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개 묵상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차가운 열정 Nov 20. 2021

[개묵상]_키우는 이유

그건 모르겠지만

왜 키우세요?

물어본다면, 딱히 할 말이 없다. 자식을 왜 키우느냐는 말에 대해서도 명확한 이유를 말할 수 없는 것처럼 말이다. 물론 감히 자녀와는 비교할 수조차 없는 그저 개놈에 불과하지만 생각은 이미 경험치 안에서 움직이기 마련이라, 나도 모르게 자식에 빗대어버리고 말았다. 물론 어떤 계기 비슷한 건 있었다. 아들이 가장 먼저 키우고 싶어 했다. 우리의 반려동물은 소박하게 장수풍뎅이로 시작해서 거북이로 이어졌다. 아토피와 알레르기가 심한 아들 녀석에게 털 달린 짐승을 키운다는 건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었기에 기껏해야 파충류 정도로 만족해야 했다. 하지만 비린내가 심한 거북이와 정서적 교감까지 나누기는 쉽지 않았다. 그러던 중, 홈스쿨링을 시작하면서 아들은 지금이 아니면 동물과 교감하는 시간을 충분히 갖기 어려울 것이라고 호소했다. 스트레스를 풀고 정서적 안정을 주는 데에도 도움이 될 것이며, 매일 산책을 시키러 나가느라 함께 가벼운 운동을 꾸준히 할 수 있을 것이라고도 했다. 들을수록 달콤한 설득에 못 이겨 우린 개 키우기에 도전해보기로 했다.




어쨌든, 계기는 그렇다.

하지만 그게 이유라고 보긴 어렵다. 애 가벼운 산책 시키자고 이렇게 개를 키우는 수고를 한다는 건 비효율적인 일이다. 스트레스를 푼다고? 오히려 스트레스를 받을 수도 있다. 집안을 더럽힌다든지 귀찮게 한다든지 등등, 심지어 정들었는데 개가 아프기라도 하면 더 큰 스트레스를 받을 것이 뻔하다. 개를 키우는 것은 여러모로 어려운 상황까지도 다 감내해야 하는 노력과 큰 결단이 필요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개를 키우는 이유는 무엇인가? 여전히 답이 모호하다. 다만 분명한 것은, 시작이 어찌 되었든 이미 나는 개를 키우고 있다는 사실이고, 끝까지 이 녀석을 책임질 것이라는 점이다. 또 나날이 선명해지는 것은, 이젠 어차피 이유 따위는 필요 없다는 것. 그냥 우리는 솜이를 사랑한다. 그게 전부이다. 




사실 참 불편하다.

여행을 가고 싶어도 그냥 두고 집을 비울 수가 없다. 애견 동반 가능 숙소를 찾다 보면 일반 숙소보다 비율도 현저히 적고, 룸 컨디션도 별로인 경우도 많다. 심지어 애견 숙박비는 따로 더 정산한다. 돈으로 따지자면 할 말이 너무 많다. 돌아서면 떨어지는 사료와 간식비, 배변 패드, 매달 심장사상충 약, 심지어 매달 드는 미용비는 우리 식구들 중 가장 많이 든다. 매일 틈나는 대로 산책도 시켜줘야 하고 놀자고 조르면 하던 일도 집중하기 어려워진다. 여기저기 물어뜯고 난장판에, 돌아서면 피부병, 깜빡하면 슬개골 삐끗, 얼마나 손도 눈도 많이 가는지 모른다. 한 번씩 혼잣말로 푸념하기도 한다. 내가 이걸 왜 키운다고 해설랑. 그래도 키운다. 사랑하니까. 한없이 깊은 신뢰로 내 복숭아뼈에 와서 부비는 얼굴 털, 원하는 걸 마냥 다 해줄 거라고 기대하는 눈빛 공격, 외출하고 돌아올 때 프로펠러처럼 빙빙 돌아가다 곧 몸뚱이가 그대로 이륙할 것만 같은 묵직한 꼬리의 현란한 움직임, 심지어 이런 귀여운 짓 아무것도 안 해도 사랑한다. 이 바보 같은 솜뭉치 녀석을.




나도 안다.

날 받아주고 키워준 주인의 마음을. 내가 해줄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어도 그냥 나를 있는 그대로 품어주는 주인의 사랑을. 내가 책꽂이 다리를 갉아먹을 때 이놈, 하고 소리를 지를지언정 날 쫓아내거나 모른 척하지 않을 거란 걸. 산책 중에 아무 데나 첨벙거려서 시커멓게 축축해져도 돌아오는 길에 추울까 봐 그 발바닥 자국 옷에 남는 것 개의치 않고 껴안고 데려와줄 거란 걸. 우리 주인은 내가 죽을 때까지 날 포기하지 않을 거란 걸.






요 3:16.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매거진의 이전글 [개묵상]_터그 놀이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