삐끗

그럴 법도 했다

by 차가운 열정

삐끗했다. 그럴 법도 했다.

그날 눈이 왔다. 그럴 법도 했다.

속에 털이 달린 크록스를 신고 나갔다. 그럴 법도 했다.

눈사람을 만들었다. 아이들의 성화에 못 이겨 뭐라도 해야 했다. 그럴 법도 했다.

발이 꽁꽁 얼었다. 눈이 들어와 얼어붙었다. 발에 감각이 둔해지자 걸음도 둔해졌다. 그럴 법도 했다.


그래서 그랬다.

뒤집어보면 다 그럴 법도 했다. 평소에 운동을 해두지 않았다.

추위에 몸이 오그라들 때에도 나를 감당할 만큼 유연하지 않았다.

배에도 살이 붙었다. 배 근육을 사용할 줄 몰랐다. 그냥 몸뚱이를 허리가 버텼다.

가뜩이나 앞으로 휘어진 척추에 배가 나오니 허리는 늘 부담스러웠을 것이다.

변명 같지만 이 나이에 혈기 왕성한 두 남매의 에너지를 감당한다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다.

게다가 둘의 요구는 항상 다르다. 눈사람을 만들어야 했고 이글루 벽돌을 뭉쳐줘야 했고 사진도 찍어줘야 했다.


집으로 돌아와 뒤뚱거리며 씻고 밥을 차렸다.

앉기도 눕기도 어렵고 서있자니 다리가 아팠다.

그러게 운동 좀 해두지 그랬냐고 핀잔도 들었다. 내일은 침 맞으러 가라고, 뻔한 제안도 받았다.

엉덩이가 가벼운 편이라 뭐든지 먼저 벌떡 일어나 돌아다니던 사람이었는데, 앉고 서기가 불편한 나를 위해 아이들이 급한 대로 잔심부름을 해주었다. 지금도 불편한 허리를 꼿꼿이 세우며, 혹은 팔꿈치로 상체를 떠받치듯 버티며 이 글을 쓴다.


생각해보면 나는 참 잘 삐끗했다.

몸이 유연하지 않아서라기 보다는 마음이 그랬다. 같이 먹으려고 저녁나절 준비한 음식을 혼자 먹게 되었을 때라든가, 돈 들여 시간 들여 머리하고 나왔는데 아무도 못 알아봐 줄 때, 잠시 마음이 휘청하고 뒤뚱거렸다. 혼자 감성에 젖어 예쁜 말 골라 몇 시간을 쓴 내 시를 읽어본 사람들이 그냥 갸우뚱하고 말잇못할 때도, 요청받은 대본을 밤새워 써서 가져갔는데, 문득 다른 콘셉트를 이야기할 때, 내 마음에도 스트레칭이 필요한 것 같다고 느꼈다.


가끔은 마음이 아니라 지갑이 그랬다.

위시리스트와 장바구니 사이에서, 혹은 갑자기 필요해진 물건들과 딱히 급하지 않은데 이미 질러버린 물건들 사이에서 내 지갑은 삐끗했다. 심지어 프라이팬이나 건조기가 그럴 때도 있었다. 이게 아닌데, 할 땐 이미 생선이 타고 있거나, 어머 이게 왜 이래, 할 땐 이미 옷이 쪼그라들어 있었다.


종종 남편도 삐끗했다.

십 년을 같이 살아도 우리의 대화는 아직 서툴다. 나는 곱이곱이 내게 벌어진 일들에 대해 구비구비 장황하게 설명하며 공감받길 원했고 남편은 심플 명확한 결론에 더 관심이 많았다. 내가 육아에 지쳐 저녁엔 좀 쉬어야지 하는 날엔 야근으로 늦게 온다든지, 운동 가라고 주말에 시간 비워주면 조용한 집에 홀로 틀어박혀 낮잠을 잔다든지, 내 뜻에서 삐끗하고 뒤뚱거리며 자기 길을 간다. 태어날 때부터 지금 이 순간까지 콘셉트 자체가 삐끗인 두 아이는 말할 필요도 없다.


누군들 삐끗하지 않겠는가.

다 그럴 법도 하다. 촘촘히 늘어선 인과 관계의 고리들이 집요하게 서로 맞물려 뻔한 결말로 가곤 한다. 어딘가 1mm 어긋난 것이 피사의 사탑처럼 기울어져가고, 어디선가 표면 장력을 견디지 못하여 내 허리 짝이 나는 것이다. 뭐, 그래서 어떻다는 건가. 뭐 그럴 법도 하고 뭐 그럴 수도 있고. 그렇게 삐끗 뒤뚱하며 우리는 살아간다. 누군가 삐끗한 자리를 대신해 손발이 되어주고 그 마음에 위로가 되어주고 그 상황에 지혜가 되어준다. 삐끗한 자리가 아물어가면서 근력이 생기고 더 조심하게 된다. 내 허리가 약한 걸 알아주고 허리 힘쓰지 않도록 남편이 허리를 갖다 대 준다. 나만 삐끗이 아니어서, 또 내가 삐끗의 당혹감과 불편함을 잘 알아서, 누군가의 삐끗을 살피고 그 자리에 나를 갖다 대 줄 수 있다.


그래, 아얏, 우리, 그럴 법도 하다.

인생 눈길에서도 중심만 잡으면 그깟 삐끗, 피식


















(제목의 그림 출처: 칸딘스키 네이버 지식 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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