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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휘웅 Jan 24. 2020

눈여겨 보아야 할 지역, 리락(Lirac)

샤퇴뇌프두파프를 마실 수 없다면 리락 와인을

로버트 파커가 세간의 주목을 받게 된 것은 82년 보르도 와인에 대한 예측에서 출발한다. 그 이후 파커의 말은 곧 와인 시세에도 큰 영향을 주었는데, 그의 혜택을 가장 많이 받은 지역 중 하나가 샤퇴뇌프두파프(Chateauneuf-du-Pape)라 할 수 있다. 2001년 그의 칼럼에서는 “샤토네프두파프는 왜 영 빈티지이거나 숙성된 빈티지이거나 절대로 실망하게 하는 적이 없는가”라는 화두로 시작하며 이 지역 와인들에 대한 엄청난 찬사를 보낸다. 사실 내가 보아서도 세상에서 가장 독특한 테루아로 샤퇴뇌프두파프를 빼서는 안된다고 본다. 매우 좁은 지역에 4개의 전혀 상반된 토양이 산재되어 있기 때문이다. 특히 석회암 테루아와 굵은 자갈의 테루아는 불과 거리가 4~500미터 밖에 떨어져 있지 않음에도 완전히 땅 색상부터 다른 모양을 보여준다. 이런 테루아적 기질 때문에 샤퇴뇌프두파프의 와인들은 포도원마다 제각각의 캐릭터가 드러난다. 물론 이 네 가지 테루아의 지역이 엄청나게 넓지 않은 반면 샤퇴뇌프두파프의 아펠라시옹은 매우 넓게 산재되어 있어 이 각각의 토양 특성을 다 포함한 포도원들은 많지 않다는 점도 알고 있어야 한다.

샤퇴뇌프두파프 지역의 대표적인 테루아 네 가지(출처: chateauneuf.com)


그렇다면 여기서 궁금증이 생긴다. 이 지역 생산자들은 매일 샤퇴뇌프두파프를 마실까 하는 점이다. 싸지 않은 와인인데다가 생산량도 적은데 매일 마셨다가는 포도원이 거덜 날 일이다. 그래서 나는 한 포도원과 식사를 하면서 물었다. “평소에는 뭘 드시나요”하는 질문으로 말이다. 그의 대답은 경쾌했는데, “우리 동네에서는 리락(Lirac)”을 가장 선호합니다. 바로 근처에 있어서 샤퇴뇌프두파프의 테루아 특성과 상당부분 닮아 있으면서도 가격은 저렴합니다. 그 잠재력이 상당하다고 할 수 있지요.“ 하는 것이었다.


지금까지 맛보았던 몇 안 되는 리락 지역의 와인 맛은 놀랍게도 샤퇴뇌프두파프의 것과 상당한 부분 일치하는 측면이 많다. 특히 화이트의 경우에는 놀랍도록 기분 좋은 꿀향, 과실향, 낮은 산도와 부드러운 풍미 등등 여러 측면에서 훌륭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그런 관점에서 능히 그러한 말에 일리가 있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 리락 아펠라시옹은 1947년 제정되었을 정도로 그 역사가 매우 깊다. 리락 와인은 화이트, 로제, 레드 세 가지를 만들 수 있는데, 이는 바로 옆에 붙은 타벨 아펠라시옹이 로제만 만드는 곳이고, 테루아적 특징이 로제에도 적합한 곳이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한다. 위치적으로는 샤퇴뇌프두파프가 론 강에 둘러싸인 동쪽 부분이라서 그 강의 서쪽 부분의 분지에 해당 된다. 연간 일조량이 샤퇴뇌프두파프와 거의 비슷하고 토양적 특성은 주로 석회암 계열로 이루어져 있다. 아무래도 토양적으로 여러 캐릭터가 섞인 샤퇴뇌프두파프에 비해서 복합성은 떨어지는 것이 자연스러울 것이다.


리락 아펠라시옹 위치(파란 부분, 출처: http://theventouxwinecompany.com/ )


이 지역에서 레드는 그르나슈(최소 40%), 시라, 무르베드르(최소 25%), 카리냥(최대 10%) 외 생쇼 포도를 쓸 수 있다. 로제는 같은 품종이나 20%의 화이트 품종이 사용되는 것을 허용한다. 화이트는 클라레트, 그르나슈 블랑, 부브레가 사용된다. 이 지역의 레드는 일반적으로 코드 드 론(Cotes du Rhone) 스타일이 나는 경우가 많으나 잘 만드는 집은 영락없는 샤퇴뇌프두파프의 캐릭터를 보여준다. 보디감이 있으면서도 안정감 있는 산도, 캔디 같은 아로마의 달콤함과 응집력, 복합미에 체리와 블루베리의 복합적 질감에 이르기까지 매우 맛있는 캐릭터를 보여준다. 


개인적으로는 리락의 블랑을 더 좋아하는데, 샤퇴뇌프두파프의 블랑을 맛본 사람이라면 그 이유를 알게 될 것이다. 유사점이 매우 크게 나타난다. 우리가 와인을 알아가는 과정은 하나하나 딸을 찾아가고 만나가는 일련의 구도자적 활동이라고 생각한다. 그 활동의 끝에는 언제나 놀라움과 신선함을 보여주는 새로운 와인들이 기다리고 있다. 아직 국내에 많은 리락 와인이 들어오지는 못했으나 한 번 찾아볼 것을 권장한다.


현재 수입사는 샤프트레이딩에서 도멘 데 보스케 가문의 훌륭한 리락 와인을 수입하고 있으며, 도멘 드 라 모르도레는 루벵에서 수입하고 있다. 최근에는 빈티지코리아에서도 오지에르의 리락 와인이 소개되었으니 한 번 찾아서 마셔보자.



샤퇴뇌프두파프의 테루아

오지에르 포도원 테이스팅

생산시설이 이렇게 굴 속에 있다
(왼편) 가장 비싼 양조 숙성 콘트리트 단지, (오른편) 오지에르에서 만드는 리락 블랑. 끝내주게 맛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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