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어도 나에게는 생소한 용어다. 소버 큐리어스(Sober Curious). 이 용어가 익숙한 사람도 있을 것이지만, 우리말로 직역하자면 ‘냉정한 호기심’ 정도로 이야기할 수 있다. 냉정한 호기심이라니 이 역시 좀 알쏭달쏭한 표현이다. 아직까지 개념이 명확해진 것은 아니지만 ‘자신의 몸 상태에 맞도록 적절한 음주 형태를 만듦으로써, 알코올 중독과 같은 병리적 문제가 발생하지 않도록 하고 건강을 잘 유지하도록 하는 일련의 활동’으로 내 나름의 정의를 내려볼까 한다.
이 현상은 코로나19 팬데믹을 거치면서 사회 전반에 번진 홈술이나 위스키 시장의 확대, 소주 시장의 축소 등 여러 주류 시장의 트렌드를 설명하는데 유효한 것 같다. 사실 나는 젊어서 간혹 과음을 하는 경우도 많았고, 지인들과 누가 술이 더 센가 하는 것을 견주는 일들도 많았다. 1990년대 이전에는 소주도 알코올 도수 25도가 기본이었으며, 22도가 되었을 때 소주 애호가들의 볼 멘 소리가 많이 나왔을 정도다. 알코올이라 하는 음료는 중독의 기제가 상당히 강하기 때문에, 내가 내 주량을 스스로 통제하는 것이 쉽게 가능할까 하는 생각도 하게 된다. 그러나 여기에 작용하는 기제는 몇 가지로 볼 수 있는데, 개인화, 낮은 알코올 도수, 경제사정 정도가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볼 수 있다.
나도 한 달에 와인을 구매하는데 제법 많은 비용을 지출하고 있다.(가계부를 살펴보니 얼추 50만원가량 되는 것 같다) 50만원이라면 상당히 큰 금액이다. 나도 이 금액을 줄여보려 하지만 생각만큼 잘 줄여지지는 않는다. 그러나 와인을 갖고 만나거나 업장에서 사서 마시는 와인 값을 이 범주로 분류해두기에 한 달에 만남을 줄이지 않는 이상 이 예산을 줄이기란 쉽지 않은 셈이다. 만약 와인 소비 예산을 줄이려면 와인을 안마셔야 하고, 외부 모임을 함께 줄여야 한다. 그러나 사회 생활을 어느 정도 유지해야만 비즈니스 기회와 친목의 기회를 만들 수 있음은 처세의 기본이다. 따라서 이 둘의 요인은 밀접한 연관성을 띤다.
그러나 코로나19는 많은 것을 바꾸었다. 비대면이 일상이 되고, 20~30대 MZ 세대를 중심으로 집에서 자신의 것을 즐기는 경향이 보다 뚜렷해졌다. 바깥에서는 많이 마실 수 있는 술이라 하더라도 집에서는 많이 마시기가 어렵다. 게다가 집에서는 소주를 마시기가 애매하다. 막걸리나 저알콜 도수의 전통주 혹은 위스키와 같은 술로 생각을 돌릴 수 있다. 집에 있으면서도 술을 마시고 싶은 욕망은 있기에, 맥주나 위스키와 같은 주류로 선택을 바꾸게 되는데, 이는 주머니 사정과도 직결된다. 높은 알코올 도수의 술은 보관성이 매우 좋다. 집 안 어디에 두어도 문제가 없고, 상하거나 변질될 염려도 없다. 살 때 한 병의 가격이 좀 나간다 싶더라도 집에서 한 잔씩 마시기에는 이 이상 가는 것이 없는 셈이다.
집에서 생활하는 시간이 늘어날수록 오히려 단위 가격이 저렴한 술의 수요가 늘어나게 되는데, 여기는 단위 중량이 적은 술의 소비도 늘어난다는 것이다. 왜 소버 큐리어스 시장에서 막걸리의 소비가 극단적으로 늘어나지 않는가에 대한 이유도 단위 음용량이 많기 때문일 것이다. 한 번에 마셔야 하는 술의 양이 많고, 칼로리가 높다면(탄수화물과 알코올의 열량), 역시 선택 기준에서 제외될 것이다.
그러나 매일 마시던 술을 선택하는 것은 또 마음에 들지 않는다. 좀 더 색다른 술을 마셔보는 것은 일상의 즐거움이기 때문이다. 스몰 럭셔리로 대표되는 이러한 경향은 여성, MZ 연령대 소비자들에게 더 민감하게 작용한다. 건강을 생각하되, 새롭고 독특한 주류를 나만 혼자서 집에서 맛보고 싶은 경향이 강하게 작용한다고 볼 수 있다.
와인은 이런 부분에 있어서 매우 애매한 시장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고 볼수 있다. 한 번 따면 다 마시기 어렵기 때문에(집에 혼자 있다면), 작은 병을 고르려는 경향이 강해질 것이다. 그렇다고 단가가 싼 것은 아니기에 단위 중량 대비 가격을 생각한다면 위스키나 캔 형태의 막걸리 등 다른 종류의 술로 눈을 돌릴 것이다. 와인은 두 사람 이상이 모이는 자리에서 마시는 주류로써 자리잡게 될 것이며, 집에서 즐기는 주류 메뉴에서 초기 팬데믹때 누렸던 홈파티 주류로써의 이점은 많이 사라질 것이다.
소버 큐리어스 현상이 강화될수록 와인 시장에는 좋지 않은 영향을 줄 것이다. 당장의 소비자들 주류 선택에서 치명적인 영향을 주는 것은 아니겠으나, 지금 이러한 성향을 가진 주류 소비자들이 중장년층이 되었을 때 주류 시장은 상당히 큰 변화를 보여줄 것이다. 물론 이 성향이 더 크게는 맥주나 소주 시장에 영향을 강하게 미칠 것이다. 그러나 와인 시장, 나아가서 주류 전체 시장은 축소되는 방향으로 영향을 미칠 것이다. 절대적인 주류 출고량과 소비량, 인구가 줄어드는 지금 시점에서 앞으로 주류 시장은 점차 파이가 줄어들 것이며, 소비자들의 이러한 성향이 줄어드는 속도를 가속화시킬 것이다.
와인 시장의 경우에도 지금까지의 성장세가 침체기를 보여주고 있는데, 이 현상이 5천만 명의 인구가 마시는 와인의 임계치가 될지 좀 더 지켜보아야 할 일이다. 아직까지 한국 수입와인시장의 최종 성장 한계점은 2조 5천억이라는 개인적 견해는 바뀌지 않고 있다. 물론 달성 가능할지에 대해서는 분석가들의 좀 더 면밀한 데이터 분석이 필요하겠으나, 앞으로 사회 분위기나 소비자 성향은 절대로 와인에 우호적이지는 않을 것이라는 의견으로 글을 마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