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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휘웅 May 24. 2020

와인 이름은 마음대로 부르세요

"Michel"이라는 단어를 발음해 보자. 미국에 살고 있다면 마이클일 것이고, 프랑스면 미쉘, 독일이라면 미카엘이 될 것이다. John도 미국이면 존이 될 것이고 독일이면 요한이 될 것이다. 이처럼 어떤 특정한 단어들은 그 고유의 단어가 가진 발음 이외의 것으로 분화되어 일어난다. 다만 어디에나 정답은 없다. 불가에서 대부분의 경전은 “여시아문(‘如是我聞’나는 이렇게 들었다)”로 시작된다. 즉 부처의 가르침은 구전으로 전해지다가 점차 불교경전으로 옮겨졌다. 산스크리트어나 구자라트어, 타밀어 등 다양한 언어로 쓰여졌고, 한자로 옮겨 쓰게되면서 독특한 발음들이 되었다. 예를 들어 “아뇩다라삼먁삼보리(阿耨多羅三藐三菩提)”의 경우에는 산스크리트어 아누따라삼약삼보디(anuttara-samyak-sambodhi)를 음사한 것으로 ‘위없는 올바르고 두루 한 깨달음, 또는 지혜’라 번역된다.(출처: 한국민족문화백과대사전) 이 것이 정확한 발음일까? 정답은 없다. 한자 발음에 “뇩”자와 “먁”자가 있다는 것도 신기한 일이고 말이다.


간혹 와인 이름 부르는 것에서 표준 발음이 무엇이냐 하며 논쟁이 벌어지곤 한다. 물론 어느 기준점은 있어야 한다. 그리고 언론 혹은 관련 업계 사람이라면 그 기준을 따르는 것이 맞다. 간혹 현실과 괴리된 표현법도 많이 있다. 대표적인 것이 “피노 누아르”다. 나는 국립국어원의 표기법을 따르기에 “피노 누아르”라고 모든 글에 쓰고 있으나, 사실 대부분의 사람들은 “피노 누아”라고 부른다. 여기서 딴지를 걸어보자면, 이 기준을 따른다면 영화 장르중 하나로 잡힌 “누아르 필름(영웅본색 같은 영화들)”의 경우 “누아 필름”이라 발음하는게 맞을 것이다. 이 장르의 영화 발음도 많은 사람들이 “느와르 필름”으로 알고 있는 사람들이 많다.


외국에서 유래한 단어들은 다 우리들이 바꾸어 발음하기 때문에 정확한 표기법은 없다는 것이 맞다. 사실 사람이 내는 말소리를 글로 표현한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포도원 이름 중에서도 논란이 많은 그랑크뤼가 하나 있다. “Lynch Bages”다. 2000년대 중반, 불어불문학과 전공 박사학위 소지자에게 이 와인의 발음을 물었다. 그 때 대답이 “이건 프랑스 이름이 아니네요. 그냥 맘대로 부르세요.”였다. Lynch Bages의 이름은 아일랜드계 Thomas Lynch가 아일랜드 갤웨이에서 아버지와 함께 보르도로 이사오면서 시작되었다. 그리고 그의 부인 엘리자베스와 함께 Bages 마을의 포도밭을 상속받아서 포도농사를 시작하게 되었다. 즉, 아일랜드계 이름과 프랑스 이름이 섞인 것이다. 그래서 이 포도원의 이름을 부를 때 모두 다 프랑스식으로 “랭쉬 바쥐”라고 발음하는 사람들도 있고 영어식으로 “린취 바게(베이그)”라는 사람도 있다. 이 이외에도 발음 종류는 더 다양할 것이라 판단한다.


문제는 여기서 출발한다. 와인 모임에 가게 되면 이 이름의 발음을 두고 행여나 초심자들이 레이블 발음을 잘 못 하면 가르치듯 교정하는 것을 넘어서서 지적과 핀잔으로 점철되는 경우들이 종종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소리를 들은 초심자들은 주눅들게 되고 간혹 서로간에 언쟁의 빌미를 제공하기도 한다. 그 사람이 알고 있는 발음은 과연 정확한 발음일까? 어떤 경우든 발음의 문제가 아니고 소통의 문제다. 최근에 와서 영어는 미국 영어와 영국 영어가 많이 분리되기 시작하고 있지만, 글로벌 표준어화 되어가면서 국가별로 자신들의 발음에 맞춘 영어가 대세를 이루고 있다. 인도사람들은 인도사람대로, 파키스탄 사람은 파키스탄 사람 대로, 우리는 콩글리시를 쓴다. 영국에는 표준어가 없다고 할 정도로 지역별 토착어 발음이 강하다.


2020년 슈퍼볼 광고에서는 현대자동차의 보스턴 지역 방언을 이용한 광고로 큰 호응을 얻었다고 한다. 그렇다고 이 것이 잘 못 된 것일까? 영화 “킹스맨”에서 콜린 퍼스가 “매너(manners) 메이킄스(maketh) 맨(man)”이라 발음한 것을 잘못된 단어, 잘못된 표현이라 할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그러니 와인 모임에 가서, 행여라도 내 귀에 틀린 발음이라 들리더라도 그대로 두자. 괜히 오지랖을 떨고 발음이 이렇네 저렇네 하는 내 기준의 지식을 설파하지는 말자. 모든 발음에는 그 나름의 이유가 있으며, 정확한 발음을 하려는 무던한 노력이 있었다는 것임을 잊지 말자. 단 하나 유념해야 할 것은 있다. 언어란 커뮤니케이션의 핵심 도구이므로, 두 사람의 발음이 완전히 달라져버리면 전혀 다른 뜻이 전해지거나 서로 뜻을 알아들을 수 없다. 따라서 너무 벗어나지 않는, 의사 소통이 되는 발음체계는 배우려 꾸준히 노력해야 하는 것도 잊지 말아야겠다.





자, 다시 발음 해 보자. “Lynch B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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