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디션#

너의 이름은

by 차가운 열정

요즘 즐겨보는 프로그램이 있다.

'싱어게인'이라고. 그간 무명의 세월을 보낸, 혹은 노래 부를 공간을 잃은 가수들이 나와 경연을 펼치는 오디션 프로그램이다. 이런 프로그램 참 좋다. 물론 취향에 따라 가려보긴 한다. '쇼 미더 머니'는 근래 들어 잘 안 본다. 자유로운 영혼들의 거침없는 지껄임이 좋을 때도 있지만, 그걸 심사랍시고 앉아서 저속한 말들을 주고받으며 거드름 피우는 심사위원들이 내 취향이 아니어서. 지난번에 '슈퍼 밴드'는 열혈 시청자였고, 모든 음원을 죄다 사서 들었다. 각 뮤지션들이 앞서 발표한 곡들을 찾아서 듣기도 했고, 누구와 누구를 조합하여 밴드를 만들면 어떨까, 혼자 상상을 하기도 했다. 요즘 보는 '싱어게인'도 소름 끼치는 목소리와 가창력으로 내 귀를 즐겁게 해 줄 뿐만 아니라 그들을 심사하는 심사위원단의 진지한 경청의 태도와 진심 어린 평가가 참 따뜻해서 좋다.



세상에 이렇게 노래 잘하는 사람들이 많나.

노래, 목소리, 무대에 대해 이렇게 열심히 자기를 연마하고 준비할 수 있나. 이렇게 다양한 노래들이 있나. 혹은 들어본 적 있어도 그냥 흘려듣기만 했던 이 노래가 이렇게 좋은 이야기였나. 감탄이 저절로 나온다. 그런데 이게 다 어디에서 오는 걸까. 재능? 아니면 평생을 다른 건 안 하고 음악만 듣고 먹고 입고 끼고 살아서? 심사위원들도 우열을 가리기 곤혹스러워하는 이런 쟁쟁한 무대를 단지 재능이나 연습량이라고만 평가할 수 있을까?



귀를 홀리는 재능과 노력으로 만들어진 그들의 음악.

그 뒷면에는 그들의 사연, 각자의 소울, 자신을 뛰어넘는 도전이 흘러가며 듣는 사람에게 주는 큰 감동이 물론 있다. 게다가 누굴 떨어뜨려야 할지 난감할 정도로 다 잘하는 사람들을 살벌한 경쟁 구도 속에서 지켜보며 누가 붙든 떨어지든 안도와 탄식을 오가는 공감의 카타르시스도 한몫한다. 그런데 내가 그들을 애정하며 안달하는 가장 큰 이유는 아무래도 그들이 매 무대마다 가지고 나오는 순수한 열정과 간절함 때문일 것이다.



그렇다. 간절함.

무엇을 하든 적당한 자기 능력, 감당할 만한 에너지로, 즐길 만큼만 하는 게 요즘 사람들 성향인데. 한 분야에 뛰어난 경쟁력을 갖추려면, 적어도 예선을 통과하고 심사위원들에게 감동을 주려면, 이런 간절함이 있어야 한다는 것. '난 물러설 곳이 없습니다.' '마지막 기회라고 생각하고 무조건 살아남을 겁니다.' 그들의 인터뷰에 빠지지 않는 말이다. 이런 간절함이 자신의 능력치를 최대한으로 끌어올려주고 그 어느 때보다 열정적으로 집중할 수 있게 해주는 게 아닐까?



사실 나는 경쟁을 참 싫어한다.

왜냐하면 경쟁을 너무나 열심히 할 테니까. 경쟁해야만 하는 상황이 오면 죽기 살기로 달려버릴 것 같아서, 그래서 다른 것들을 누리지 못하는 것 아닌가 싶어서, 내가 이룰 성취보다 그 과정에서 절제와 인내로 포기해야 할 것들을 포기하기 싫어서. 그리고 또 하나. 누군가의 패배를 밟고 서야 하니까. 내가 패배자가 되지 않으려면 내가 이겨야만 하니까. 너의 불행을 내 발판으로 삼아야 하니까. 상대적인 가치를 부여하고 단지 탁월함이 아니라 우월함으로 평가하는 '경쟁'의 속성에 대해 불편하게 생각할 때가 많다. 하지만 바로 그런 이유 때문에 더 간절해지는 것이다. 그 간절함이 사람을 키운다.



싱어게인에서는 '슈퍼어게인'이라는 찬스가 있다.

심사위원들마다 슈퍼어게인을 하나씩 가지고 있는데, 경연에서 패하여 탈락하는 사람들 중 이 사람은 그냥 보낼 수 없다, 할 때 다른 심사위원들의 동의 없이 이 어마어마한 슈퍼어게인을 발동시킬 수 있다. 탈락 위기에서 이런 슈퍼어게인으로 간신히 살아남은 사람들이 그 간절함으로 다음 단계에서 최고의 칭찬을 받는 경우도 제법 있다. 단계가 올라갈수록 심사위원들은 또 다른 모습들, 그 완벽에 가까운 무대에서 티끌 같은 아쉬운 점들을 딱 하나씩 발견하며 더 높은 수준의 무대를 요청한다.



살아남은 사람들은 다 그런 사람들이다.

간절함에 힘입어, 경연 내내 자기의 강점을 더 살리고 약점을 극복한다. 노래하는 사람으로서 어떤 음악을 할 것인가, 내 음악의 색깔, 내 음악의 목표, 내 음악의 힘이 무엇인지, 점점 뮤지션으로서 자기만의 정체성, 자기 이름을 찾아간다. 그걸 우리는 '성장'이라고 부른다. 어쩌면 오디션의 목표는 경쟁과 선발이 아니라 성장이 아닐까. 모두가 1등을 바라보고 달려가고, 또 누군가는 그 완성도나 실력이 부족해서 중간에 떨어지기도 하지만, 결국은 그 과정을 통해 간절한 사람이라면 누구나 다 성장하는 윈윈 프로그램.



나도 수없이 많은 오디션을 봐왔다.

최초의 공식적인 오디션은 대입이었다. 이후에는 언론사 시험에 낙방도 했다. 그러다 임용 고시를 치러 합격도 했다. 합격자 명단에 내 이름이 박혀있는 걸 본 적 있는 사람은 안다. 그 맛이 어떤 중독성을 가지고 있는지. 그리고 몇 백 대 1, 때론 몇 천 대 1, 이라는 경쟁의 냉혹함을 잘 안다. 그 뒤에 따라오는 절박함에 가까운 간절함을 잘 안다. 그 간절함에서 나오는 집중력, 온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괴력은 자기 자신과 주변 환경까지 바꾸는 힘이 있다.



그걸 원한다.

내 간절함이 나 자신과 이 세상을 조금이라도 바꿀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그래서 나는 또 오디션을 치르려고 한다. 무한 경쟁 앞에 두려움보다는 기대감이 더 크다. 아직 아무것도 모르고 들떠 예선 준비 중이라 그런 걸까? 분명히 많은 에너지가 들 테고 많은 시간을 들여야 할 테지만, 내가 내 이름을 찾는 일, 나 자신과 주변 환경까지 바꾼다는 것은 마치 산이 통째로 들려서 바다에 던져지는 것 같은 어마어마한 작업이니까.



그래서 그 간절함의 또 다른 이름은 어쩌면 믿음이 아닌지.

나의 변화가 세상을 과연 어떻게 변화시킬 수 있을 것인가. 혹은 내가 이 세상에 어떻게 쓰임 받을 것인가. 다시 노래를 부르는 가수들이 목소리로 사람들을 즐겁게 해주는 것처럼, 나는 이제 무엇으로 세상에 빛을 던져줄 것인가. 세상을 창조하신 분에게 나를 도전하는 오디션. 가르치는 것이든, 사람을 만나는 것이든, 글을 쓰는 것이든, 혹은 내가 상상하지도 못했던 어떤 새로운 것이든, 그분의 따뜻한 평가와 지지를 힘입어 하나씩 나의 한계를 깨뜨리며 나의 이름을 확고하게 해나가고 싶다.


슈퍼어게인 발동시켜서라도, 나를 뽑아주세요. 네? 나는 결단코 물러설 곳이 없어요.

평생 섬길 은사 이름표, 불러주세요 내 이름!!


















(제목 그림 출처: JTBC 방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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