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정휘웅 Feb 27. 2020

와인 가격은 얼마가 적정한가?

와인가격에 거품이 끼어 있을까?

과거에는 컴퓨터와 모니터 사이에 RGB라고 하는 케이블이 달렸다. 어느 시점부터는 이 것이 HDMI라는 네모 모양에 각진 테두리가 있는 케이블로 다 바뀌었다. 재미있는 것은 RGB 케이블의 경우 가격의 차이가 거의 없었는데 요즘 이 케이블의 가격은 천차만별이다. 예를 들어 1.5미터짜리 케이블(버전 1.4)이 모 체인형 숍(파란 쫄쫄이 유니폼 입은 마스코트가 있다)에 가면 1만원을 훌쩍 넘는다. 사실 어느 숍에 가더라도 대부분 이 가격은 한다.(유럽에 가도 10유로 정도 나간다) 재미있는 것은 이 것을 용산 케이블 전문 상가 혹은 컴퓨터 부품 쇼핑 인터넷 몰에 들어가보면 불과 1천원 밖에 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지원하는 버전이 높은(버전 2.0) 경우에도 2천~3천 원 아래 수준에 구매할 수 있다.   

  

이 케이블에 무슨 금가루를 뿌려둔 것도 아니다. 오히려 케이블의 품질은 어느 포맷을 지원하느냐가 더 중요할 뿐 화질에 영향을 주지 않는다. 또 하나의 사례를 들어보자. 대부분의 유명 피자는 테이크 아웃을 하는 경우 40% 가량의 할인율이 적용된다. 시장 경쟁이 되어서 그런 부분도 있겠으나 사실 그 만큼 배달 비용이 높다는 것이기도 하다. 그 누구도 피자 가격이 정상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러나 다들 카드나 통신사 할인 쿠폰, 생일 쿠폰 등 포인트를 묶어서 정가에 사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오히려 세트 주문을 하면 할인 폭이 크다는 것을 생각해서 주문한다. 그렇다면 유명 피자 체인사들은 이를 손해보고 파는 것일까? 그렇지 않을 것이다. 소비자들의 생각에 할인을 해주면 더 싸게 생각되는 느낌을 주기 때문에 처음 할인율을 감안하여 소비자 가격을 책정한다.     


과거 컴퓨터의 서버가 공공기관에 납품되기 위해서 기본 할인율은 75%였다. 시중에서 10만원 하는 하드디스크의 1개 가격이 120만원씩 되어 있었다. 품질 보증을 5년 한다고는 해도 과도한 면이 매우 컸다. 그리고 견적서를 받으면 할인율을 75% 써주곤 했다. 지금에 와서 이러한 관행이 좀 개선되기는 했지만 이처럼 할인을 하는 것은 모든 비즈니스의 기본으로 잡혀져 있다. 사람의 심리인 것이기도 할 것이다.     


그렇다면 와인에 있어서 일반적으로 소비자들이 보는 시각은 어떠할까?      


내가 보았을 때 수입사/유통사들이 가격을 올린 뒤 가격을 할인하는 것은 비단 와인의 문제가 아니라는 점이다. 와인에 특징 지워 와인이 폭리를 취한다거나, 와인의 가격체계가 잘못되었다고 생각하는 것은 좀 보정되어야 한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오히려 다른 산업분야에 비해서 와인은 소비자들의 가격 민감도가 매우 높다고 생각한다. 앞서 말한 HDMI 케이블의 가격을 언론에 이슈제기를 하고 HDMI 케이블 생산자가 폭리를 취한다고 생각하는 이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와인은 소비층이 얇고 유통 채널이 인적 네트워크에 의존하는 경우가 많다 보니 누가 얼마를 이윤으로 남겼는가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원칙적으로 모든 유통 비즈니스의 영업이익률은 30%가 되어야 한다. 이는 애플이나 구글이 앱스토어에서 수수료를 30% 갖고 가는 데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이 30% 이내에서 기업들은 자체적인 비용들을 충당한다. 이 비율은 와인업계라고 특별할 것 없다.     


오히려 SKU가 많을 수 밖에 없는 와인업계는 얼마만큼 높이 가격을 책정한 다음 할인율을 어떻게 해주어야 하는가에 대해서 고민할 수밖에 없다. 와인마다 남은 재고, 판매 가능성, 추가 수입시 비용 등등 생각해야 하는 이슈가 한 둘이 아니기 때문이다. 나는 얼마전 한 수입사 창고를 찾았다가 놀라운 물건을 발견했다. 수입된지 18년이 된 코드 두 론 빌라쥐(Cotes du Rhone Villages)였다.(와인메이커는 밝힐 수 없다.) 수입사 대표의 말을 빌리자면 “창고에 너무 오래 두었고, 코트 두 론 빌라쥐는 살아있을 확률이 거의 0%이니 먹을수 있는지 없는지 한 번만 판단해달라”는 요청에 한 병을 갖고 와서 시음 해 보았다. 결과는 엄청난 와인이었다. 참고로 2002년은 론 지역에서 시작하여 이탈리아 피에몬테 지역에 재앙과 같은 해였다. 많은 포도원들이 생산을 포기했고, 일부 포도원의 경우에는 윗등급 포도를 아래등급으로 낮추어서 생산했다. 단일 아펠라시옹으로는 생산량이 나오지 않을 정도로 완전히 농사를 망쳤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시장에서 2002년 론은 없다. 여러 매체의 빈티지 리포트에서도 톱 메이커의 생존 연한이 10~15년이라 했다.     


그런데 이런 와인이 발견되었다는 것은 와인 수입업이 얼마나 어려운 것인지를 극적으로 보여주는 예라 하겠다. 나는 수입사 대표님께 “분명히 와인메이커가 2002년은 윗등급 포도를 모두 내려서 코트 두 론 빌라쥐로 만든 것임에 틀림없다.”라고 조언했고 비즈니스화 하라고 권고했다. 유명하고 역량이 대단히 뛰어난 생산자였으니 의심의 여지는 없었다.(혹시라도 언젠가 생산자를 만나게 된다면 한 번 물어보고싶다.) 물론 이 와인은 수입사 창고에서 18년간 아주 조용히 잠을 자고 있었으니, 그 창고 비용은 무엇으로 보상받을 것인가? 나는 와인 가격에 대해서 “폭리”라고 주장하는 일부 블로거들 혹은 언론의 주장은 타당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위험도가 높은 비즈니스, 소량 다품종을 다루는 비즈니스는 원가 구조가 이에 맞추어질 수 밖에 없고, 살아있는 음료를 다루는 것이다.     


지금까지 내가 만난 대부분의 수입와인업체는 일반적인 비즈니스 룰을 따르고 있다. 그리고 수입업체가 납품가를 높인 다음 납품단가를 할인해주는 관행 아닌 관행은 유통에서 지속적으로 요구해서 전체적으로 관행화 된 것이며, 이는 꼭 와인부문이 아니라 전체 비즈니스 영역, 나아가서 인간의 심리적 이슈와 연결된 사안에서 시작된 것이라 말하고 싶다.     


마지막으로, 앞으로 HDMI케이블 가격은 꼭 인터넷에서 찾아 주문하자. 택배비 2,500원을 포함해도 유명 매장에서 사는 것보다 싸다. 그리고 비난하자, 그들이 HDMI케이블 판매 폭리를 취한다고.

매거진의 이전글 달콤 쌉싸름한 한국와인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