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에선 어묵을 '간또'라고 불렀다
아마 1980년이나 81년쯤이었을 거다. 내가 고2~고3때 겨울이었다.
부산 충무동 왕자극장 앞에 간또(어묵)를 파는 포장마차 같은 가판이 즐비했다.
하얀 김이 뭉게구름처럼 솟아오르는 가게에서 소주 잔술을 시켰다. 당시 소주 한 병은 연쇄점에서 250원이나 300원쯤 했는데, 잔술은 100원이었다. 요즘 소줏잔보다 좀 커서 한 병을 부으면 딱 다섯 잔이 나왔다.
잔술을 주문하고 어묵을 먹고 있는데, 50대 초로의 한 남자가 왔다. 초쵀한 행색이었다. 하루 벌어 먹고 사는 노가다(일용노동자)임이 분명해보였다.
"소주 한 병 주쇼."
주인여자가 술병과 잔을 내놓자 말했다.
"그라스(글라스)로 주쇼."
그는 맥줏잔에 소주를 가득 따랐다. 당시 소주는 맥주 글라스에 부으면 딱 두 잔이 나왔다. 남자는 소주를 원샷으로 꿀꺽꿀꺽 들이켰다.
그 다음엔 당연히 어묵을 안주로 먹을 줄 알았다. 하지만 그는 이렇게 말했다.
"거기, 무 좀 잘라주쇼."
주인여자는 국물용으로 밑바닥에 넣어둔 무 덩이를 별 말없이 조금 잘라 그에게 건넸다. 그는 무 반쪽을 툭 베어먹은 후 오른손에 쥔 채, 왼손으로 남은 소주를 글라스에 부었다.
다시 원샷으로 소주를 들이킨 후, 남은 무를 입안에 넣더니 바로 소줏값을 현금으로 건넨 후 몸을 돌려 떠났다.
그의 쓸쓸한 뒷모습은 지금도 나에게 잔영처럼 남아 있다.
#오늘밤은_어묵탕 #어묵_먹을때마다_생각나는_남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