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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휘웅 Dec 29. 2019

와인은 비난의 대상이 아니다

약 10년 전이었다. 모 와인동호회 운영을 맡고 있었고(지금도 명목상으로는 그러나), 프랑스의 가장 잘 아는 포도원의 주인이 나를 위해서 한국으로 그르나슈 와인군(GSM이라 해야 할 것이다) 여러 병을 컬렉션 해서 보내주셨다. 주변 사람들에게 이야기를 했더니, 스페인 와인이랑 배틀(battle)을 붙여보자 한다. 물론 나는 참석은 하지 않았고, 나중에 알아서 시음회를 열었던가 보다. 그르나슈의 원산지는 사실 라만차 지역이고 가르나차가 원래 명칭이다. 그래도 프랑스는 자신들만의 훌륭한 그르나슈와 이에 맞는 블렌딩을 찾아내었다.


스페인의 가르나차는 나름 엄청난 것들이 나왔던 터였다. 내가 보낸 와인들은 그 수준의 가격은 아니지만 와인메이커가 매우 진중하며, 신실함을 갖고 만드는 와인이었다. 결론은 내가 보낸 와인들이 당연히 많이 밀렸었다. 문제는 그 다음이었는데 상대적 와인의 차이를 넘어서서 “어디 와인이 완전히 우세하다”라는 식의 의견이 지배를 이루었다. 물론 어느 정도의 비난과 심지어는 와인이 형편없다는 평가도 나왔다. 나는 이미 시음해서 충분히 그 캐릭터가 어떤 것인지를 알고 있어서 마음이 더 아팠다. 나는 포도원에 별도로 의견을 보내드릴 손이 움직이지 않아 조용히 테이스팅을 잘 하였다는 이에 대한 감사의 편지를 보내드렸다.


당시 나의 실수는 여러 가지인데, 소중하게 보내온 와인을 내가 직접 핸들링하거나 설명하는 기회 없이 막연한 배틀같은 자리에 내보낸 것이 가장 큰 실수라 할 수 있겠고, 그 다음으로는 배틀이라는 것의 그 뒤에 일어날 일에 대해서 크게 생각하지 못했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이렇게 생각했다. “다시는 와인으로 배틀 같은 것은 하지 않겠다.”라는 것이었다. 파리의 심판을 두고 사람들이 지금까지 계속 이야기를 하고 있다. 미국 와인이 프랑스 와인을 이겼다는 것이다. “와인 미라클”이라는 영화도 나왔고 말이다. 다만 프랑스 와인도 자존심이 상했겠지만, 당시 미국와인이 승리했다고 프랑스 와인을 존중하지 않은 것은 아니었을 것이다.


나는 이런 형식의 배틀이라는 갈등의 구조가 세상을 구성하는 가장 기본적인 요소라는 점을 인식하고 있다. 역사발전도 이러한 일련의 투쟁으로 이루어져 왔기 때문이다. 문제는 이러한 배틀 이후의 이슈다. 승자는 그 승리감에 만취하여 상대편에 대한 비난이나 징벌적인 상황으로 흐르는 경우다. 1차대전 승전국들이 과도한 승리감에 독일에 지나친 굴욕과 징벌적 배상금을 내린 덕분에 나치 같은 괴물이 나타나게 된 것이다. 대부분의 와인 자리에서 블라인드 테이스팅을 할 경우에 와인의 순위를 정하면 이 것은 하나의 재미로 끝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러나 와인에 과도하게 집착하거나 자신의 와인을 드러내고자 할 때에는 이것이 자존심으로 변해버린다.


그리고 종종 모임에서 “나는 좋은 와인을 내었는데, 저 사람은 싼 것만 갖고 오잖아, 급이 맞지 않아” 등등의 마음속 비난을 와인에 투영해서 내는 경우도 있다. 이러한 마음가짐은 누구나에게 일어날 수도 있지만, 그 것은 사람들의 와인에 대한 이해도가 모두 다르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아서 일어나는 일이다. 시작은 자신의 강한 자존감에서 출발하여 상대에 대한 인식 부족으로 이어지고, 이 것이 사물을 통해 투영되어 비난으로 이어지는 것으로 판단한다. 그리고 그 와인의 가격으로 상대편을 잣대 삼아 결정해버리는 우를 범하게 되는 때도 많아지는 것이다. 그러나 와인 산지에 가보면 그 와인 하나하나는 다 어렵게 만들어진다. 적어도 한국에 수입되는 소비자가 1만원 이상의 와인들은 정말로 포도원들이 직접 생산하고(위탁 생산하거나 공장에서 대량으로 찍어내는 와인도 해외에는 부지기수다), 수입사들도 신중하게 선택하며, 식검에서는 꼼꼼하게 식품 안전성을 확인한다.


그 어느 와인도 무시할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기 때문이다. 아직도 2004년 당시에 모 유명 칠레 와인 회사의 설명되지 않는 끔찍한 맛을 잊을 수 없다. 그 같은 레이블의 와인을 2~3년 전 마셨을 때 놀랍도록 개선된 맛과 품질을 또 한 번 잊을 수 없게 되었다. 그래서 무엇이든 와인 자체를 비난해서는 안된다. 어떤 것이든 변하기 마련이고, 그 것은 좋은 방향이든 나쁜 방향이든 흘러가게 된다. 부르고뉴의 경우에도 선대의 실력을 이어받지 못하고 후손이 와인을 다 망쳐버리고 있다는 이야기, 어느 포도원이 자신들의 명성에 심취되어서 경비원을 두고 사람들을 문전박대한다거나 하는 이야기도 종종 들린다. 자신감이 자만으로 변하여 망하는 사례는 역사적으로 너무나 많아서 일일이 전거할 수 없다. 자만이 밖으로 드러나면 비하, 비난으로 나타난다.


이 것 하나만 생각하자, 비난할 것은 상대편이 아니라 나 스스로임을. 남을 비난하면 상대도 그 만큼 나를 비난할 것을. 와인이 비난의 대상이 되어서는 안된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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