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것질을 줄이는 방법

by 차가운 열정

피를 뽑았다.

이 만성적인 피로의 원인이 뭔지 찾아야만 했다. 순환이 잘 안 되는 몸이란다. 피가 걸죽하다고 한다. 고지혈증이란다. 억울하다. 나는 고기도 별로 안 좋아하고 식사량도 많지 않은데, 왜 피가 그렇게 걸죽하다는 거냐. 지방이 아니라 당이 문제란다. 단맛은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커피도 아메리카노만 마시고, 음식에 설탕을 넣지 않고 조리하는 편이다. 그렇다면 당 자체보다는 탄수화물이 주범일 가능성이 높다. 쌀알과 면과 빵을 줄이라고 한다. 하지만 나는 밥 양이 많은 편이 아니다. 그럼에도 다이어트를 시작해야만 한다.



찬찬히 생각해보니 군것질이 문제인 것 같다.

종일 집에 있으면 제일 심심한 게 입이다. 아이들이 아토피가 있어서 밀가루나 계란 같은 것들이 들어간 것, 과자 부스러기 같은 것들을 사다 쟁여두지는 않는 편이다. 우리집 간식은 그나마 건강한 것들을 유지하려고 애쓴다. 하지만 당분 입장에서는 좀 다르게 접근해야 한다. 군고구마, 쌀국수, 과일말랭이나 과일칩, 치즈 같은 것들은 꽤나 당분이 많다. 그렇지만 그런 게 아니면 도대체 뭘 먹으라는 거지? 정말 다이어트는 갚을 생각이 별로 없는 전세 대출금 같은, 짐스럽지만 하긴 싫고 모른 척하기엔 존재감이 선명한 과제임에 틀림없다.




물을 많이 마신다.

차도 마시고. 때론 채소 스틱을 먹는다. 여기까진 그나마 좀 낫다. 그런데 몸에 좋다고 하는 간식이 문제이다. 하루 한 봉지씩 먹는 견과류는 왜 이렇게 고소한 것이며, 탄수화물을 줄여보려고 선택한 단백질 파우더나 단백질바는 왜 이렇게 맛있는 것인지. 과식을 막기 위한 간식을 과식하는 아이러니, 입가심용 후식이 더 입가심을 부르는 이 지독한 역설은 어쩔 것인가. 저탄고지 식단으로 꾸준히 먹어보기도 했다. 하지만 열심히 저탄고지 식단으로 탄수화물 섭취량을 줄여놓고, 간식으로는 사과나 고구마를 포기하긴 어려운 문제, 결론적으로는 저탄고지는 고탄고단의 내 식단에 건강한 지방까지 챙겨 고탄고단고지의 어마어마한 식단을 탄생시키고 말았다.



도대체 안 먹을 궁리를 해야 하는데, 뭘 먹어야 하나 궁리하는 내 모습.

그렇다. 안 먹어야 한다. 매 순간 '심심해'를 외치는 내 입을 그냥 좀 쉬게 해줄 방법을 찾아야겠다. 그러다 좀 신박한 방법을 찾아냈다. 뭐 완전히 새로운 방법이라고까지 할 순 없지만, 그간 그렇게 실천해보진 않았던 것. 아주 간단한 것이다. 그건 바로 수시로 양치하는 것이다. 양치만 하고 나면 이 상쾌한 입 속에 새로운 음식이 들어오는 것이 반갑지가 않다. 혹여 식탁에 굴러다니던 강냉이 하나라도 씹는 순간, 어느새 이 청정의 경계는 무너지고 순식간에 단맛이 온 위장까지 범람하고 만다. 아예 그 단 한 개에 손을 뻗지 말아야 한다.




나에겐 이런 습성이 있었다.

망가지면 더 망가지게 내버려두고, 잘 되면 더 잘 되게 해주려는 습성. 처음 한 두번은 어렵지만 몇 번 더 반복되면 아무렇지도 않아지는 것. 오늘도 아침부터 간식을 먹었다. 망했다. 오늘은 그냥 이렇게 망한 채로 살아야지. 쭉 먹어버리자. 월요일부터 운동도 빼먹었네. 화요일도 하기 싫고. 이번 주는 망했다. 그냥 이렇게 살아버리고 다음 주에 잘해야지. 이런 마음. 꼭 새해부터는 매일 일기를 써봐야겠다. 어머, 벌써 1월이 며칠 째가 흐른 거야. 매일 일기쓰기는 물 건너 간 것 같아. 빗물에 신발이 젖기 시작할 때, 살짝 젖으면 어떻게든 더 안 젖으려고 조심하지만 발을 잘못 디뎌 물구덩이에 앞꿈치가 젖고나면 에라 모르겠다 아무렇게나 첨벙거리게 되는 것 말이다.



그 한 번이 그렇다.

처음 한 번 사람 마음 아프게 하는 말을 하고 나면 미안해서 어쩔 줄 모르고 더 조심하려고 애쓰지만, 두번 세번 반복하다 보면 저 사람이 좀 그런 사람이라고, 내 잘못이 아니라고, 점점 무뎌지는 미안함. 우리집 위층에 이사오는지 한달 내내 인테리어 굉음에 시달릴 때, 코로나로 집콕하는 마당에 이건 좀 아니지 하고 한번 두번 자꾸 불끈하다가, 나는 아직 전세 사는데 누군 집 사서 인테리어도 하는구나, 어느새 괜히 세상의 모든 영끌들을 향해 솟는 심술. 지각하는 날, 죽고 싶은 마음으로 급히 달리면서 헐렁한 왼쪽차선으로 쭉 들어오다가 강변북로 IC ,기나긴 행렬 바로 코 앞에서 얌체같이 쏙 들어가며 뒤통수 따가울 때, 몇 번 해보니 슬슬 꼭 지각 아니어도 놓치고 싶지 않은 삐딱한 재미.




그 처음, 그 강냉이 한 알, 그 말 한 마디, 그 한 번의 심술, 그 한 번의 얌체짓,

그 단 한번에 점점 단맛이 단맛을 불러들이고, 댐이 무너지는 참사가 이어지는 것. 이러니 내 마음은 얼마나 홍수에 시달리곤 하는지. 얼마나 파도에 휩쓸리곤 하는지. 한번이 어렵지. 그 다음부터는 나쁘다는 걸 알면서도 하고 점점 나쁘다는 감각도 없이 한다. 진창에 젖으면 에라, 모르겠다, 하고 첨벙첨벙 달린다. 그 얼룩 어떻게 빨래하려고, 그 말들, 그 심술, 그 얌체짓 어떻게 수습하고 갚으려고 이러시나.



처음부터 완벽할 수는 없다.

딱 그 순간부터라도. 오늘 삿대질했던 손가락, 아까 나몰라라 하고 딱 감았던 눈, 방금 삐죽대던 입, 내 모습을 인식하는 바로 그 순간부터라도, 손가락 딱 내리고, 양심 딱 뜨고, 입 딱 오므리고, 딱 지금부터라도. 새해 기다리지 말고, 다음 달, 다음 주, '내일부터' 같은 걸로 미루지말고. 이미 망가졌다고 첨벙대지 말고. 한번만 봐달라고, 너무 급해서 그렇다고, 마구 몰아가지 말고, 시끄러워서 그렇다고. 그 게으름을, 남탓을, 몰양심을, 굳이 넉넉하게 품어주는 달달한 방어선을 내세우지 말고. 생각이 생각에 꼬리를 물고 끈적하게 영혼에 들러붙어 마음의 고지혈증으로 탁해지지 말고.



여기서 스탑.

지금 이 순간 딱 멈추자고. 양치 해버리자고. 강냉이 한 알 먹었다고 세상을 다 강냉이로 뒤덮을 것 같이 먹지 말고 줄줄 새는 댐에 손가락이라도 끼워 막아보자고. 작은 것부터라도 시작해보자고. 더 이상 다이어트는 내일부터가 아니라고. 구수한 돼지감자차(이게 지방 분해에 도움이 된다는 설이 있는데, 모든 다이어트 이론이 나만 비껴가는 외로움을 아는가?), 쌉싸름한 녹차(녹차도 분명히 도움이 된다던데), 향긋한 홍차(얘도 마찬가지) 등등, 차 한 잔이면 그럭저럭 오후를 보낼만하다.




오늘도 이미 버린 손가락 눈 입 몸이지만, 지금부터는 일단 정지. 댐 구멍에 손가락 꽂고 치카푸카 양치부터.


치약에서도 단맛이 나요^^



















(제목 사진 출처: 네이버 '강냉이' 이미지, 아래 일러스트 : 차가운 열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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