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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휘웅 Aug 18. 2019

와인의 종류를 어떻게 구분할 것인가?

눈에 보이는 대로? 글쎄다.

뭔가 철학적 질문 같지만, 얼마전 일본의 공식 와인 수입 데이터를 얻고서 내린 결론이다. 와인의 종류를 어떻게 구분할 것인가? 전문가가 되면 될수록 그 미시 세계에 빠지기 때문에 모든 것을 이분법적으로 구분하기 어렵다는 딜레마에 빠지게 된다. 일반적으로 와인 소비자들에게 설문조사를 해본다면 대부분의 소비자들은 레드와 화이트 정도로만 기억할 것이다. 그리고 조금 더 지식이 있는 사람들이라면 레드, 화이트, 발포성 와인(일반적으로 샴페인이라 부를 것이다)으로 구분해서 부를 것이다.


그러나 와인을 연구하거나 전문적으로 다루는 전문가들에게는 사정이 다르다. 우선 화이트 와인이라 해도 품종에 따라서 레드 품종을 이용해서 만드는 화이트, 로제가 있다. 레드와 화이트를 각기 양조한 다음 레드를 섞는 경우도 있다. 요즘은 내추럴 와인으로 분류하고 오묘한 오렌지 색상을 내는 와인은 오렌지 와인이라 분류한다. 주정강화와인도 있고, 귀부와인이나 아이스바인 등 당도를 높인 단 맛의 와인들도 있다. 그라파(Grappa)와 같이 남은 찌꺼기를 증류하여 높은 도수의 와인을 만들어내는 경우도 있다. 포도를 이용하여 100%를 썼다는 과실주, 즉 와인이라는 대전제에는 맞으나 그 안의 제조 공정과 그 결과물은 전혀 다른 것이다.


일련의 분류는 레스토랑 와인 리스트를 짜는 데에서부터 머리를 아프게 만든다. 좋은 와인들을 테이스팅 하고 선별을 해 두니 그 다음부터 어떻게 고객들에게 전달할지 어려워진다. 가장 쉬운 방법은 레드, 화이트, 스파클링, 기타로 구분하는 것이다. 눈에 보이는 것이 가장 정확한 것이다. 이 것 때문에 가장 피해를 보는 와인이 어쩌면 로제 와인일지도 모른다. 로제는 해외에서 어엿한 주제로 다루어지고 있으나 한국만큼 백전백패 한 경우가 독특한 경우라 생각한다. 리스트가 아주 많은 레스토랑이라면 종류 보다는 지역별로 구분하여 와인에 어느 정도 지식이 있는 고객이라면 쉽게 고를 수 있게 하는 경우도 많다. 단, 이 경우에는 소믈리에가 있어 고객들의 선택을 도와주고 추천하는 방식이 되어야 할 것이다.


나는 와인 시음노트를 정리하면서 와인의 종류를 크게 여섯가지로 분류하는데 화이트, 레드, 로제, 스파클링, 디저트 및 주정강화, 마지막으로는 오렌지다. 사실 이 것은 적절한 분류는 아니다. 어떤 요소는 색상으로 구분했고 어떤 것은 발포 여부로 구분했기에 정확하게 설명하기가 어렵다. 엄밀히 말하자면 와인의 분류를 색상에 의한 분류, 발포의 여부에 의한 분류, 주정 보강의 여부, 생산 방법에 의한 분류로 나누고 각각의 속성값에 따라 바뀔 것이다. 가장 크게 색상에 의하자면 화이트, 로제, 레드, 오렌지, 주정강화 및 디저트 정도로 분류하면 좋을 것이며, 발포성은 스틸, 준발포성(프리잔테, Frizzante), 발포성(Sprkling)으로, 주정 보강의 여부는 일반 와인과 주정 보강와인 두 종류, 마지막으로 생산 방법에 따른 분류는 일반, 유기농, 비오디나미, 내추럴로 해서 구분하는 것이 맞을 수 있다. 즉, 와인의 종류는 총 4개의 속성값을 갖는 다층적 구조를 갖고 있는 셈이다. 예를 들어서 아주 독특한 와인인 메디치 에르메테의 콘체르토(Medici Ermete Lambursco Reggiano DOC Concerto)는 발포성이지만 레드다. 그 발포도 강발포성이 아니지만 상단의 코르크 막음 상태를 보면 발포성은 맞다. 따라서 이 와인의 종류는 레드 스파클링이라 할 수 있다. 예를 들어 로제 스파클링도 속성값을 달리 하면 표현이 가능하다.


https://www.medici.it/en/shop/medici-ermete-en/concerto-sparkling-dry-red-wine/


그러나 이렇게 구분하다 보면 와인의 세계가 너무나도 넓고 복잡하여 이 분류에도 들어가지 않는 와인은 분명히 발생한다. 그렇기에 사실상 와인을 분류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보아도 무관할 것이다. 내가 이토록 심각하게 고민한 이유는 일본의 HS코드 때문이다. 국제 표준은 여섯자리로 구분되며 와인의 경우는 HS220410(발포성), HS220421(1.5리터 미만에 담겨진 과실주), HS220422(1.5리터 초과 병에 담겨진 과실주)로 구분된다. 원료로 수입되는 포도주는 대부분 HS220422인데, 국제적인 통계(OIV)에는 위의 세 개를 모두 합친 것으로 집계를 하고 내가 조사하는 데이터는 HS220422를 제외한다. 국제적으로는 정리가 깔끔하나 그 다음이 문제다. 한국은 레드, 화이트, 기타로 구분한다. 시장 분석에 용이하다. 그리고 한국은 10자리다. 즉 추가적으로 네 단위의 숫자를 추가한다. 일본은 한국과 달라서 세 자리의 추가 코드를 달아두고 있다.


일본의 경우 주정강화된 와인과 그렇지 않은 와인으로 구분해서 통관 자료만으로는 레드와 화이트를 구분할 수 없다. 일본처럼 정교하게 제도를 만들고 관료적인 사회에서 레드와 화이트를 하나로 묶은 것이 이해가 되지 않았으나, 한 편으로는 앞서 이야기 한 바와 같이 눈에 보이는 그 모습 그대로 레드와 화이트를 구분하는 것에 대한 의구심으로 출발하여 따지다 보니 결론을 내지 못했던 것이 아닐까 싶다. 내 생각은 눈에 보이는 것이 다가 아니더라도 시장을 분류하는 가장 나은 방법은 내 눈에 보이는 대로 정리하되 눈높이를 낮추어서 보편적 시각을 견지하는 것이 시장 관점에서는 맞다는 것이다. 즉 한국에서 정한 직관적 코드(레드, 화이트, 그 이외)가 시장 분석에는 더 이점이 많다는 것이다.


이 것을 보면서 전문가적인 시각이 때로는 불편할 수 있고, 학술이나 전문가의 세계가 대중의 관점과 멀어지는 일반적인 현상(모든 분야에서 이러한 현상은 발생한다)에 대한 하나의 단초를 주는 것 같아 매우 재미있었다. 물론 일본쪽 정보를 제공한 이와도 앞으로 계속 정보를 교류하기로 했는데, 그 데이터의 디테일과 깊이에 매우 감명받고 있다. 다만 소비자 지향적이지는 않다. 학자가 너무 한 곳을 깊게 파고들면 대중에서 멀어진다. 나무를 뿌리, 몸통, 가지, 잎, 열매, 꽃으로 나누어 깊이 생각하다보면 나무 전체를 볼 수 없다. 두 가지 모두 필요하나 이 둘 사이를 오고 갈 수 있는 유연한 시각은 누구에게나 필요한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이번 일을 통해서 나도 내 시각이 너무나 편협한 것은 아닌지, 혹은 간과하고 있는 부분은 없는지도 생각 해 보았다. 와인의 종류를 구분하는 것에 매몰되면 결국 큰 것을 볼 수 없는 이치가 아닐까 생각한다.


그렇다, 미시와 거시를 오고 갈 수 있는 유연한 사고가 와인을 바라보는 정답이다. 와인의 종류에 대한 보편적 구분도 그 사이 어딘가에 있을 것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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