 하지. 그런데 꿩 병아리가 닭 병아리보다 조금 빨리, 야생이니까 날아가버려. 그걸 본 사람들이 ‘아이구, 저 키운 공도 모르고. 저건 역시.’라고 탄식하는 경우가 있다고 우리 할아버지가 그 교무실에서 얘기를 한 거야. 암탉이 얼마나 정성을 들여 알을 품고 키웠는데, 꿩 새끼는 지가 닭이 아니라고 내뺐으니 이 꿩이 참말로 나쁜 놈이죠?

이게 그래. 일본사람이 한국사람을 품어주고 했는데, 한국놈이 거기서 기어나와 가지고 나는 닭이 아니라고 한국말을 하는데, 이걸 뭐라 하나 메타포라 하나? 은유로…. 할아버지가 그런 거야. 제주도는 꿩을 많이 키우는데 이렇게 꿩 알을 부화시켜 키우면 꿩이 달아나 버린다. 닭이 아무리 정성을 들여도. 꿩 치(雉) 자가 있고 닭 계(鷄) 자가 있어. 꿩과 닭은 뿌리가 달라. 그렇게 할아버지가 교무실에서 이야기를 했다고 해. 그러고 나서 해방이 되고 했는데, 우리 할아버지는 당신 말하는대로 하면 민족주의자지. 그런데 너도 알다시피 해방 후 친일파들이 다 잡았잖아. 그래서 우리 할아버지는 표적이 되는 거지. 그래서 4.3사건 와중에 어느날 저녁에 경찰서에서 와서 ‘좀 가봐야 겠습니다’ 한 거야. 할아버지가 교감이었는데, 그렇게 갔다가 그날로 행방불명 되어버렸어. 아무것도 뭐, 시체도 어딨는지 모르고.”


-꿩 이야기는 꿩과 닭이 뿌리가 다르듯이 한국인과 일본인이 다르니 어쩔 수 없다는 걸 설명하기 위해서 한 건가요?

“그렇지. 해방 후에 출간된 제주도교육사에 에피소드 같이 기록되어 있지. 그 제목이 ‘雉鷄之根’이야. 우리 할아버지가 치계지근이라는 말은 안 했겠지마는 그 얘기가 후대, 100년 후에까지 전해져와서 제주교육사에 실린 거지.”

양운진 선생


-그걸 제자들 중 누군가 기억을 해서 그렇게 되었겠네요.

“그건 모르겠지만 그 책이 공식적으로 나와 있어. 우리 할아버지가 명 자 만 자인데.”


-양명만? 그게 정확히 어떤 책인가요?

“제주도교육청에서 나온 제주교육통사. 그 일로 인해서 우리 할아버지는 좌천을 당했어. 그 당시는 한림국민학굔데, 지금도 한림은 큰 읍이거든. 그런데 그 당시 선생이 둘밖에 없는 저 벽지에, 조그마한 분교 같은데로 좌천된 거야. 분교 선생을 하던 중 해방이 되고 분교 선생 직책으로 있을 때 잡혀가가지고 행방불명이 되어버렸어.”


-그때가 1948년이었나요?

“내가 49년생이고, 할아버지가 49년~50년 그 무렵에 그렇게 되셨지.”


-4.3사건은 1948년 시작되었지만 그 이후에도 계속 진행 중이라고 봐야 하니까.

“그게 내 아이덴티티라는 게, 내 어릴 때 치계지근이라는 글자가 액자에 쓰여 있었거든. 그걸 아버지가 쓴 거라.”


-아, 아버지가 할아버지의 치계지근 그 일을 알고?

“응. 그때가 내 초등학교나 중학교 때니까. 아버지가 술 한 잔 드시면 나에게 그 이야기를 자꾸 하는 거야. 내 어린데 뭘 알겠나. 하지만 그것이 ‘아, 사람은 뿌리가 있어야 하는구나’ 하는 생각이 머리 속에 박혔지. 술 처먹은 아버지가 미웠지만, 그 얘기는 남았어.”


-그러니까 시류에 휩쓸리지 않고 내 나름대로 뭔가 분명한 원칙이나 뿌리, 이런 게 있어야 겠다라는 생각을 하신 거네요?

“그렇지. 니 인제 담배 피우고 온나.”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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