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전 신문기사에 미국내 LP 판매가 CD 판매를 추월했다는 소식이 떴다. 다시 LP의 전성시대인가? 물론 그 것은 아니다. 미디어 매체(CD, LP, 카세트 테이프 등)를 이용한 음원의 전파는 디지털 음원 유통에 잠식된지 이미 오래다. 디지털이 주는 편익이 너무나 강하기에 소비자들이 CD나 LP로 음악 감상을 완전히 돌릴 수 없다. 그러나 나는 이 뉴스를 접하면서 와인도 디지털과 아날로그가 있다는 생각을 했다.
사실 디지털이라는 것은 컴퓨터가 등장하고 난 뒤에 우리에게 나타난 개념이다. 0과 1이라는 두 개의 숫자만으로 이루어진 것이 무한히 반복, 조합하여 우리가 인식할 수 있는 무엇인가로 나타난다. 그러나 이를 알게 된 것은 100년이 되지 않았다. 아날로그는 우리 세상에 이미 오래전부터 존재했다. 원론적으로 본다면 디지털은 인간이 단위를 나누어 무엇을 세고(count), 이를 글자로 표식하여 계산(digit)한다는 개념이 생긴 수 천년 전으로 되돌아갈 수 있다. 그러나 이 정도까지 돌아갈 일은 아니기에 내 개념은 단순이 디지털 저장장치와 아날로그 저장장치의 개념 정도로 분리하면 될 듯 싶다.
LP가 잘 팔리는 이유는 무엇일까? 여러 가지 있겠지만, 아무리 디지털이 발달하더라도 아직 설명하지 못하는 아날로그가 있기 때문이다. 여기서 우리는 과학의 세계를 잠시 들여다보아야 한다. 과학이란 실험과 경험적 지식에 의해 증명 가능한 형태로 자연의 현상을 설명하는 인간 일체의 학문을 대변한다. 여기에서 우리가 알아야 하는 것은 과학이 아직 자연을 모두 다 설명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와인의 세계에도 이러한 것이 존재하는데, 나는 내추럴 와인에 대한 일각의 논쟁들이 디지털과 아날로그 논쟁에 가깝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일면 오디오와 매우 비슷한 측면도 있는 것 같다. 소리를 듣고자 하는 인간의 본능은 모두 다 동일하다. 그러나 그 소리에 대한 민감도는 사람마다 다르다. 맛에 대한 민감도 역시 그러하다. 문제는 이를 정량화하기 매우 어렵다는 것이다. 소리는 그래도 큰 소리 작은 소리에 대한 민감도로 일부 정량화가 가능하나, 사람의 미각에 대한 민감도는 정량화가 거의 불가능하다. 후각 역시 마찬가지다.(후각과 미각은 하나로 연결되어 있다.) 와인의 아로마는 매우 주관적이다. 그래서 전문가들과 이야기 할 때에도 적당히 내가 느끼는 아로마를 몇 가지 이야기 하면 그들도 이에 공감을 해준다. (물론 화이트 와인에서 블랙체리향이 난다고 하면 안되겠지만 말이다)
과학이란 수치화 되고 반복 실험을 통해서 동일한 것이 재현되어야 한다. 그래서 나는 샴페인의 경우에는 좀 더 과학에 가까운 와인이라 생각한다. NV 샴페인의 경우에는 일정한 맛을 내기 위해서 여러 해의 와인을 여러 가지 블렌딩 한다. 우리가 자주 사먹는 라면의 경우에도 해마다 식자재들의 맛들이 다르기 때문에 맛을 보고 조금씩 미세 조정을 한다고 한다. 그리고 이러한 레시피들은 정교하게 관리되고 수치화 되어 있다. 물론 인간의 감각이 좀 더 들어가겠지만 많은 부분은 수치에 따라 정확하게 계량되고 배합된다.
그렇기에 우리는 NV 샴페인에서 일정한 품질을 느낄 수 있다. 예를 들어 크뤼그를 샀는데 이전의 크뤼그 맛이 나지 않는다면 어떻게 되겠는가? 이는 그들에게 재앙이 될 것이다. 와인 생산자들에게 있어서도 발효 과정에 있어서 온도는 매우 민감한 문제다. 아무리 내추럴 와인 생산자라 하더라도 온도계와 시계는 보아야 한다. 인간도 고열에 시달리면 뇌나 세포가 손상되듯, 포도도 발효나 숙성 과정에서 온도는 매우 중요하다. 자연을 따른다 하지만 인간이 이미 만들어둔 계측 수단이자 과학적인 방법을 반드시 써야 하는 것이다.
와인의 생산 과정은 자연을 과학적으로 해석하되 여기에 인간의 철학과 열정을 담아가는 하나의 조화로운 활동이다. 그렇기에 와인은 자연과학이다. 자연이 과학이며 과학 그 자체가 자연에 더 가까이 다가가기 위한 일련의 활동이다. 따라서 내추럴 와인도 수치화 되지 않을 뿐, 정교한 과학의 과정이라 보아야 할 것이다. 경험적 지식이 쌓여서 하나의 온전한 와인이 되어가며 그 것을 증명해 가는 과정이니, 실험의 과정이 일부 더디고 힘들 뿐, 과학에서 멀리 떨어진 것은 아니라 보아야 하겠다.
그렇게 보고 나니 어느 와인은 내추럴이다 어느 와인은 아니다 하는 구분 자체가 엄밀히 따지면 큰 의미는 없는 것 같다. 내추럴 와인이 자신을 설명하는 그 과정 자체에는 많은 과학적 이론, 생물학적 이론이 뒷받침되어야 하고 자연에 대한 이해 역시 병행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내가 보았을 때 모든 와인의 생산 과정은 주관적이기는 하나 과학적 증명을 해 나아가는 행동들이라는 점을 지적하며 글을 마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