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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차가운 열정 Nov 05. 2021

[개묵상]_발 씻기

발뿐 아니라 손과 머리도 씻겨 달라고

산책하고 나면 발 어떻게 해요?

길에서 만난 반려견 주인들에게 물어본다. 다들 고민이다. 발을 씻을 때 애견 샴푸를 써야 하는지, 아니면 그냥 사람 손 씻는 거품 비누를 사용하는지. 일반 물티슈를 쓰는지. 전용 물티슈를 써야 하는지. 어떤 애들은 습진이 생기기도 한다던데. 발바닥 로션도 쓴다던데. 이렇게 매번 맨발로 돌아다니는 놈들의 발은 어떻게 해줘야 하는지.




그나마 발바닥만 더러워지면 다행이다.

솜이는 생긴 것과는 달리 마초 성향이 강하다. 어딘가 자기 구역에 어떤 강한 냄새가 나면 숫제 그 자리에 벌렁 드러눕는다. 등짝에 붙은 털로 냄새를 지우려고 몸부림을 친다. 냄새를 남긴 거라면 대체로 분변일 가능성이 높은데, 나참 더러워 죽겠다. 그래도 어찌나 씩씩하게 등을 문질러대는지, 이 구역은 내 거야, 하는 수컷 대장님의 포효가 느껴진다. 그렇게 멋진 폼은 녀석이 다 잡고, 뒤처리는 내가 다 해야 한다.




산책하면서 풀밭을 헤집고 다닌다.

가끔 진드기를 묻혀서 돌아올 때도 있다. 그건 면밀히 살펴보지 않으면 쉽게 발견하기도 어렵다. 일일이 내가 붙잡고 뜯어주지 않으면 그냥 맹하게 물어뜯기고 피를 빨린다. 스스로 깨끗하게 할 능력이 전혀 없다. 발 하나부터 몸뚱이 전체까지, 다 씻겨주고 말려주고 빗질해주고, 혹시 모를 진드기 색출까지도 열심히 해줘야 한다. 주인이.




그걸 믿고 저런다.

아무렇게나 드러누워 대장놀이를 한다. 우리 주인이 다 해줄 거니까. 스스로 발을 닦지 못해도, 더러워진 나를 씻겨 깨끗하고 보송하게 집안을 누비게 해줄 테니까. 가끔 차가운 웅덩이를 피해 조심히 다니더라도 어쩔 수 없이 산책하면서 묻는 온갖 오물을 우리 주인이 다 감당해 줄 거니까.






요 13:8. 베드로가 가로되 내 발을 절대로 씻기지  못하시리이다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내가 너를 씻기지 아니하면 네가 나와 상관이 없느니라
요일 1:9.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저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모든 불의에서 우리를 깨끗케 하실 것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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