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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휘웅 Oct 21. 2021

건강해야 와인도 즐길 수 있다

내가 와인을 처음 접하게 된 것은 2003년이다. 지금으로부터 약 18년 전이다. 30대 초반이었던, 까맣고 수북한 머리숱을 자랑하던 젊은 남자는 이제 약의 힘으로 머리털을 부여잡고, 흰 머리카락을 모두 뽑았다가는 대머리가 되어버릴 정도로 검은 머리카락 찾기가 더 어렵게 되어가고 있다. 세월은 물과 같아서 2004년부터 썼던 시음노트도 11,000개를 넘었고, 몇 년 전 기념행사는 했지만 숫자는 지인들을 불러서 놀기 위한 하나의 핑계가 되어가고 있다. 사실 1만 시음노트 행사했을 당시도 내가 아는 지인들과 모여서 시끌벅적하게 노는 것이 좋아서 기획했고 여러 수입사들의 도움과 내 비용으로 정말 즐거운 시간을 가졌었다.


그리고 몇 년이 지났다. 요즘도 내 건강은 문제 없으며, 간 수치도 멀쩡하다. 이 훌륭함은 이미 작고하신 내 아버님으로부터 물려밭은 유일한 재산이다. 사례를 하나 이야기 하자면 고등학교때 아버지가 1달 가량 매우 피곤해 하셨다. 얼굴도 평소보다는 좀 거무죽죽했다. 그 때에도 계속 술을 드셨는데 회사 직책은 술상무셨다. 당연히 매일 곤드레 만드레 해서 집으로 오셨다. 1달인가 2달 지났을 때 다시 얼굴이 평소대로 돌아오셨다. 그러고 1~2년인가 지났는데 건강검진에서 B형 간염 검사를 했더니 이미 B형 간염이 한 번 다녀갔고, 이 경우 항체가 매우 강하다는 결과를 통지받으셨다고 한다. 구국의 강철 간이셨던 것이다. 그런 이유인지 모르지만 나도 남들에 비해서는 건강한 간을 보유하고 있다. 물론 과음은 좋은 것이 아니다. 다만 나이가 들어서도 남들보다 건강한 간을 유지할 수 있다는 것은 큰 복이다.


와인 애호가에게 있어서 미각과 소화 능력, 그리고 알코올을 해독하는 간의 역량은 절대로 간과해서는 안되는 핵심 역량이다. 요즘 들어서 계속 걷기 운동을 하고 근육량을 늘리려 하는 것 역시 건강함을 유지하기 위한 핵심 활동이다. 얼마전 코골이 때문에 이비인후과 진단에서 의사의 의견은 술을 계속 마실 경우 식도의 특정 조직이 깎여나아가기 때문에 식도가 약해지고 기도에도 영향을 준다고 한다. 아무리 내 몸이 튼튼하다 해도 와인을 계속 마시게 되면 그로 인해서 잃어버리는 요소도 있는 셈이다. 이처럼 나이가 들면 들수록 신체 입장에서 우리는 잃어버리는 것이 더 많지 얻는 것은 적다. 미각도 떨어지고 후각도 떨어지며 주량도 떨어진다.


얼마전 지인과 식사 자리에서 알마비바 2005빈티지를 만나게 되었다. 그 와인은 여전한 강인함, 여전한 섬세함, 여전한 우아함으로 나를 감동시키기에 충분했다. 그 지인을 알게 된 것도 약 15년 전, 15년 동안 서로간에 알아온 것도 중요했지만, 같이 와인을 마실 수 있는 건강을 유지해왔음에 더 감사했다. 건강해야 와인을 오래오래 즐길 수 있다. 이 아름답고도 멋진 음료를 건강 문제로 즐기지 못한다면 내 셀러 안에 있는 수 백 병의 고가 와인이 무슨 소용이던가? 아끼다 X 된다는 말이 그럴 때 쓰일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나는 와인을 장기보관하지 않는다. 매우 고가 와인은 한 두 병 있지만 그 이외 와인들은 어지간하면 좋은 날 바로 까서 마신다. 지금 이 멋진 맛을 즐기지 못한다면 앞으로 무슨 일이 생길지 모르는데 얼마나 후회 되겠는가?


원 없이 마셔보고, 원 없이 즐겨보고, 지금에 집중하는 인생이야 말로 스스로 큰 깨달음을 얻는 지름길이라 생각한다. 지금 셀러를 열어보라. 당신의 집착이 곧 셀러의 크기다. 셀러가 작아서 다시 셀러를 샀다면 한 번 정도 반성해볼 필요가 있다. 와인에 나는 집착하고 있는지 아닌지 말이다. 주체적으로 와인을 구매하고 있는지, 남들의 말에 솔깃하여 세일 와인을 여러병 쟁여둔다거나 남들이 유명하니 꼭 갖고 있어야 한다고 해서 그 말만 듣고 와인을 구매한 것은 없는지 한 번 정도 생각해보아야 한다. 셀러는 가득 차 있지만 마실 와인이 없다고 생각이 든다면 당신은 무엇인가 잘못된 선택을 하고 있는 것이다.


지금 당신이 건강하다면, 그리고 셀러는 가득 찼는데 마실 와인이 없다고 생각한다면 한 번 정도 스스로 되돌아보아야 한다. 오늘 괜찮은 와인 한 병 꺼내서 혼자 혹은 가장 가까운 사람 1명과 그 와인을 열어보라. 그리고 그 와인이 보여주는 이야기를 가만히 생각해보라. 그러면 지금이 아름답고, 지금이 최고이며, 지금 이 순간이 가장 소중함을 깨닫게 될 것이다. 셀러 안에 보관된 저 어마어마한 순간의 감동을 체험하지 못하고 건강이 나빠진다면 그만큼 불행한 일은 없다. 와인만큼 “Carpe diem, 오늘을 즐겨라”라는 단어에 충실한 것이 없다. 기다림의 미학과 지금을 즐기는 마음, 내 건강 상태, 세 개의 균형점을 찾을 수 있는 사람이 진정한 와인 애호가일 것이다.


잊을만 하면 정기적으로 이렇게 장기 보관 와인 소비를 반복 독려하는 내 칼럼도 슬슬 지겨워지는 것 같으니 나도 나이가 먹었나보다. 더 참신하고 재미있는 글을 생각해야겠다. 다음은 3분기까지 통계 현황에 대한 분석 칼럼을 올릴 예정이다. 시장의 변동사항이 꽤나 크게 있었으니 기대해도 좋을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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