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아지를 너무나도 원하는 아들이 아빠랑 동네 펫샵에 강아지를 구경하러 갔다가 전화가 왔다. 정말 귀여운 강아지를 발견했다며, 꼭 와서 한번만 보라고 말이다. 나는 이 부자의 엉뚱한 선택을 막기 위해 두 손을 걷어부치고 달려갔다. 빨리 말리지 않으면 진짜 한 마리 데려올 기세였기 때문에. 달려가서 우리 솜이랑 눈이 마주치는 순간을 기억한다. 이건 내 의지로 되는 일이 아닌 것 같았다. 나는 어느새 홀린 듯 그 자리에서 값을 지불하고 있었다.
솜이는 깨끗하고 보송보송했다.
옆 자리에는 혼자 응가를 하고선 그걸 밟고 돌아다니는 강아지들도 있었고, 아무렇게나 쉬를 하고 그 자리에 철푸덕 엎드리는 녀석들도 있었는데 말이다. 우리 솜이는 꼭 배변을 안 해서가 아니라, 저쪽 구석에다 해놓고 이쪽으로 와서 놀았다. 이렇게 똑똑한 새끼 강아지라면 키울 맛 날 것 같았다. 그렇게 집으로 입성하게 된 솜이는 우리집에 온지 사흘만에 기저귀를 뗐다. 쉬는 패드에만 꼭 했다. 그런데 문제는 응가였다. 응가는 울타리 안에 깔아둔 여덟 장의 패드 위에 잘 했으나 패드의 개수를 점차 줄여나가자 그냥 빈 공간에 아무렇게나 싸버렸다.
울타리 교육이 끝나고 집안을 누비기 시작했다.
한쪽에는 배변 패드를 잘 깔아두었다. 곧잘 거기에다 쉬를 했고, 패드는 항상 깨끗하게 새로 갈아두었다. 하지만 여전히 응가는 광활한 공간 아무 데나 했다. 그럴 때마다 패드 위에 올려놓고 훈육하기도 하고 엉덩이를 찰싹 얻어맞기도 했으며 어쩌다 실수로 패드에 반듯하게 응가하면 간식과 폭풍 칭찬으로 좋은 기억을 주고자 애쓰기도 했으나, 결론적으로 지금도 아무 데나 한다. 주로 밖을 산책하기 시작하면서부터는 참다가 밖에서 해결하고 싶어하고, 비가 많이 와서 못 나가는 날에는 어쩔 수 없이 또 거실에다 실례를 한 뒤 자기도 눈치가 보이는지 스르륵 책상 밑으로 들어가 숨어버린다. 곧 내 언성이 높아지고 솜이를 혼꾸녕내는 소리가 이어져도 솜이는 꼭 그렇게 한다. 하이고, 이걸 평생 해야 하다니. 어떻게 이 버릇을 고칠까?
죄송하긴 하다.
이상하게 나랑 스타일이 맞지 않아서, 자꾸 내 마음대로 하게 된다. 이게 아니라는 걸 잘 알지만 나도 모르게 그렇게 상황이 딱 닥치면 해왔던 대로 하고 싶어진다. 가끔 주인에게 혼나기도 하고 눈치가 보여서 숨고 싶을 때도 있지만, 그리고 그걸 내가 스스로 수습할 능력도 없지만, 나는 하루도 빠짐없이 응가를 한다. 집안에서도 밖에서도 주인은 내가 싼 똥을 치워주니까. 내가 뭘 잘해야 사랑하는 게 아니니까. 이렇게 잘못하고 아무렇게나 해도 늘 따라다니며 책임지고 내 모든 잘못을 다 해결해주니까. 내가 생긴 것과는 달리 이렇게 매우 응가쟁이여도, 주인은 날 사랑하니까.
사 53:6.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무리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
롬 5:8.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