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아침을 열며' 칼럼 (2026. 01. 13)
새해 첫 칼럼은 마크 앤드리센의 '1조달러짜리 질문' 이야기를 다뤘습니다.
https://n.news.naver.com/mnews/article/469/0000908541?sid=110
유튜브 영상을 보려는데 광고가 뜬다. 뉴스 기사를 읽는데 팝업창이 화면을 가린다. 매일 겪는 '광고 지옥'의 단면이다. 그런데 30년 전 실리콘밸리의 한 천재가 이 현실을 바꿀 수 있었다고 한다면? 주인공은 넷스케이프의 창업자 마크 앤드리센(54)이다. 투자사 '앤드리센 호로위츠(a16z)'를 이끄는 그는 실리콘밸리에서도 논쟁적인 인물이다. 기술이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며, 혁신을 가로막는 규제와 윤리적 우려를 '적'으로 규정하는 극단적 '기술 지상주의자'다.
그는 1993년 브라우저에 '소액 결제 버튼'을 넣지 못한 걸 천추의 한이라고 고백한다. 당시 금융권의 반대와 규제 탓이라 한다. 만약 그때 버튼이 장착됐다면, 요즘처럼 개인정보를 팔아넘기는 대가로 무료 서비스를 쓰는 '광고 만능' 세상 대신, 창작자에게 적절한 대가를 지불하는 새로운 웹 생태계가 열렸을지도 모른다. 기술적 표준 하나가 30년 뒤 경제 생태계의 DNA를 결정짓는다는 사실만큼은 그의 말이 맞다.
2026년 새해, 그가 '1조 달러짜리 질문'이 담긴 영상을 내놨다. 통찰력 있지만 동시에 섬뜩하다. 그는 지금을 인공지능(AI혁명)의 '초기 3년 차'로 규정하며, AI 비용이 급락하는 '하이퍼 디플레이션'과 함께 앞으로 전 산업에서 '지능'이 공기처럼 쓰일 거라 예견했다.
질문은 세 가지다. 첫째, 모든 지식을 담은 거대한 '갓 모델(God Model)'이 독식할까, 아니면 스마트폰에서 돌아가는 작고 빠른 추론형 모델이 승리할까? 이는 내 사생활 데이터가 거대 기업의 서버, 즉 '디지털 신'에게 바쳐질 것인가의 문제이기도 하다. 둘째와 셋째는 오픈소스 진영의 주도권과 스타트업의 생존 여부다. 향후
AI 경제의 패권을 가를 핵심 변수들이다.
현재 상황은 앤드리센이 바라는 대로 '규제 없는 무한 경쟁'으로 치닫고 있다. 최근 중국 '딥시크'의 도약은 미국 빅테크들에 충격을 안겼다. 수조 원을 쏟아부은 미국의 폐쇄형 모델을 비웃듯, 중국은 저비용 고효율 모델을 선보였다. 앤드리센이 찬양하는 '가속의 시대'는 역설적으로 국가 간 패권 다툼과 지정학적 위기라는 청구서를 들이밀고 있다. 기술 생태계가 우아한 혁신의 장이 아닌, 살벌한 데이터 전쟁터로 변한 셈이다.
이런 전장에서 한국은 어떻게 해야 할까? 앤드리센의 '1조 달러짜리 질문'을 보며 역설적으로 '기술 주권'의 필요성을 절감하게 된다. 그와 같은 실리콘밸리 자본가들에게 우리의 미래를 맡길 수 있을까? 그들에게 한국의 문화나 윤리, 사회적 안전망은 안중에 없을 것이다. 이번 AI 표준 전쟁에서 밀려난 대가는 '지능 종속'으로 귀결될 수도 있다.
앤드리센은 "사람들은 말로는 AI를 두려워하지만, 행동으로는 이미 사랑하고 있다"며 대중의 이중성을 꼬집었다. 하지만 그 사랑이 맹목적인 '종속'이 되면 안 된다. 한국어 데이터를 지키고, 우리의 AI 모델을 키우며, 인재들이 떠나지 않게 생태계를 다지는 일은 단순한 산업 육성이 아니라 '디지털 식민지'가 되지 않기 위한 생존 전략이다.
30년 뒤, 우리는 무엇을 후회하게 될 것인가? 앤드리센의 질문은 유효하지만, 그가 제시하는 '무규제 질주'가 정답은 아니다. 우리는 그들의 방식이 아닌 우리의 윤리와 철학이 담긴 답을 찾아야 한다. 2026년은 그 골든타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