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아침을 열며' 11월 칼럼 - 로봇 이야기
일론 머스크가 주주총회에서 1조달러 패키지 승인받은 뒤,
무대에 올라 옵티머스와 춤추는 장면을 보면서,
그가 다가올 로봇세상을 설명하는 걸 들으면서,
살짝 '섬뜩한' 생각마저 들었다.
"옵티머스가 범죄도 막을 수 있습니다. 모든 사람들에게 옵티머스를 하나씩 붙여주면, 따라 다니면서 범죄를 저지르려고 할 때 예방하면 됩니다."
영화 'Minority Report'에서 탐 크루즈의 역할이 범죄예방단이었다.
데이터 기반으로 범죄 확률이 높은 사람과 상황에 대한 알람이 오면 출동하는 식이었다.
그 상상에 비하면 일론의 생각과 표현은 너무 '귀여운' 발상이긴 하지만...
한편으론 그만큼 '낯선' 저 세상으로 넘어가고 있다는 건 엄연해 보인다.
이번달 칼럼에선 로봇 얘기를 메모해 보았다.
https://n.news.naver.com/mnews/article/469/0000898086?sid=110
로봇 상용화 시대의 낯선 풍경
로봇·인간에 대한 철학적 물음
바뀐 세상을 위한 사회적 논의
로봇과 관련해서, 최근 주목할 만한 세 가지 장면이 있었다. 공상 과학 영화에나 나올 법한 이야기들이 이제 우리 생활 속 현실로 다가오겠구나 싶은, '신호'로 여겨지는 장면들이다.
첫 번째는 일론 머스크가 테슬라 주주총회에서 '풍요의 미래(A Future of Abundance)'를 선언하는 장면이다. 그는 휴머노이드 로봇 '옵티머스'가 인류 문명을 근본적으로 바꿀 것이라고 단언했다. 그의 논리는 명확하다. 로봇이 인간의 노동을 대체해 '노동력 부족'이라는 경제의 근본 제약을 해소하면, 생산량은 사실상 무한에 가까워지고 빈곤은 종식된다는 것이다. 머스크는 모든 인간이 자동차보다 저렴한 2만 달러 미만의 가격으로 로봇을 소유하고, 결국 로봇의 수가 인간을 넘어설 것이라는 구체적 청사진을 제시했다. 동시에 그는 '터미네이터' 시나리오를 막기 위해 테슬라와 같은 공개 기업이 대중의 감시 아래 투명하게 기술을 개발해야 한다는 책임론을 강조하며, 거대한 야망과 위험성을 동시에 드러냈다.
두 번째 장면은 실리콘밸리에서 벌어지고 있는 치열한 인재 전쟁 속 구글의 행보이다. 현대차가 인수한 보스턴 다이나믹스의 상징적 로봇 '아틀라스(Atlas)' 개발을 총괄했던 핵심 인물을 구글 딥마인드가 스카웃했다. 이는 세계 최고의 로봇 '몸체(하드웨어)' 기술이 세계 최강의 인공지능 '두뇌'기술과 결합하는 신호탄이다. 그 신호는 휴머노이드 경쟁의 패러다임을 바꾸는 전환점의 의미도 담고 있다. 이제 기업들은 AI와 하드웨어를 따로 개발하는 단계를 넘어, AI에 최적화된 몸체를 직접 설계하는 '수직 통합' 전략으로 나아가고 있는 것이다. 테슬라와 보스턴 다이나믹스, 그리고 구글 등이 벌이는 패권 다툼은 기술 발전의 속도를 극한으로 끌어올릴 것이다.
세 번째 장면은 중국에서 등장한 '너무 인간스러운' 로봇이다. 중국 전기차기업 샤오펑이 공개한 2세대 휴머노이드 '아이언'은 인간과 너무 흡사한 외모와 움직임을 보였다. 그래서 오히려 섬뜩함을 느끼게 하는 '불편한 골짜기(Uncanny Valley)' 현상을 불러일으켰다. 이는 로봇이 우리 일상 공간에 물리적으로 스며들면서 사람과 로봇의 혼동문제가 곧 등장할 것임을 시사한다. 아울러 기술 경쟁이 미국을 넘어 전 세계적인 현상이란 점도 보여준다.
이 세 장면이 시사하는 미래를 상상해본다. 로봇이 단순한 기계를 넘어, 나의 일과와 습관을 학습하며 움직이는 '디지털 트윈(Digital Twin)', 즉 나의 물리적 아바타로 역할을 할 수도 있다. 이 대목에서 근본적인 질문 두 가지를 떠올리게 된다. 첫째, 나의 '디지털 트윈'과 그가 생성한 나의 사적인 데이터 소유권은 누구에게 있는가? 이 '디지털 정체성 주권'이 기업에 종속된다면, 개인의 자유의지는 심각한 위협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둘째, 노동의 가치가 사라진 사회에서 인간의 '쓸모'는 무엇으로 증명될까? 이는 인간의 존재 가치 자체를 재정의해야 하는 철학적 숙제를 던진다.
로봇 전쟁의 서막은 이미 올랐다. 머스크가 약속한 '풍요의 유토피아'가 될지, 소수 플랫폼기업에 의해 통제되는 '디스토피아'가 될지는 우리 공동체의 선택에 달렸다. 기술 발전에 대한 감탄을 넘어, 로봇이 창출할 부의 분배와 디지털 주권에 대한 사회적 논의를 서둘러야 할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