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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휘웅 Feb 07. 2020

달콤 쌉싸름한 한국와인

놀랍도록 발전하는 한국와인

지금까지 내가 한국와인에 대해서 높은 평가를 내리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 이유는 여러 가지 있었는데 첫째, 보당이 필수적이기는 하지만 과도할 정도로 보당을 하는 경향이 있었다는 점이고, 둘째, 발효가 덜 되거나 산화가 된 와인들도 평가에 나온 경우들이 종종 있었으며, 어떤 과실을 써야 하는지, 그리고 그 과실이 어떠한 결과를 만들어내는지에 대한 명확한 이해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여기서 잠시 “와인(wine)”이라는 것의 정의를 들여다 보자. 와인의 정의는 100% 과즙으로 만들어낸 술을 의미한다. 그렇기 때문에 효모가 발효할 수 있는 당 성분을 갖고 있으며 일정 부분의 산도를 보유하고 있다면 모두 다 와인을 만들 수 있다는 결론에 다다르게 된다. 우리나라의 경우는 좀 더 넓은 범위로 정의할 수 있는데, 최정욱 대표의 정의를 인용하자면 "한국땅에서 재배한 과실(과 준하는 열매)을 파쇄발효를 통해 만든 알콜 음료"로 정의될 수 있다. 따라서 한국 와인은 척박한 환경에서 전혀 다른 접근법으로 만들어진 다양한 종류의 과실을 접할 수 있다. 대신 주지하다 시피 한국은 농업 생산 비용이 다른 국가에 비해서는 높은 편이다. 그리고 쌀이나 밭 작물에 비해 과실 작물에 대한 정책적 관심이나 영향도 낮은 편이기 때문에 국내에서 와인을 만든다는 것이 절대로 쉬운 일은 아니다.


관심도 낮고 환경 해석력도 떨어졌기 때문에 지금까지 한국 와인은 많은 이들의 노력에 비해 전문가들의 눈길을 끄는데 상당히 어려움을 겪었던 것이 사실이다. 이런 나의 생각은 몇 년에 걸쳐서 서서히 조금씩 바뀌어 왔다. 첫 번째의 임팩트는 이종기 교수가 문경에서 만드는 오미자 와인인 오미로제다. 다섯가지 맛을 낸다 하여 오미자로 불리는 이 열매는 생산량이 적고 약용 작물이라 단가가 대단히 비싸다. 그리고 발효 과정이 더디고 보당도 매우 까다로워 오랜시간 공을 들여야 한다. 그러나 이러한 어려움을 이기고 나온 이 오미자 와인은 청와대 만찬주로 사용될 뿐만 아니라 지금 와서 다섯 맛의 균형감을 상당히 잘 표현해주고 있다. 이 때 내가 느꼈던 맛은 쌉싸래한 특징(도라지 뿌리에서 느낄 수 있는)이었다. 당시 나는 이 쌉싸래함이 단순히 오미자에서 오는 것이라 생각했다. 이 부분은 잠시 뒤 설명하겠다.


두 번째의 임팩트는 2019년에 맛본 속이 빨간 사과, 레드러브라는 스위스 품종으로 만든 와인이었다. 이 사과는 추사 김정희가 태어난 예산에서 사과와인을 만들고 있기 때문에 예산사과와인의 브랜드인 추사로 출시된 와인이었으며 당시에 놀랍도록 안정된 맛에 깜짝 놀랐다. 마지막 세 번째의 임팩트는 2020년 2월에 받았다. 2019년에 모 주류대상 심사위원으로 한국와인들을 테이스팅 했는데 그 당시에는 실망스러운 와인들이 매우 많았다. 이에 반해 2020년이 동일한 대회의 동일한 평가를 맡게 되었다. 그 결과 시음한 와인들은 감탄의 연속이었다. 대단히 품질이 개선되었으며, 일부 와인의 경우 해외 와인들과 견주어도 품질에서 밀리지 않는 와인들이 꽤 많이 발견되었다. 블라인드 테이스팅이기 때문에 어느 와인인지 알 수는 없으나 이 와인들에서 나는 여러 가지 공통된 측면을 발견할 수 있었다.


바로 오미자 와인에서 발견한 쌉싸래함이 꽤나 많은 와인에서 나타난다는 점이었다. 사실 포도로 만든 와인은 아로마와 맛이 거의 겹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아로마에 쌉싸래한 향이 나지 않을 뿐만 아니라 맛에서도 이러한 쌉싸래한 맛을 느끼기는 쉽지 않다. 그런데 한국와인에서는 이 쌉싸래함이 꽤나 많이 나타나고 있고, 레드 와인에서도 이러한 특질을 느껴볼 수 있었다. 나는 이러한 일련의 특징들이 한국만의 테루아라는 결론을 내리게 되었다. 그리고 포도원들이 땅과 과실에 대한 해석력을 많이 높였다는 증거로 받아들이기에 충분했다.


덕분에 2019년에는 힘들었던 시음 과정이 2020년에는 호기심과 즐거움으로 바뀌어 있었다. 다만 전체적인 시음을 하면서 느낀 몇 가지 생각을 밝힐까 한다. 물론 양조 과정에서 많은 이들의 노력이 들어간 것이기 때문에 각 포도원들의 노력에 경외심을 더하면서 말이다.


캠벨얼리 품종: 가급적 로제로 가는 것이 훨씬 높은 품질과 경쟁력을 가질 수 있다. 레드 와인으로 출품된 캠벨얼리 와인들은 레드의 힘과 화이트 와인의 섬세함 사이에서 길을 좀 잃는 느낌을 많이 주었다. 그런데 로제로 출품된 캠벨얼리 와인은 대단히 훌륭한 균형감과 질감을 보여주었다.

매실: 쌉싸래함을 잘 보여주고 있으며, 한국만이 만들어낼 수 있는 최고의 독특한 와인이라 생각한다. 매실은 한국인에게도 익숙한 과실이기 때문에 앞으로도 시장 성장성은 충분하다고 판단한다.

산머루: 꽤나 가능성을 많이 볼 수 있었던 포도가 산머루다. 다루기가 매우 까다롭기는 하지만 잘 통제가 된 산머루는 놀랍도록 훌륭한 경험을 주었다. 특히 한 와인은 압도적으로 뛰어난 품질을 보여주었다.

머스캣, 샤르도네, 자두: 이탈리아의 모스카토를 마시는 것 같은 경험을 준 한 와인, 그리고 예상 외로 꽤나 샤르도네의 품종 특성을 잘 뽑아내었던 와인들, 특히나 매우 뛰어난 맛을 보여준 자두 와인에 이르기 까지 국내에서도 국제 품종이나 전혀 다른 품종을 활용할 수 있는 가능성을 크게 보여주었다. 국내에서 국제 품종을 재배하기 어렵다는 고정관념을 버리고 특수한 테루아를 찾아내게 된다면 국내에서도 정말로 뛰어난 와인들을 많이 발견하게 될 것이라는 희망을 보게 되었다.


금번 시음에 있어서 다만 한국와인에서 고민해야 할 부분은 보당(설탕을 섞는) 과정에 좀 더 많은 공을 들여야 할 것이라는 점이었다. 의욕이 과하거나 소비자들의 취향을 너무 의식하여 단 맛을 내게 하는 경우 섬세한 과실의 특징을 전혀 느낄 수 없다는 것이었다. 단 맛이 강할 때 이처럼 섬세하고 우아한 복합미를 느끼지 못한다는 것은 공통된 특징이었다. 다만 한 해가 지날 때마다 일취월장하는 한국와인에 대해 큰 기대를 걸게 되었다는 것은 이번 시음의 큰 수확이라 할 수 있겠다.


앞으로도 한국와인의 큰 발전을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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