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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차가운 열정 Nov 17. 2021

[개묵상]_혼자 있기

오직 주인만 기다리며

오늘은 식구들이 모두 외출을 했다.

코로나로 다들 집에 많이 있었고, 아이들 홈스쿨링으로 더더욱 솜이는 우리와 늘 함께였지만, 오늘은 가족 모두 아침부터 나가서 밤 늦게야 돌아오는 일정이다. 솜이가 어렸을 때부터 지금까지 종일 혼자 있어본 적은 거의 없었다. 제주도에서 한 달 살기를 할 때엔 점심 무렵에 나가서 저녁 먹기 전에 돌아오곤 했기 때문에 반나절 정도만 혼자 있었고, 그것도 딱 한 달 뿐이었다. 10개월 솜이 전 생애에 걸쳐 10시간도 넘게 혼자 있어본 적은 거의 처음일 것이다. 얼마 전에는 넘버 원 주인인 내가 거의 처음으로 솜이를 다른 집에 맡기고 캠핑을 다녀와 이틀 간 나와 떨어져 있었다. 누나가 옆에 있어주긴 했지만, 그래도 내가 없었기 때문에 솜이에겐 아무도 없는 거나 다름이 없었을 것이다. 어찌 되었든 진짜 아무도 없이 오롯이 혼자만의 시간을 갖는 건 오늘이 처음이나 다름 없다. 




솜이는 물을 많이 먹는다.

하루에 500ml 정도는 마시는 것 같다. 몸무게가 5.5kg인 강아지치곤 많이 마시는 편이 아닌가 싶다. 입맛을 잘못 길들여서 사료를 즐겨 먹지는 않지만, 종일 굶다 보면 배가 고파서 그런지 결국 그릇을 싹 비운다. 간식은 많이 먹는다. 내가 막둥이 손주 돌보는 할머니같이 아무 거나 먹던 걸 던져주기도 하고 달라고 낑낑대면 못 이기는 척하고 먹여서 거의 사람이 먹을 땐 항상 입맛을 다신다. 개껌도 자주 먹는다. 심심할 땐 꼭 달라고 조르기도 하고, 잠시 장보러 나가느라 집을 비울 때엔 하나씩 놓고 나오기도 한다. 그래서 뱃살 통통 사람 입맛, 못된 강아지가 되고 말았다.




아침에 나갈 때 준비를 해주었다.

물도 두 그릇 떠놓고, 사료도 평소보다 한 스푼 더 많이 퍼담아 주었다. 간식도 여기저기 숨겨놓고 노즈 워킹하며 찾는 즐거움과 먹는 기쁨을 맛보도록 해주었다. 답답할까봐 베란다 창문도 열어놓고, 배변 패드도 젖으면 곤란해할까봐 두 군데 깔아주었다. 혼자 있으면 어두울까봐 거실 전등도 켜두었다. 개들이 집에 혼자 있으면서 스트레스 받으면 가구도 물어뜯고 아무 데나 마킹도 해버리기도 한다던데, 솜이가 혹시 기다리다 신경질 나서 뭘 물어뜯고 싶으면 어쩌나 싶어 평소 물고 놀기 좋아하는 휴지심도 던져두었다. 자, 준비 완료. 이제 다녀올게, 빠이.




아침 10시에 나가서 밤 10시에 돌아왔다.

꽤나 긴 외출 시간 동안, 솜이는 잘 지내고 있었을까? 문을 열어보니 발사된 총알같이 솜이가 튀어나온다. 곧 이륙할 것 같이 꼬리를 빙글빙글 흔들고, 무게에 못 이겨 엉덩이까지 같이 둥글둥글 흔든다. 반갑다고 난리다. 그런데 세상에, 너무 얌전하게 있었던 거 아니니? 사료는 말할 것도 없고, 물도 그대로, 심지어 세상 좋아하는 간식들도 그냥 그대로이다. 이건 좀 아니지. 찾기 쉬운 소파 모서리 위에 두었는데 이걸 못 찾아서 못 먹었던 것 같진 않다. 물어 뜯으라고 준 휴지심도 고스란히 그대로. 이 아이, 아무 것도 먹지도 않고 놀지도 않고 그냥 종일 누워만 있었던 거다. 베란다 밖만 종일 내다보고 있었거나. 현관문에 기대어 종일 발자국 소리를 지키고 있었는지도 모르지. 아무 의욕이 없이, 종일 이 아이가 할 수 있는 건 '기다림'뿐이었다. 세상에!




난 어렵지 않다. 기다리는 건.

아무도 없어서 조금은 무섭기도 했다. 밖에서 소리가 들리면 혹시나 누가 문을 열고 들어올까봐 긴장도 했고, 행여 주인 발자국 소리는 아닌가 귀 기울이기도 했다. 분명히 올 텐데, 그게 언제쯤일까? 나도 모른다. 그건 주인 마음이지. 주인의 일정과 계획대로겠지. 혼자 있으면 종일 주인이 생각 나고 그립다. 물 마실래? 사료 먹자. 산책 갈까? 하고 말을 걸어주고, 하나씩 잊지 않고 챙겨주던 우리 주인. 심심할 땐 놀아주고 무릎에 올라가 앉으면 쓰다듬어주던 다정한 주인. 사고 치면 엄하게 혼내지만, 금방 꼬리 내리고 쪼르르 다가가면 아는 척 해주던 주인. 오직 주인만 기다리고 바라본다. 그래도 어떻게든 나를 위해 일찍 와줄 걸 아니까. 주인은 나를 잊지 않고 있을 테니까. 이 외롭고 무서운 시간도 주인이 나를 믿고 잠시 허락해준 거니까. 그리고 돌아와 더 따뜻하게 날 안아줄 테니까.






시 62:1. [다윗의 시, 영장으로 여두둔의 법칙을  의지하여 한 노래] 나의 영혼이 잠잠히 하나님만 바람이여 나의 구원이 그에게서 나는도다
시 78:52. 자기 백성을 양 같이 인도하여 내시고 광야에서 양떼 같이 지도하셨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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