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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aruchi Jul 06. 2020

웰컴투비디오 손정우사건과 사회적 게으름

'손정우 미국 송환불허' 판결을 계기로 '사회적 게으름'을 생각해 본다

가끔씩, 같은 시대와 같은 공간에서 살고 있지만 

'상당히 다른 세상'을 살고 있는 이들이 있음을 실감할 때가 있다.


7월 6일, 오늘 나온 '손정우 미국 송환 불허' 관련 기사를 접하면서 다시 한번 그렇다.


이 건은 이런 생각을 불러일으키는 사안 중 하나이고, 여러모로 전환기 우리 사회의 세태를 방증하는 사례가 될 듯 하다. 일단 판결이 사회적 상식과는 차이가 커보인다. 왜 그럴까?


그래도 재판부가 (손씨에게) "면죄부 준게 아니다. 앞으로 국내에서 이뤄질 수사와 재판에 적극 협조하고 정당한 처벌을 받기 바란다"고 나름의 소명을 한 걸로 보이는데, 혹시 생략되고 오해된 부분도 있을 수 있는가 싶어 차근차근 살펴봤다.


손씨가 저지른 범죄는 2년 8개월간 다크웹 운영하며 4,000여명에게 아동청소년성착취물, 즉 음란물을 22만여건 제공하고 그 대가로 4억원 상당의 가상화폐를 챙긴 걸로 알려졌다. 


그런데 판결이 진행되면서 앞서 언급한 사회적 인식차가 드러난다.


1심에서는 징역 2년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했다. 

2심에선 징역 1년6개월 실형을 선고했다. 

이후 상고없이 형이 확정돼 복역하고 올 4월말이 만기 출소 예정이었다.


그리고, 미국 연방 법무부가 '자국내 피해자가 있는만큼 미국법에 따라 손씨를 처벌하겠다'며 범죄인 인도조약에 따라 송환을 요구했다. 법무부는 검토 끝에 대상 범죄 중 국내법률에 의해 처벌 가능하면서 국내 법원의 유죄판결과 중복되지 않은 ‘국제자금세탁’ 부분에 대해서만 범죄인인도 절차를 진행키로 했다.

이후 두달여 시간이 흘렀고, 이번에 법원이 인도심사 여부를 결정하며 송환불가를 판결한 것이다.

(참고로, 자금세탁은 우리나라에선 최고 징역 5년 또는 벌금 3,000만 원에 처해지는데 미국에선 액수에 따라 최고 20년에 처할 수 있다고 한다.)


아무래도 첫 단추부터 잘못 꿰어진 게 아닌가 싶다.

이는 개인적 소감만이 아니다.

판결 기사가 알려지면서, 현재 포털과 소셜미디어에서 사회적 공분이 일고 있는 걸로 보인다.

(이번 판결을 내린 판사가 대법관 후보로 올라 있는데, 이를 철회하라는 청와대 청원까지 등장했다)


집행유예는 아예 말할 것도 없고, 1년6개월 실형마저도 '솜방망이' 처벌로 

인식되다보니 이번 송환불가 판결을 계기로 사회적 분노 표출이 일어나는 걸로 이해되는 것이다.  


사실 재판부 스스로도 "이 사건이 우리 사회의 지대한 관심과 주목을 받게 된 원인은 아동·청소년성착취물 범죄가 반인륜적이고 극안한 범죄인데도, 그동안 범죄인에 대해 우리 국민의 법감정에 부합할 정도로 적정한 형사처벌이 이뤄지지 못했기 때문"임을 적시하고 있다. 


그렇다면, 이러한 문제의식을 갖고 애초부터 적절한 처벌이 이뤄졌다면 좋았을텐데, 왜 그러지 못했을까. 

그걸 풀지 못하면 문제는 반복될 게 뻔하다. 문제에 대한 일부 인식은 있는 듯 하지만, 실질적인 자성과 실질적인 대응책에 대한 고민은 없다. 이미 그런 반복이 상당 기간 이어져 왔기에, 재판부의 언명이 힘을 얻거나 설득력을 갖지 못하는 걸로 이해된다.


문제의 원인은 복합적일 수 있지만, 

개인적으로 주목하는 '디지털 시대 사회적 문화지체'의 측면에서 이 사안을 짚어보려 한다.  

이 건에서 그 바탕에 깔린 근본적 문제로서, '사회적 게으름'에 대해 지적하고 싶은 것.

'사회적 게으름'이란 표현은, 디지털시대로 접어들며 사회적 변화가 다방면에서 빠르게 일어나고 있지만, 사회적 법제도와 다양한 질서를 수호하는 주체들은 그 변화의 맥락을 따라잡고 반영하는 노력이 매우 미흡해 보인다는 문제의식을 담고 있다.


에둘러 가는 느낌 들지만, 잠깐 변화의 맥락을 짚어본다.

우선 큰 흐름상 기술 진보와 함께 사회적 문화와 일상의 풍경이 달라져왔음을 우리는 체감한다. 

이를테면 음악영역을 보자. 냅스터가 나왔고 MP3파일로 음악을 주고받고.. 아이팟 등 하드웨어도 등장한다. 

그런 기술의 발전에 힘입어 일상의 음악 소비 행태가 바뀌었다. 

그 속에서 흥하는 신생 사업자도 나오고 기존 거대 사업자가 망하기도 한다. 산업재편마저 일어나는 것. 

음악 거래의 질서도 바뀐다. 기존의 관점과 제도가 그대로 유지되기 어렵다 손볼게 많아진다. 

손쉬운 저작권 침해 환경 속에서, 부작용도 속출한다. 어떤 변호사 사무실에선 음악을 불펌해서 쓰는 개인들에게 고발한다며 압박하고 합의금을 받아내기도 했다. 그 과정에서 두려움을 느낀 젊은이가 자살을 하기도 했다. 사회적으로 시차가 큰 부분은 빠르게 손보고 새로운 질서를 정립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그러지 못해서 생긴 비극이다.


그리고, 디지털 시대의 이러한 기술의 진보를 활용해 이번 사건의 손정우처럼 본격적인 범죄를 벌이고 수익을 챙기는 악한 사례도 등장하고 있다. 이번 사건에서 드러나듯, 이러한 사회악과 범죄들에 대해 우리 사회는(특히 사법부는) 분명한 신호를 주지 못했고 그게 상당시간 반복됐다. 유관된 공적 역할에 대해 사회적 신뢰도 약화되는 건 당연한 셈이다. (혹자는, 이번 판결에 대해 '미국에 송환할 경우 한국 사법부의 판결이 그간 얼마나 부실했는지를 드러내게 될 것을 우려해 송환 불허했을 것'이란 지적을 하기도 했다. 사실 여부를 떠나 그런 인식이 나오는 게 현실이다)


이번에 재판부에서도 고백했듯, 수사기관과 법원 모두 기존의 수사 및 양형 관행에서 빠르게 탈피해야 한다. 

특히, 선언적 입장 표명에만 그치면서 '사회적 게으름'에 안주하지 말고 실질적이고 실천적인 노력을 기울이길 촉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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