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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휘웅 Oct 11. 2021

미리미리 와인을 사 두어야 하는 이유

와인만큼 자연의 영향을 크게 받는 것도 없다.

내가 들은 바에 의하면 보험업계에는 불문율이 하나가 있다고 한다. “무조건 옛날에 가입한 상품이 낫다”이다. 처음 보험 상품을 설계할 때에는 앞으로 어떤 경우가 생길지 모르기 때문에 빈 구석이 많고, 그 덕분에 고객에게 더 유리한 항목들이 많이 있다는 것이다. 의료 실손보험만 보더라도 최근의 가입 조건이 여러 해 전에 비해서 더 까다로운 것도 바로 이런 학습 효과에 의한 것일 것이다.


규칙의 세계는 좀 다르나 내가 요즘 와인 애호가들에게 조언하고 싶은 사항은 “무조건 지금 와인을 사두는게 좋다”는 것이다. 특히 부르고뉴 와인이라면 말이다. 아마 부르고뉴 와인을 조금이라도 아는 소비자라면 하루가 다르게 가격이 오르는 부르고뉴 와인 값에 기겁했을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최근의 작황이 나빠지고 있는데다가 2021년의 경우 기록적인 냉해를 입었다. 포도가 꽃을 피워야 할 시기에 냉해를 입었으니 꽃은 떨어지고, 엄청난 생산량 감소로 이어진다. 2019년의 경우나 2020년의 경우에도 포도원들의 양조 실력이 품질은 유지해주나 자연이 주는 가혹한 현실은 생산량 감소로 이어졌다.


더군다나 2019년 부르고뉴 와인의 빈티지 점수는 대단히 좋다. 자본주의의 구조는 수요와 공급에 의해 결정된다. 공급은 줄어들었는데 품질은 좋아졌다. 그런데 2021년 작황이 매우 안좋다. 생산자 입장에서는 어떻게 생각하겠는가? 부르고뉴 와인은 안그래도 살 사람들이 줄을 섰는데, 이전 가격대로 팔 이유가 없다. 공급자 우선 위치가 강화되면서 2021년 나쁜 작황을 버텨낼 자금을 확보하려면 가격을 올릴 수 밖에 없다. 이미 생산지 현지에서 가격 상승은 엄청난 속도로 이루어지고 있다. 브랜드의 명성과는 별개로 부르고뉴 와인 가격의 상승은 불가피하다.


미국 와인의 경우도 비슷하다. 2020년 기록적인 산불을 모두 다 기억할 것이다. 그리고 그 검댕들은 포도밭들을 덮쳤다. 들리는 이야기에 의하면 몬텔레나의 경우 이미 2020년 빈티지 생산을 중단했다고 한다. 포도로 양조를 하니 쓴 맛이 나는데 아무리 노력을 해도 그 쓴 맛을 제거할 수 없었다고 한다. 그나마 살아남은 포도원들의 경우에도 수확량의 25%~50% 가량만 병입이 가능한 것으로 나타난다고 한다. Somerston 포도원은 아예 2020년 포도 수확을 포기했다고 한다.


호주 역시 마찬가지다. 2019/2020년을 연이은 연이은 기록적 산불은 뉴 사우스웨일즈 주의 많은 포도밭을 황폐화 시켰다. 포도밭 자체에 피해를 준 것은 아니지만 그 분진이 포도 껍질에 달라붙어버리고, 포도가 익기 시작할 때 그 성분들이 포도 속으로 스며들어버리면 그 물질들이 고스란히 와인에 들어간다. 즉 와인이 쓸모없게 되는 것이다. 물론 많은 노력에 의해서 이 오염된 느낌을 제거하는 기술이 있기는 하나 최상의 포도가 아니라는 점은 명백하다.


주요한 세 국가의 상황을 살펴보자면 자연재해로 인한 와인 생산의 감소 혹은 품질 저하는 소비자의 의사를 떠나서 포도원의 생존 문제와 직결되고 자연스레 가격은 오를 것이다. 가격을 올릴 수 없는 유명하지 않은 포도원들이야 가격을 올리기 어렵겠으나, 유명 포도원, 그리고 빈티지를 생산하지 않기로 한 포도원들은 그 앞 연도 혹은 다음 연도에 그 손실분을 반영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가격을 전가시킨다고 비난만 할 수 없다. 1년간 자금이 묶여버리는데 무엇으로 먹고 살겠는가? 유명한 포도원이라면 가격을 올려서라도 그 한 해는 버텨야 하는 것이다.


다행인 것은 지금 우리가 만나는 빈티지가 대부분 2017~2019 사이라는 점이다. 곧 2020 빈티지들이 우리에게 속속 도착할 것이다. 만약 당신이 프랑스 부르고뉴, 미국 나파 지역 와인을 매우 사랑한다면 무조건 지금 미리미리 구매해둘 것을 강력히 권고한다. 좀 비싸게 느껴지겠지만 앞으로 몇 해 동안 상황이 나빠지면 나빠지지 나아지지는 않을 것이다. 자연은 관대하여 다시 아름다운 빈티지를 우리에게 선사할 것이다. 그러나 그 전에, 맛있게 먹던 아름다운 피노 누아르나 나파의 멋진 카베르네 소비뇽을 추억에서만 맛보아야하는 시기가 온다면 지금이 마지막 기회다. 미리미리 축적하고, 아껴서 마셔라. 2022년 이맘때면 가격 때문에 구경만 하는 와인들로 부르고뉴 와인 진열대가 가득찰지 누가 알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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