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정휘웅 Dec 06. 2022

기회 속 위기, 위기 속 기회

호랑이의 털 무늬는 다 알다시피 노란색과 검은색이 세로로 나 있는 모양이다. 얼룩말도 세로로 흰색과 검은색이 겹쳐 있다. 모두 이해하겠지만 만약 갈대숲 안에 호랑이가 있다고 생각해보자. 당신은 몸을 낮추고 풀숲 사이를 조용히 접근하는 호랑이를 인식할 수 있을까? 거의 뒤에 호랑이의 으르렁댐과 숨소리가 느껴질 즈음에야 모든 것이 끝났다는 것을 알 것이다. 나는 우리의 일상 역시 이렇다고 본다. 진정한 위기는 바로 옆에 있으나, 위장막에 싸여서 알 수 없다고 말이다.


2021년 와인 시장이 크게 성장하였지만 여러 외적인 요인에 의해서 시장이 조정되었고(우크라이나 전쟁에 따른 여러 파생 효과), 급격한 금리 인상에 따른 경제 충격에 이르기까지 무엇 하나 만만한 상황이 없었던 2022년이다. 호황일 때 호랑이가 바로 옆에 있었던 것이다. 많은 기회가 있을 때 나는 이전 칼럼들을 통해서 계속 경고 메시지를 보냈고 지금은 현실이 되었다.


대외적인 요인에 따라서 와인 시장이 직격탄을 맞고 있다. 특히 숍들의 매출 감소는 이미 진행되고 있는데, 이 겨울을 버티는 업장만이 따뜻한 봄을 맞이할 수 있을 것이다. 숍이나 업장 입장에서 이번 겨울은 유달리 추울 것이다. 다른 것보다 기존 보유 재고가 발목을 잡을 것이고, 그나마 숍의 고객 유인 요소가 되는 중고가 와인의 수급이 생각보다 좋지 않으며, 그나마 지탱하는 데일리 와인의 매출이 생각보다 적극적이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왜 이런 현상이 발생했을까?


소비 동향에 있어서 소비자들의 취향은 빨리 변한다. 그러나 와인으로 들어온 소비자들이 쉽게 그 바깥으로 달아날 것 같지는 않다. 다만 여기서 주목해야 하는 것은 소비자들의 주머니다. 중고가 와인을 선호하는 소비자들도 최근의 금리 인상은 직격탄이 되었다. 주식 시장도 조정 국면이 강하여 투자한 돈으로 여유자금을 만들기가 쉽지 않다. 기호식품에 해당되는 와인의 경우에 적극적으로 소비하기 위한 여유자금이 줄어들었고 한 병을 마시더라도 좋은 와인을 마시거나 그 이외에 다른 주종으로 눈을 돌리는 경우도 많기 때문이다.


일례로 최근의 위스키 소비 관련 트렌드를 꼽을 수 있다. 주변에서는 위스키 소비자가 늘어서 와인을 위협한다고까지 언급하는 경우가 있다. 그러나 통관자료 등 여러 가지 정보를 분석해보면 와인이나 다른 주류에 비해서 미미한 수준(1% 미만)에 불과하여 통계에 반영이 어려울 수준이다. 그렇다면 왜 소비자들은 위스키를 찾을까? 비슷한 특징을 가진 포트 와인의 매출 증가에서 힌트를 얻을 수 있다. 과거에도 여러번 언급 했지만 소비자들은 따기 쉽고, 열어두어도 여러 번 나눠 마실 수 있는 술을 선호하고 있다. 그 정점에 있는 것이 위스키와 포트다.


주머니 사정이 넉넉하지 않은 소비자 입장에서 1병의 가격이 좀 되더라도 나눠서 한 잔씩 마시는 술을 선호할 수밖에 없다. 1인 가구에서도 한 잔씩 마시는 술이 오히려 낫다. 가벼워진 주머니에 즐길 수 있고 소량씩 즐길 수 있기에 위스키는 좋은 대안이 된다. 포트 와인도 이 맥락에서 볼 수 있다. 위스키가 너무 알코올이 강한 반면 포트 와인은 훌륭한 아로마와 단 맛을 갖고 있다. 주정강화 와인이 많이 있기는 하나 포르투갈의 포트 와인은 가격 대비 품질로 따진다면 현재 시장에서 독보적인 위치로 보는 것이 적절할 것이다.


데일리 와인의 소비 감소는 와인 진입 소비자들의 주머니 사정이 팍팍해졌음을 방증한다. 모든 소비를 줄이면 주류 소비도 줄이는 것은 당연하다. 직격탄을 맞는 가격대는 1만원대 전후반의 와인들일 것이고 칠레 와인도 이 부분에서 상당부분 타격을 받았다고 볼 수 있다. 그만큼 경제 상황은 와인 시장에 영향을 준다. 과거 시장 규모가 1조에 미치지 못했을 때는 와인을 사서 마시는 소비자층이 마니아층에 한정되는 경향이 있어서 경기 상황이나 정치 상황(북한의 도발 등)에 영향을 거의 받지 않았다.(예외적으로 2008년 금융위기는 영향을 크게 주었다.) 그러나 지금 시장 규모가 2조이기 때문에 내적 요인보다는 외적 요인에 따른 시장 변화를 깊이 있게 바라보아야 한다.


한국은행의 기준금리가 인하되더라도 이것이 와인 시장까지 영향을 주는 데에는 상당히 오랜 시간이 걸릴 것이다. 그러나 고급 와인에 대한 수요는 상대적으로 탄탄하다는 점, 샴페인을 비롯한 스파클링 와인과 화이트 와인의 수요가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는 것은 소비자들의 특징이 근원적으로 변화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와인 시장이 대외 요인에 의해서 급격히 타격을 받고 있는 것은 사실이나 고급화 전략+합리적 가격 공급 두 가지 관점에서 소비자를 바라본다면 시장이 마냥 힘든 것은 아닐 것이다. 문제는 고급화에 필요로 하는 유명 와인의 수는 제한되어 있고 합리적 가격에 공급하려니 유통 비용과 생산지 비용의 급상승이라는 두 가지 요인이 크게 버티고 있으니 수입사나 숍, 업장 누구 하나라도 다 힘들 수밖에 없다.


쉽게 이야기 한 두 가지 전략이 가장 어려운 전략이라는 것을 모르는 바는 아니다. 나는 소비자 입장, 제삼자적 입장에서 와인 시장을 바라보지만 와인이 생업인 이들에게는 가혹한 시간이라 생각한다. 부디 지금 상황에서 더 많은 이들이 생존하고 2023년을 따스하게 맞이하기를 기원해본다.

매거진의 이전글 Winter is coming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