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책을 나가면 그래도 아직은 푸른 빛이 남아있지만 듬성듬성 시들어버린 들풀들로 숲길 나즈막하게 송송 구멍이 나기 시작한다. 이러다 남은 풀도 모조리 다 시들고 잎사귀 떨군 숲길은 더욱 텅 비어버리겠지. 우거진 수풀이 사라지자 길이 확 넓어진 기분이다. 솜이는 들풀이 우거졌을 때엔 들어서지 않던 숲에 슬그머니 발을 디딘다. 그래도 무릎까지 오는 키 작은 나무들이 무성하다. 숲속은 우리의 산책로가 아니다. 잘못 들어가면 목줄이 꼬여버리고 키 작은 나무 틈사이 구멍으로 드나들 때 나뭇 가지에 찔리기도 한다. 그래도 기어이 눈치를 보며 슬쩍 들어가본다.
여전히 숨이 덜 죽은 들풀이 밟힌다.
솜이는 목줄이 닿는 한 최대한 뻗어가본다. 그 속은 신세계일 것이다. 들고양이라든지 새가 놀던 흔적들이 남아있을 것이고, 지나간 여름의 뜨거운 냄새가 메마른 겉흙 깊숙한 곳에 파묻혀 있을 것이다. 얼마나 신이 났는지 모른다. 사람의 발자국이 닿지 않는 곳, 누가 봐도 개구멍 같은 작은 나무와 나무의 틈새로 쏘옥 들어가 누비는 혼자만의 공간. 괜히 드러누워 온 몸을 부벼보기도 하고, 여기저기 폴짝거리며 뛰어다니기도 하고, 급할 것도 없건만 찌익, 마킹해보기도 하며 아무도 들어가지 않는 스러져가는 풀뭉텅이 공간을 헤집어놓는다. 저러다 또 진드기 잔뜩 옮아올까봐 걱정된다. 아무도 없다고 줄을 놔줬더니 그야말로 제멋대로이다.
뭐 좀 그러면 어때?
내 눈엔 정말 재미있어 보인단 말이다. 언제 이렇게 구멍이 쏙 나 있었나 싶다. 한번도 들여다본 적이 없는 풍경이 저 안에 있다. 신선하고 흥미로운 냄새 투성이이다. 이걸 다 연구하기 전까진 포기할 수 없다는 거지. 이 길이 뭐 어때서? 이리로 다니면 안 되나? 주인도 이쪽으로 들어오면 좋으련만, 아무래도 여긴 길이 아니란다. 그냥 잠시 스쳐가는 작은 함정 같은 곳. 내 눈엔 명백한 길인데, 나보다 키가 큰 주인이 보기엔 이쪽은 길이 아니라고. 그냥 풀숲만 내내 이어진다고. 그러니 계속 가서는 안 된다. 그냥 놀다 기어나갈 것이다. 주인이 보는 시야가 나보다 훨씬 넓으니까. 주인은 지혜로워서 내가 갈 길을 다 알고 있으니까. 내가 이렇게 딴짓하고 다녀도, 종종 안 된다고 할까봐 물어보지도 않고 슬쩍 발부터 디뎌버려도, 주인은 잠시 기다려주고 또 다시 나를 바른 길로 인도해줄테니까.
사 55:8. 여호와의 말씀에 내 생각은 너희 생각과 다르며 내 길은 너희 길과 달라서 9. 하늘이 땅보다 높음 같이 내 길은 너희 길보다 높으며 내 생각은 너희 생각보다 높으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