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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휘웅 Jun 20. 2019

국세청 고시와 무언의 희비

동일시점 동일가격 공급가 정책은 공산주의일까?

얼마전 청천벽력같은 소식이 들려왔다. 7월 1일부터 주류 거래질서 확립에 관한 명령위임 고시가 공개되었는데, 주류에 종사하는 모든 이들에게 해당되는 사항이다.

이것은 와인만의 문제가 아니다. 모든 주종에 해당되는 문제다. 내 의견은 맨 뒤에 기재하고, 무슨 일이 일어날지에 대해서 간략하게 살펴볼까 한다.


앞으로 일어날 일들

식당에 가면 소주 광고가 곁들여진 메뉴판이 사라진다.

식당에 가면 특정 맥주 브랜드가 들어가 있는 맥줏잔이 사라진다.

식당에 가면 특정 업체의 이름이 그려진 메뉴판이 사라진다.

레스토랑이나 호텔은 대량 납품을 조건으로 물건값을 깎을 수 없다.(연매출 50억 이상인 경우. 물론 이상한 규정이다.)

레스토랑이나 호텔의 소믈리에들은 장기 직거래를 조건으로 커미션이나 해외 와이너리 투어 같은 일체의 서비스를 제공받을 수 없다.

레스토랑은 와인잔이나 린넨, 와인오프너 등을 요구할 수 없게 된다.

마트에서 와인 1+1 행사는 사라진다.

마트에서 맥주 1+1 행사 혹은 4캔 모아 1만원 행사는 사라질 확률이 높다.

마트에 매장에서 와인 시음이나 맥주 시음은 거의 사라진다.

와인 할인 아울렛은 큰 타격을 받게 된다.

수입맥주는 유통기한내 유통되지 못한 제품을 폐기 처분하는 일이 생길 것이다.

보졸레 누보는 거의 수입되지 않을 것이다.(남은 재고 처리가 힘들기 때문에)

수입와인은 물량 소비 후 잔여 재고물량을 처리하기 어려운 소량 와인 수입을 하지 않게 될 것이다.(대신 고급 와인들의 경우에는 수입 전 수요 조사를 통하여 수요 분량만큼만 수입하게 될 것이다.)

대형 와인 수입사들은 물량 밀어내기가 어려워진다. 당연히 포도원들과 거래에 있어서도 물량 선정에 신중해질 것이고, 이 부분은 다시 수입가격 상승을 불러오게 될 것이다. 수입가격 상승은 공급가 인상으로 이어질 것이다.

수입사들은 이제 더는 어느 숍에 와인을 얼마에 줘서 다른 숍에서는 와인 거래 끊는다 등의 항의성 이야기는 듣지 않아도 되게 되었다. 어차피 모두 동일 가격에 공급하는 것이고 싸게 주었다가는 징계를 먹는데 누가 그렇게 하겠는가?


이번 고시 "3조 1항 바"에는 이렇게 기재되어 있다. '사전약정 내역, 금품제공 대상, 금품제공액 산출근거 등을 확인할 수 있는 증빙서류를 비치.보존하고..." 이렇게 되어 있다. 즉, 어디에 누구에게 뭘 줬는지 기록으로 남겨두어야 하며, 만약 이를 어기면 과징금은 분명할 것이다.


아마 창업하는 개인사업자들은 제한된 규정 내부에서 지원을 받을 수는 있을 것이다. 예를 들어 소줏잔 100개 맥줏잔 100개 식으로 말이다. 다만 그 이후에는 소줏잔을 실비를 지급하고 구매해야 할 것이며, 매달 고정비용으로 지출해야 할 것이다.


수입와인업계의 경우에는 내부 자료로서 국세청 제시용으로 수입와인의 원가 계산 내역서를 상시 비치하고 있어야 하며, 임원 회의 혹은 외부 감사가 배석한 형태로 관련 가격을 내부적으로 고시하는 요식행위를 가져야 할 것이다. 이는 "대표자 주주 임원 등 사업경영에 대한 책임과 권한이 있는 관리자의 의사결정 등 내부 의사결정 절차에 따라 결정된 가격으로 주류를 판매하여야 하며 다음 각 목을 준수하여야 한다."라는 것에 포함된다.







그렇다면 지금부터는 내 의견을 이야기할까 한다. 국내 생산 주종은 내 전공이 아니니 와인만 갖고 이야기 하겠다.


수입사 입장에서는 지금까지 상당부분 고객이 지불해야 할 비용을 떠안고, 이를 원가에 반영했다. 결국 고객들은 이렇게 하나 저렇게 하나 비싼 술을 마셨다. 수입사들은 어차피 소매상이나 도매상들의 온갖 요구를 들어주고 할인도 해줘야 하기 때문에 적정 공급가보다 공급가 리스트의 가격을 많이 높일 수 밖에 없었다. 소매상은 갑의 입장에서 가격 할인해달라, 물량을 얼마 보장해줄터이니 잔 제공해라, 린넨 달라, 오프너 달라 등의 요구를 하였다. 수입사는 이 비용을 모두 다 가정하고 공급가를 정해둔 뒤, 깎아주지만 실제 수익을 가져가는 구조로 해 둔다. 업장은 실제 판매가를 수입사가 실제 고시한 공급가에 곱셈을 하고 다시 부가세를 붙여 판매해 왔다. 사실 이것이 현실이다. 어찌 보면 리베이트가 일상화 되고, 공급가는 다 거짓말이라는 고정관념에서 출발된 불신의 끝이 이번 일이라 생각한다.


나는 언제나 신뢰도가 낮은 사회는 신뢰 cost를 지불한다고 주장한다. 사실 지금까지 주류 거래 시장이 정상이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유통 환경은 복마전으로 얼룩졌고, 여기저기 숍 오픈을 빙자한 시음주 요구, 제공 시음주의 판매, 1+1 와인 제공에 따른 부가가치세의 탈세 등이 잇따랐다고 보는 것이 맞을 것이다. 다들 입으로 드러내기 어려운 말들이 많을 것이다. 많은 이들이 이번 조처는 공산주의적 생각이라 판단하지만 내가 듣기로는 일본의 경우 이미 동일시점 동일 공급가 기준이 시행되고 있다고 한다. 일본의 사례를 좀 더 살펴보면 어떨까?


그리고 이번에 종량세 전환 이전에 국세청 입장에서는 출고 와인의 병마다 매겨지는 부가가치세의 공정 과세가 핵심 이슈였을 수도 있다. 이번 조처를 자세히 살펴보면 출고 병수의 정확한 산정에 방점이 있는 것 같다. 1+1 행사를 하거나 덤으로 술을 주면 그 술 분량만큼은 부가가치세가 빠지게 된다. 물론 소매상에서 팔 때 소비자에게 전가되어 넘어가기는 하겠지만 중간 환급분을 감안하더라도 국세청 입장에서는 탈세인 셈이다. 그 부분은 무자료 거래에 해당되는 것이기 때문에 시음주 제공 등을 엄격하게 제한하고자 한 것이라 생각한다. 이 조처가 완료되면 단계적으로 종량세가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지금 모두 다 분노하는 것 같지만, 앞으로 마케팅에 무리한 부담을 떠안는데 늘 부담을 느꼈던 50억 매출 이하의 중소 수입사, 1인 수입사, 작은 주류도매상들은 이번 조처를 반기고 있을 수도 있다. 다만 이번 고시에서 불성실 주류 제조자 수입업자 판매업자의 출고감량 기준 고시를 보면 다만 50억 이하라 하더라도 투명한 내부 자료를 두지 않을 경우에 언제든지 국세청에 의해서 큰 타격을 받을 수 있기 때문에 50억 이하 수입사도 안심할 수는 없다. 즉, 작은 회사라 하더라도 주먹구구식으로 대충 서류를 꾸몄다가는 큰일 난다는 말이다. 최근에도 세금계산서에 "@@@ 외 1종" 이렇게 세금계산서 발행을 한 수입사들이 무더기로 벌금을 먹은 것은 이와 비슷한 맥락이라 보아야 할 것이다.


대통령 취임사에 "공정한 사회"를 이야기 했는데, 주류 부문에서도 이제는 공정한 경쟁이 이루어지지 않을까 생각 해 본다. 물량 끼워팔기 같은 해묵은 영업방법이 아니라 수요 산정에서부터 시장 예측, 공급가 결정에 이르기 까지 수입사들이 더 머리를 싸매야 하게 되었다. 그리고 신규 출시한 와인의 경우에도 이를 소개하기 위한 오프라인 홍보 보다 온라인 홍보 등 좀 더 과학적이고 체계적인 방법을 강구해야 하는 시기에 다다르게 되었다. 이 부분에서 큰 수입사들은 유리한 입장에 서게 될 것이다.


이번 조처의 결과에 내 의견은 승자도 패자도 없는 것 같다. 다만 유통 단계에서 그 비용을 누가 떠안느냐 하는 것의 이동만 있을 뿐이다. 생맥주 가격은 오를 것이나, 마트의 와인 물량 밀어내기 행사는 크게 줄어들 확률이 높고, 소매 숍들의 다양성은 좀 더 늘어나지 않을까 생각한다. 체인형 와인 매장의 경우에도 수입사들에게 물량을 무기로 공급가 인하, 여러 지원책 요구 등을 할 수 없게 되었으니, 변화는 많이 일어날 것 같다. 수입사들은 공급가 결정에 애를 먹을 것이다. 특히, 가격변동이 심한 그랑크뤼, 넌빈티지 샴페인의 경우 상품코드 변경을 통하여 공급가를 결정하고 이를 내부적으로 자료화 해야 문제가 되지 않을 것이다. 예를 들어 NV 2018년 수입분은 5만원인데, NV 2019년 수입분이 5만 2천원으로 원가가 나왔다면 내부적으로 이를 결정하고 증빙하는 코드, 그리고 이 두 수입분 빈티지의 NV에 대해서 각기 다른 가격을 산정해야 할것이다.


마침 5월달 시장 동향을 조사했는데, 5월 기준으로도 사상 최대치의 물량 통관이 되었다. 2019년 한국수입와인시장은 큰 변화를 겪고 있는 것 같다. 소비자 트렌드의 변화 속에서 제도의 변화에 이르기 까지 여러 환경에서 변화하고 기민하게 대응책을 세우는 자만이 살아남을 수 있다.


지금 분노하고 청와대에 올라온 청원에 동참할 에너지를 바꾸어서 나는 이 변화된 세상에서 어떻게 살아남고 과학적으로 분석하여 미래 전략을 수립할 것인가에 대해 고민해보면 어떨까 싶다. 국세청이 이 고시를 바꿀 가능성은 0% 같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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