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에 가면 쉴 수 있으니까
엘리베이터 교체 공사가 한창이다.
벌써 3주가 다 되어간다. 나는 그동안 제법 체력이 좋아졌다. 우리 집은 무려 10층이니까. 대략 6층쯤부터 숨이 조금씩 가빠지고 8층쯤 되면 허벅지와 무릎이 쥐어짜는 듯 아파온다. 종종 계단에서 동지를 만나면 서로를 독려한다. 힘 내시라고. 10층에서 먼저 하차하면 아직 21층까지 머나먼 여정이 남은 위층 사람들은 한숨과 함께 묵묵히 자기 길을 간다. 더 많이 힘들고 체력도 더 좋아질 것이다. 아마도.
산책을 끝나고 우리는 계단 앞에 서 있다.
산책을 더 하고 싶어서인지 계단이 부담스러워서인지 잘 모르겠지만, 좀처럼 올라가려고 하지 않는다. 어차피 가야 할 길인데, 목을 길게 빼고 엉덩이에 힘을 주며 버틴 들 무슨 소용이 있으랴? 산책하고 와서 피곤할 수도 있고, 목이 좀 마르기도 하겠다. 그렇다고 집에 안 갈 순 없지 않냐, 이제 좀 가자. 내가 목줄을 놓고 혼자 걸어가버리면 솜이는 제자리걸음으로 앉은자리를 다지며 앙탈을 부린다. 잉잉 소리도 낸다. 혼자 가면 어쩌라는 거냐고. 특히나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은 다른 층보다 훨씬 길어서 저길 가야지 하고 마음먹기가 쉽지 않다.
시작은 내가 도와줘야지.
도로 내려가서 솜이에게 팔을 벌리면 미안한지 주춤하다가 안기려고 앞발을 번쩍 올린다. 솜이를 안고 3층까지는 걸어가 준다. 그때부터는 내려놓으면 열심히 따라 올라온다. 그러다 7층쯤 가면 벌써 꾀가 나기 시작하고 슬그머니 702호, 또 802호, 902호로 자꾸 몸을 꺾는다. 대충 여기쯤에서 들어가면 안 될까? 혹시 우리 집이 아직은 아닌 거야? 아니야, 여긴 7층이잖아. 이제 8층 가자, 옳지 솜이 잘한다, 이제 9층 가자, 거의 다 왔어. 알아듣든 못 알아듣든 층수를 일일이 읊어주고 칭찬해주면서 끌고 올라간다. 몸에 묶은 줄이 위로 당겨지면 또 다급하게 마음을 먹어야 하고, 한번 오르막에 속도가 붙으면 앞발과 뒷발 사이의 리듬 때문에 좁은 계단 폭에서 멈추기도 어렵다. 그냥 막 달려 올라가는 수밖에. 그 박자를 맞춰줘야 한다. 너무 느리면 끌려 내려와서 내동댕이쳐지고, 너무 빠르면 앞발이 채 닿기도 전에 몸이 떠올라 버둥거린다. 섬세한 목줄 리딩으로 무려 10층까지, 어린 강아지와 나는 그렇게 호흡을 맞춰가며 집으로 돌아온다. 누군가 캠핑의 목적은 집이 얼마나 좋은 곳인지 깨닫기 위한 여정이라고 했는데, 우리의 산책도 그러하다. 와서 물 마시고 발 닦고 한숨 돌리며 앉아 있으면 역시 집이 좋다는 생각이 든다. 아무래도 계단 탓이 크다.
고난의 길이라 해도 갈 수 있다.
가파른 계단, 헉헉대며 온 힘 다해 아등바등 올라가는 길, 세상은 고달파도 내 집으로 가는 길은 항상 선명하다. 그 길만 따라가면 된다. 꽃길이 아니어도 쉬운 길이 아니어도 나는 간다. 붙들어 올려주고 안고 걸어가 주고 기다려주고 생각하게 해 주고 결단하게 해 주고 다시 도움닫기 폴짝폴짝 힘내라고 응원해주는 좋은 주인이 있으니까. 도착하면 물 마시고 푹 쉴 수 있는 안식처가 있으니까.
시 16:11. 주께서 생명의 길로 내게 보이시리니 주의 앞에는 기쁨이 충만하고 주의 우편에는 영원한 즐거움이 있나이다
고후 4:17.우리의 잠시 받는 환난의 경한 것이 지극히 크고 영원한 영광의 중한 것을 우리에게 이루게 함이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