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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휘웅 Nov 01. 2019

철학과 양조학(과학)은 구분되어야 한다

이번 채식주의자들의 와인 이슈를 온라인에서 찾아보면서 뭔가 비슷하게 겹쳐지는 느낌을 받은 부분이 내추럴 와인이었다. 지금까지 우리는 많은 주제를 이야기 하면서 인간 본디 생각에 대한 부분과 과학의 영역을 하나로 엮어서 논의해왔다. 지금까지 가장 대표적인 부분으로는 디켄팅과 코르크가 호흡을 하느냐 하는 부분을 들 수 있다. 과학적으로는 디켄터에 와인을 넣는다고 해도 와인의 맛이 그 짧은 시간에 극적으로 바뀌지 않는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이 디켄팅에 의한 효과를 증언한다. 나를 포함해서. 코르크의 역할 역시 와인이 전혀 공기에 접촉하지 않게 하는데, 그 사이로 미세하게 와인이 호흡을 한다는 믿음 때문에 코르크를 고집하는 와인 생산자가 스크류캡을 쓰는 와인 생산자에 비해 월등하게 많다.


과학적으로는 스크류캡이 환경적 측면 등 여러 부문에서 훨씬 합리적이다. 물론 스크류캡이 콜크에 비해서 싸다는 것은 아니다. 일부 인조 콜크에 비해서 스크류캡이 더 비싼 경우도 많다고 한다. 어떤 경우든 소비자들은 와인에서 기대하는 어떤 모습이 있고, 생산자들은 그 소비자의 기대를 위해서 콜크를 쓰는 것일 수도 있다. 철학과 관념의 세계인 셈이다.


최근에 들어서 화두로 떠오르게 된 부분은 와인의 “지속가능성(sustainability)”를 들 수 있다. 와인은 이전부터 이야기 했지만 상당한 오염물질을 뿜어낸다. 포도원은 가보면 물이 흥건한 것을 알 수 있는데, 이는 오크통이나 스테인레스 발효조 내부를 청소하기 위해서다. 고압의 물을 뿜어야만 주석산 등을 긁어낼 수 있다. 청결을 위해서 대량의 세척제가 필요함은 당연하다. 즉 초대형 설거지를 한다고 생각하면 될 것이다. 포도원에 따라서는 필터링 과정에서 침용된 하단의 와인을 버리는 경우도 있으니, 이 역시 오염 물질이다. 와인이 친환경적이라 생각한다면 큰 오산인 셈이다. 자연과 함께 하기 위해서 포도원들 역시 환경적인 요인에 막대한 투자를 해야 하는데 이게 생각보다 규모가 상당하기에 몬테스 같이 자본력과 철학을 함께 갖춘 곳만이 이러한 지속가능성을 반영한 와인 메이킹을 수행할 수 있다.


이러한 것은 모두 철학의 관점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굳이 투자가 이루어지지 않아도 되나 자연을 위해서, 혹은 내가 갖고 있는 신념에 따라서 어떤 행동을 할 것인지, 어떤 투자를 할 것인지 결정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내추럴 와인에 대해서는 많은 과학적 분석이 이루어지고 양조학 역시 발전하고 있으나, 여전히 비과학적인 요소들도 많이 존재하고 있다. 특히 비오디나미의 경우에는 우주의 기운을 가정하는 마리아 썬 캘린더(The Maria Thun Biodynamic Calendar)가 중요한 요인으로 작용한다. 가만히 생각하면 달의 영향을 가장 강하게 생각하는 음력 달력은 여성들의 생리 주기를 월경이라 할 정도로 달과 지구의 연관성은 밀접하다. 음력 절기도 양력보다 훨씬 잘 맞아떨어진다. 반면 지구 주위의 행성들은 중력으로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으나 그 힘이 매우 미미하여 우리가 느끼지 못한다. 소숫점 아래 10자리 아래 정도의 힘이 작용하니 우리는 거의 느끼지 못하는 것이리라. 만약 태양의 중력을 우리가 느낀다면 낮 시간은 몸무게가 가벼워지고, 밤 시간은 몸무게가 태양에서 멀어졌으니 낮아져야 할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것을 느끼지 못함에도 불구하고 모든 자연의 삼라만상은 어떤 형태로든 연결되어 있다는 것이 과학적으로 조금씩 밝혀지고 있다. 2015년에는 30억 광년 떨어진 곳에서 발생한 블랙홀 충돌에서 발생한 중력파를 검출하는데 성공했고, 이 업적으로 킵 손(Kip Stephen Thorne)이 노벨상을 받았다. 이처럼 온 우주가 멀리 떨어져 있다 하더라도 서로간에 연결되어 있고 영향을 준다는 것이 서서히 밝혀지고 있다. 다만 아직은 과학이 증명하지 못한 사항이 많다는 점이다.


여기에서 사람들이 혼동하는 것이 비오디나미가 양조학의 일부분인가 하는 생각을 한다는 것이다. 농업에 있어서 과학과 철학을 구분하는 것은 매우 어려운 부분이다. 와인 양조에 과학이 개입하기 시작한 것은 어쩌면 파스퇴르 이후라고 보는 것이 적합할 것이다. 청결과 곰팡이, 미생물에 의한 와인 품질의 영향은 이전에는 자연의 선물, 자연과의 상호작용이나 경험의 결과로 취급되던 것이 미생물의 역할이 반영되기 시작하면서 그 것을 과학적으로 살펴본 것으로 보아야 한다. 실제로 파스퇴르는 당시에 와인 양조기법을 개선하기 위한 다양한 방법을 연구했다고 알려져 있다. 그러나 이러한 연구를 하는 상당수의 과학자들도 종교적으로는 신의 존재를 확신한다거나 하는 과학적으로 설명되지 않는 요소들을 많이 받아들이고 있다.


세상을 과학이 지배한다고 하더라도 분명한 것은 비과학적인 요소를 과학이 아니라고 단정짓는 것은 위험하다는 것이다. 과학은 관찰에 의해서 명확한 원인과 결과가 “증명” 및 “검증”에 의해서 만들어지는 세상을 의미한다. 포도밭 주변에 토끼털을 태워서 뿌려두면 병해충이 생기지 않는다는 것을 과학적으로 관찰하여 유의미한 통계 결과를 갖고 온다고 하여 이 것이 양조의 한 방법, 포도원 관리의 한 방법으로 인정되지 않을 것이다. 그에 합당한 증명 과정이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만약 보름달이 뜨면 포도주가 더 맛있어진다는 증언이 많다고 가정해보자. 이러한 우연에 의한 요인들도 과학의 영역으로 인정되지 않을 것이다. 아무리 많은 이들이 상관관계가 나타난다고 해도 말이다. 경험적 지식의 원인을 밝혀내는 것이 과학이기에 이 원인을 찾으려면 시간이 오래 걸릴 것이다.


따라서 우리가 와인을 바라볼 때 명확하게 알아야 하는 것은 와인을 만드는 철학과 양조학이 주는 과학의 세계를 명징하게 구분해서 생각해야 한다는 점이다. 두 요인은 연결되어 있으면서도 서로 다른 방향을 추구한다. 아직은 인간이 포도를 완벽하게 이해하지 못하고 있으며, 양조학은 이 것을 이해하는데 도움을 준다. 여러 내추럴적인 요인들, 비오디나미적 관점의 요인들 역시 증명은 되지 못하였으나 와인을 이해하는데 도움을 준다. 두 요인 모두 와인을 이해하는데 도움을 준다. 과학은 관찰과 실험의 증명에 의해서, 철학은 경험적 지식에 의해서 우리의 와인 경험을 더 우아하고 풍부하게 만들어준다. 디켄터에서 흘러나온 아로마와 가까운 사람들 사이의 행복한 대화가 넘치는 좁은 공간에 넘치는 에너지는 과학으로는 설명이 불가능한 영역인 것처럼, 미셸 롤랑이나 제임스 서클링이 샴페인은 일하는 것이 아니라 마시는 것이라 생각하는 것처럼.


오늘도 나는 혼자 와인을 마시면서 그 와인 자체를 과학의 관점에서 분석 해 보고, 시장관점에서 숫자로, 통계 데이터로 분석을 해 보지만, 또 한 편으로는 지인들과 와인을 함께 나누면서 비과학적인 요인들을 함께 생각해본다. 와인이란 이 두 상충적 요인이 기묘하고도 아름답게 합쳐진 소나타가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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