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아휴직 첫날은 책 읽고 영화 보고 유튜브를 보면서 임산부 운동도 했고, 둘째 날은 친구가 놀러 와서 다섯 시간 수다를 떨었고 셋째 날은 혼자 전시회를 보러 다녀왔다. 오늘이 사흘째. 집 근처 예쁜 카페에 와서 달콤한 커피와 빵을 시켜 인스타 감성으로 사진도 여러 개 찍고 읽고 있던 책을 다 읽었는데도 아직 오후 두 시 반이다. 하하. 시간이 정말 많다. 오늘의 할 일이라곤 임산부 요가를 하고, 남편에게 묵은지 쪽갈비를 해주는 것. 단 두 가지이다.
이제 육아휴직 1년 동안 나름의 계획과 포부는 다음과 같다.
나의 마음 일기 쓰기: 내 마음/감정을 말로 표현하는 사람들이 참 부럽다. 난 그게 참 안된다. 내가 어떤 감정인지 읽고 그걸 상대방이 이해하기 쉽도록 표현하는 것. “그런 느낌이야” “그런 식으로 대하면”라는 표현을 평소에 자주 사용한다. 도대체 그게 뭔데? 내 감정을 표현하는 방법을 기르고 싶다. 또 내가 글을 쓰고 싶은 이유는 인풋은 엄청 들어오는데 아웃풋이 없으니 내 마음이 복잡해질 뿐이다. 책, 영화, 사람들과 말하면서 느낀 것 등 하루에도 다양한 분야에서 내 마음으로 인풋이 들어온다. 그걸 내 마음에서 정리하고 걸러져 표현하고 싶은데 할 수 있는 대상이 없다는 것. 회사 사람들과는 어느 정도 선을 지켰고, 매일 보는 남편은 이런 대화를 즐기는 사람이 절대 아니다. 대화라는 걸 하다 보면 나만 더욱 답답하다고 할까. 그래서 혼자 있는 시간이 (아니 예쁜 우리 딸 둘과의 시간이) 많은 만큼 내 마음을 글로서 아웃풋을 내려고 한다.
우리 아기 일상 기록하기: 1년 동안 오롯이 그녀와 나의 시간을 헛되이 보내고 싶지 않다. 영상과 사진을 정성스럽게 찍어 성장 과정을 기록해 나중에 선물할 예정이다. 네가 이렇게 사랑을 많이 받은 아이였다고, 보여주고 싶다. 요즘은 유튜브에 개인 채널을 만들어 시댁과 친정에 링크를 공유한다고 한다. 디바이스에 저장공간도 덜 차지하고 일석이조다.
운동해서 당당하게 예쁜 옷 입기: 사람은 못하면 더 하고 싶은 이기적인 마음이 있다고 했던가. 인스타 저장하기에 예쁜 옷들 사진이 가득이다. 반드시 출산 후 다이어트 후 꼭 예쁜 옷을 입겠다는 다짐을 한 백번은 더 한 것 같다. 임신하고 예쁜 옷을 입고 싶어 남편과 동대문 쇼핑몰을 방문했다. 예쁜 옷들을 가득 가지고 피팅룸에 가서 하나씩 갈아입고 나왔다. 거울 앞에 서있는 나의 모습은.. 뭐야 이 여자는? 지퍼가 안 올라가거나 어깨부터 맞지 않거나.... 예쁘지 않았다. 표정관리 잘하는 남편이 백화점을 가보자고 권유한 건 그의 눈에도 예쁘지 않음에 틀림없다. 옷 몇 개를 갈아입을 때쯤 피팅룸 안에서 혼자 울컥한 그 느낌은 누구의 탓도 아니며, 매우 자연스럽게 그 상황을 받아들이는 나만의 방법이었다. 다들 3-4개월 안에 소위 결판(?)를 봐야 살을 뺀다, 그 후엔 다 내 살이 돼버린다 등의 현실적이고도 매서운 조언들을 많이 들은 터라, 몇 번이나 다짐했다. 꼭 내 몸매를 되찾겠다고. 그리고 내가 사실 이런 외모의 여자였다고 보여주겠다고 다짐한다.
영어 공부하기: 방학만 되면 다짐하는 것이 육아휴직 플랜에도 작성하게 되다니. 정말 영어 공부는 언제쯤 안 하게 될 수 있을까. 영어를 잘 못하지만 소위 말하는 외국계 기업에 종사하는 나는, 영어와 단판을 지어야 한다 이제. 평소엔 시간이 없다는 이유로 미뤄왔던 정말 기초적인 영어 공부. 같은 팀에 영어를 정말 잘하는 동료에게 들은 팁은, 좋아하는 미국 영화나 드라마 대사를 딕테이션 (dictation) 한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영어가 많이 늘었다고. 남는 게 시간인 나는 (아직 미래를 몰라서 하는 말일지도, 누가 그랬지 않나. 사람이 포부는 커야 한다고) 도전해 보기로 한다. 1년 후에 회사에 돌아갔을 때 어버버 하지 않고 곧잘 아니, 더욱 영어를 생활하는 데 매우 자연스럽게 구사해 보이겠느라고.
위 4가지는 육아휴직을 사용하기 전부터 다짐했던 내용들이다. 이제 글로도 작성하고 보니 빼박인 느낌이다. 아이의 패턴을 몰라, 또 패턴이 계속 바뀌니 생활 계획표까진 짤 수는 없지만 나름 계획적으로 지켜보기로 한다. 앞으로의 나, 내가 응원한다. 잘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