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정휘웅 Jul 21. 2020

소고기와 와인의 궁합에 대한 작은 생각

고기의 소비는 많은 환경론자, 채식주의자들로부터 비난받고 있다. 고기 1kg이 생산되기 위해서 옥수수 등 사료성 곡물이 얼마나 많이 소비되는지, 목초지가 얼마나 파괴되는지, 물은 얼마나 소비되며, 지구상의 이산화탄소를 가장 많이 배출하는 것이 자동차가 아니라 가축이라든지 여러 문제점이 지적되고 있다. 물론 고기의 소비가 지구 환경에 영향을 준다는 점을 부인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나는 고기를 좋아한다. 인간은 잡식성으로 고기와 야채, 곡물을 균형 있게 섭취해야 하며, 고기는 섭취하는 양 대비 “힘과 에너지”를 극도로 많이 준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그런 고기를 섭취하기 위한 방법은 매우 다양했는데, 지금까지 인간이 고기를 먹는 방법에서 제1번 회피 요소는 고기의 냄새를 제거하는 것이었다. 야생 동물은 여러 가지를 먹기 때문에 그 몸에서 특유의 냄새가 난다. 소위 누린내라고 하는 특유의 향미인데, 우리가 먹는 소고기와 돼지고기, 닭고기는 상대적으로 그러한 향미가 적다. 덕분에 한국에서는 이 두 가지 고기를 가장 많이 소비한다. 최근에 양고기에 대한 소비도 증가하고 있다고는 하나, 소고기나 돼지고기를 넘어설 수는 없다.     


고기의 생산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부분은 이력 추적이다. 어떤 사료를 먹고, 어떤 항생제나 예방접종을 받았는지와 같은 성장 이력에서부터, 도축과정, 그리고 냉장/냉동후 가공 유통 단계에 이르는 이력을 추적하는 것이 최근 농림축산식품부의 가장 큰 관심사이기도 하다. 특히 소고기의 경우에는 국제적인 거래가 많이 되는 육류에 해당되는데, 이러한 이력 추적은 품질에 대한 보증 측면에서 매우 중요하다고 할 수 있다. 국내에서도 낮은 등급의 수입육을 한우로 속이는 경우도 많다. 물론 한우가 맛있다는 점은 나도 인정하지만, 미국산 프라임 등급의 고기는 그 양이 많지 않을뿐더러 한우 이상의 풍미를 주는 경우가 많다.     


나는 소고기 만큼 요리사들의 영감에 영향을 많이 주는 고기는 없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 가공법은 마치 생선회를 어떻게 먹을것이냐 하는 관점으로 접근한다고 본다. 예를 들어 갓잡은 생선을 바로 회로 만들어 먹는 것은 대구의 뭉티기 같이 그 날 도축한 보랏빛이 도는 고기를 참기름장에 먹는 방법도 있다. 몇 일을 냉장 숙성하여 고기가 부드럽게 된 다음 소비하는 경우는 가장 일반적인 소비법이다. 그 다음으로는 최근에 많이 회자되고 있는 드라이 에이징인데, 어찌 보면 일본 스시에서 보듯이 숙성회를 먹는 것과 비슷한 맥락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고기를 제대로 먹는 사람들은 언제나 미디엄 레어를 먹는다. 그리고 소금간도 최소화 하고 후추는 흔적만 있다. 고기에 대해서 이렇게 장황한 설명을 한 것은, 고기(소고기)가 단순히 레드와인과 잘 맞다는 기존의 생각을 이제는 바꾸어야 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견을 내고 싶어서다. 물론 훌륭한 그랑크뤼급 보르도 레드, 그리고 피노 누아르 품종의 와인들은 고기와 멋진 궁합을 만들어낸다. 고기의 기름기는 와인의 산미와 만나고, 풍성한 과실의 느낌이 소스의 역할을 하여 환상적인 궁합을 만들어낸다.     


그러나 내가 앞서 이야기 한 것과 같이, 최근의 고기에 대한 조리 트렌드는 고기를 양념해서 먹는 경우 보다 고기 본연의 맛을 즐기는 쪽으로 상당부분 바뀌어가고 있다는 것이다. 물론 양념 불고기는 정말로 맛있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요리중 하나도 언양불고기일 정도로 양념고기가 주는 그 즐겁고도 행복한 풍미는 언제나 소울 푸드의 영역에 들어간다. 그러나 고기를 제대로 즐긴다면 마치 스시를 먹듯 식자재 본연의 맛을 느끼는 것이 최근의 주요한 추세이고, 그런 경우라면 와인의 개입 역시 최소화 되어야 한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그런 관점에서 나는 최근에 오히려 화이트 와인과 고기를 매칭하는 경우가 많다. 의외라고 생각이 들지 모르겠으나, 스테이크 하우스에서 내어놓는 A1소스 혹은 그 곳만의 특별한 레시피로 만든 스테이크 소스 혹은 바비큐 소스는 와인이 없을 경우에 고기와 가장 좋은 궁합을 낸다고 본다. 좋은 고기를 먹으면서 입 안에서는 다시 양념 불고기가 되는 셈이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궁합은 멋진 소고기 스테이크(티본 이상이면 더 좋다)에 매우 좋은 품질의 버터가 듬뿍 있는 경우다. 물론 와규와 같이 지방질이 풍부한 소고기라면 버터가 필요 없다. 미국산 육우의 경우에는 곡물성 사료를 많이 먹기 때문에 고기 자체의 풍미가 풍부하다. 그러나 기름기가 적기 때문에 버터가 곁들여지면 좋은 풍미를 준다. 여기서 결여되는 요소는 신 맛과 단 맛인데, 이 부분을 화이트 와인이 효과적으로 채워줄 수 있다. 레드와인의 강인한 과실향(블랙베리, 블루베리, 체리, 크랜베리 등)의 풍미는 스테이크 소스와 같이 입안에서 스테이크를 양념불고기로 만든다면, 화이트 와인은 마치 초밥을 먹듯 좋은 식자재 본연의 맛을 즐기는데 최상의 궁합을 준다고 판단한다.     


그렇다면 언제부터 레드는 육류, 화이트는 생선이라는 공식이 대중적으로 퍼졌을까? 개인적인 추측이기는 하지만 제임스 본드(007) 2편에서 우리 부모세대가 극장에서 본 사항이 하나의 단서를 던져준다고 본다. 극중에서 소련 스파이는 넙치요리에 키안티를 주문한다. 제임스 본드는 이 사람이 생선요리에 레드 와인을 주문하는 것을 보고 가짜라는 힌트를 얻게 된다. 당시 와인이 생소했던 한국 내에서 와인을 조금씩 알아가던 몇몇 애호가들은 이 것이 일종의 불문율로 받아들여졌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물론 이 것은 개인적인 추측이자 약간의 상상력을 덧붙인 것이라 밝힌다.     


제안하건대 이제는 고기 본연의 맛을 느끼는 자리에 간다면 과감하게 좋은 화이트를 매칭해보자. 당신 앞에 제임스 본드가 없는 이상 당신을 적국의 스파이 대하듯 이상하게 볼 사람은 없을테니 말이다. 그리고 고기 자리에서 화이트를 선택하는 사람이 있다면 다시 한 번 유심히 살펴보자. 와인을 모르는 사람이 아니고 진정한 미식가일 수 있으니 말이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