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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휘웅 Jul 20. 2020

와인잔의 경제학

개인적인 추측이지만, 플루트형 샴페인잔의 시작은 어쩌면 마케팅의 산물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1960년대 제임스 본드의 영화를 보아도 그렇고 과거의 샴페인 잔은 모두 넓은 형태다. 기포의 질감을 아름답게 보여주고 스탠딩 파티의 멋스러움을 보완해주는 것은 여지없이 플루트형 샴페인잔이다. 그러나 이 잔들은 잘못 따를 경우 쉽게 와인이 흘러넘칠 뿐만 아니라, 기포를 멋지게 바라보는 것 이외의 이점은 전혀 주지 못한다. 오히려 아로마를 맡을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코를 대어보면 기포에서 나오는 탄산이 코를 강하게 자극해서 재채기를 해야 할 정도다. 게다가 세척도 쉽지 않다. 왜 이렇게 불편한데도 샴페인잔은 플루트 형태를 쓰는 것일까?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와인잔 개발자들의 생각과 마케팅의 산물이 아닐까 생각한다.


와인 폴리(Wine Folly)의 샴페인 잔 가이드를 보아도 자신들은 스파클링 와인을 테이스팅 할 때 화이트 잔을 이용한다고 언급한다. 최근의 와인잔 생산자들 트렌드 역시 고급 샴페인의 잔을 설계하는데 있어서는 이전의 가는 플루트 잔 보다는 좀 더 넓은 형태의 튤립 형태 잔을 많이 권장하고 있다는 것이다.


와인은 액체이기 때문에 형태가 없다. 와인 병의 모양이나 잔의 모양에 따라서 그 형태가 결정된다. 와인의 심미안적 완성은 잔에서 이루어지는 셈이다. 그러니 사람들은 잔을 통해서 자신의 모습을 투영하고자 하는 경향이 강한 것으로 판단된다. 이런 측면에 있어서 한국 와인 애호가들의 잔에 대한 선호도는 다른 나라에 비해 까다로운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해외에 나가보게 되면 고급 레스토랑이라 하더라도 잔의 투박함에 간혹 깜짝 놀라는 경우를 발견하게 된다. 그만큼 한국 소비자는 까다롭다.


와인을 좀 마신다는 애호가들은 레스토랑의 레벨을 와인 잔으로 측정하는 경우들이 상당히 많다. 그 만큼 레스토랑 입장에서는 와인잔에 신경을 쓸 수 밖에 없다. 문제는 고급 잔일수록 유지관리에 많은 신경을 쓸 수 밖에 없고, 섬세한 잔이다 보니 파손율이 높다는 것이다. 디캔터 역시 마찬가지다. 만나보는 레스토랑 업주들과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잔과 콜키지, 그리고 이의 득실에 대해서 고민하는 경우가 매우 많다는 것을 알게 된다. 좋지 않은 잔을 내게 되면 레스토랑의 레벨에 대해서 고객들이 더 민감하게 반응하게 되고 나쁜 인상을 심어주는 경우가 많고, 그렇다고 좋은 와인을 구비하자니 잔의 내구도 때문에 손실율이 높아진다.


일반적으로 해외의 경우에는 레스토랑의 식음료 매출 비중이 30~40% 가량 된다고 한다. 가까운 일본이나 홍콩, 싱가폴의 경우에도 20%를 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이에 반해 우리나라의 경우는 인터뷰 해보는 대부분의 경우 10%를 조금 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물론 우리나라에서는 호주식 BYOB 문화가 많이 보급되어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이 역시 레스토랑 입장에서는 참으로 어려운 문제일 수 밖에 없다. 와인을 반입하는 경우에 고객은 병당 콜키지를 물리면 그에 합당한 좋은 잔이 나올 것이라는 기대를 하게 된다. 적정하기는 하겠으나, 실제 식음료 매출이 늘지 않는 입장에서 단순히 콜키지만으로 매출에 기여를 한다는 것이 레스토랑 운영자 입장에서는 그렇게 달갑지는 않을 것이다.


한국 소비자가 까다롭다면 까다로운 것이겠지만, 와인잔이 유독 한국 내에서 좀 더 중요한 의미를 갖고 있다는 것은 분명한 어떤 시그널이라고 생각한다. 소비자들은 우아하게 멋있으면서도 가볍고, 얇고, 유명한 잔을 선호하고, 업장에서는 적당한 두께와 크기에, 식기세척기 내에서 잘 깨어지지 않는 튼튼한 와인 잔을 선호할 것이다. 이 중간의 접점은 없을까? 


와인잔을 판매/영업하는 입장에서 계속 깨어지는 와인잔은 멋진 영업 대상이 될 것임에 틀림 없고, 업장의 입장에서는 합리적이지만 고객의 눈높이를 맞추려는 잔의 탐색전은 계속될 수 밖에 없다. 대신 소비자도 와인 잔으로 레스토랑의 클래스를 논하지 않는 것을 권장한다. 큰 곳은 잔 수 천 개를 써야 하는데, 막대한 비용이 들 것이고, 깨어져 나아가는 와인의 비용은 상상 이상일 것이다. 좋은 레스토랑의 잔이 어느 정도 멋진 모양을 갖추었다면 그 것 자체로 와인의 좋은 맛을 뽑아줄 것이라고 신뢰하고 맡겨보자. 브랜드보다 얼마나 그 와인에 맞는 와인잔을 제공해주느냐가 더 중요하니 말이다.


내 경우지만, 나는 잔을 하나만 쓴다. 일반 와인잔이다. 레드잔도 아니고 화이트와 레드 중간 정도 두께다. 잔은 이네딧 담에서 번들로 끼워준 막잔이라 할 수 있다. 그런데 이 잔의 성능이 참 좋다. 이 잔 하나만으로도 충분히 와인 테이스팅이 가능하고, 편안하게 와인을 즐길 수 있다. 물론 좋은 와인잔은 분명한 가치가 있다. 이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그렇다고 그 것에 너무 매몰되지는 말자. 잔이 깨어졌을 때 마음의 상실감도 어마어마할터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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