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수인 척 실수 아닌 실수하는 말
"으이그, 이노무 새끼."
그냥 혼잣말이었지만, 아이는 그 말을 들었다.
"엄마, 왜 나보고 나쁜 말해?"
게임을 좀만 더 하고 싶대서 실랑이를 벌이던 끝에 아이가 5분을 더 얻어 엉덩이를 흔들며 방으로 들어가는데
그 뒤통수에 대고 했던 혼잣말. 별로 욕 같이 한 말도 아니도 그렇다고 오구오구 내 새끼, 할 때 같이 정을 듬뿍 담아서 한 말도 아니었다. 그냥 툭, 패자의 푸념 같은 것. 하지만 아이는 역시 민감했다. '이노무'도 나쁘고, '새끼'도 나쁘고, 거기다가 '으이그'까지도 나쁘단다. 게임 더 한다고 나무라는 게 아니라, 이건 그냥 비난이란다. 엄마가 말을 나쁘게 해서 기분이 좋지 않단다. 그러더니 게임을 그냥 접고 시무룩한 얼굴로 책을 펴 들었다.
"내 새끼한테 '새끼'라고 한 게 그렇게 나빠?"
어설픈 변명으로 급히 친밀감을 내세워 보았지만, 아이는 나도 미처 몰랐던 말의 뉘앙스를 느꼈고 이미 변명은 통하지 않았다. 또다시 서둘러 다음 단계로 넘어가기로 했다.
"미안해, 엄마가, 그럴 뜻은 아니었는데, 그렇게 느꼈다면 엄마가 쏘리쏘리."
사과 비슷한 걸, 결국 변명이 덕지덕지 붙은 어쭙잖은, 우리말로는 내키지 않아서 흔해 터진 영어로 마무리한, 얄미운 사과 비슷한 걸 했다. 우리 아이가 좀 유별난 게 아닌가, 억울한 마음이 들었지만, 기분 나빴다면 뭐 어쩔 것인가, 그냥 이렇게라도 후딱 풀어줘야지.
그러고선 다시 곰곰이 생각해보았다.
흔히 말로 실수하는 것 조심하라고도 하고, 나 역시도 쓸모없는 말로 누군가에게 상처를 줄 때, 이건 엄연히 '실수'였다고 애써 설명을 하며, 그 사람에게만이 아니라 나 자신에게도 그게 실수였음을 열심히 설득한다. 어디까지나 '말실수'였다고. 그런데 좀 솔직해져 보자. 과연 '말실수'라는 게 맞나? 그 '말실수'에 해당되는 진심이 정말 0.1%도 없었나?
이 질문에 대해 또 다른 모범 답안을 준비해보았다.
그건 말이야, 그냥 말버릇이라고. 진심은 1도 없는데, 입버릇이 그래서 그런 말을 한 거라고. '내 새끼 내 새끼' 하던 입버릇과 '이노무 코로나' 하던 버릇이 모여서 어느새 '이노무 새끼'가 된 거라고. 엄마는 전혀 널 비난하거나 나쁜 말을 하려던 게 아닌데 말이야, 이게 잘못 짬뽕이 된 거라고. 우리가 하는 말실수들 중에 툭 내뱉는 말들은 대부분 이런 말버릇에서 비롯된 것 아닌가, 별로 딱히 그런 진심을 품은 건 아닌데, 이 정도 세기로 말하던 버릇이 있어서 표현이 좀 거칠어진 것 같다고, 어디까지나 이건 말실수라고.
그러고선 또 다시 생각해본다.
그래서 그 순간에 진짜 그런 생각 1도 안 했나? 전혀 그런 마음이 없었나? 으이그, 하고 타박하는 마음, 이노무 새끼,라고 콕 쥐어박고 싶은 마음, 없었냐고. 아니다. 다는 아니지만 그 말을 하면서 나는 일말의 기쁨을 느꼈다. 잠시지만 속이 조금 후련해졌다. 손은 아니지만 마음은 알밤을 먹이고 싶었다. 알밤이 입으로 나왔다. 그까짓 5분으로 그렇게 실랑이를 벌이다가. 또 더 생각해본다. 그게 그렇게 알밤 만들 일인가? 이노무 그노무 소리를 덧붙여야 할 일인가? 내 속 편하자고 아이 뒤통수에 툭 알밤 깔 일인가? 내 입은, 내 마음은 왜 이 모냥이냐.
선한 사람은 마음의 쌓은 선에서 선을 내고 악한 자는 그 쌓은 악에서 악을 내나니 이는 마음의 가득한 것을 입으로 말함이니라(누가복음 6장 45절)
말실수라는 말은 말실수다.
말은 결코 실수하지 않는다. 실수는 마음이 한다. 내 마음이 먼저 실수를 저질러버리고도 자기 실수를 인정하지 않고 불을 피워 알밤을 튀긴다. 매일 크고 작은 알밤들이 팝콘처럼 튀겨져 속에서 투툭투툭 부딪히다 입 밖으로 튀어나온다. 의도하지 않게 튀어나와서 실수라면 실수겠지. 하지만 없던 것이 아니다. 내 안에 가득했던 것들이란 말이다. 말실수가 정말 미안하면, 그래서 말실수를 하고 싶지 않다면, 알밤부터 끌어내야 한다. 마음이 실수하지 않아야 한다. 아이가 게임을 10분씩이나 하겠다고 하지 않고 고작 5분만 더 하겠다고 하니 기특하다고 여겨야 한다. 얼마나 더 하고 싶을까, 꿀 같은 시간이 얼마나 야속할까, 오구오구 내새끼, 그래도 참느라 많이 애쓰네, 착한 강아지,라고 마음이 먼저 받아줘야 한다.
선(善)을 쌓으라니 쉽지는 않다.
사람 사는 세상에 선이 있나. 신의 영역에서 빌려오는 수밖에. 내 안에 알밤나무 대신 진심으로 사과할 줄 아는 사과나무라도 심어야지. 선하신 말씀을 배우고 지켜야지. 그렇게 경험치를 쌓아 나가다 보면 말도 마음도 실수하지 않을 수 있겠지. 오늘도 말실수라고 우기는 말실수, 알밤 튀기는 마음에 말씀으로 불을 꺼본다. 심호흡 들이키는 사이에 몇 가지 이미지들을 함께 삼키며.
그래도 혹시 내일 또 팝콘이 튀겨진다면, 내일 또 불을 꺼보는 것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