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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휘웅 Nov 10. 2017

소비자 주권시대의 명암

모바일 앱으로 와인 정보를 쉽게 선택하고 볼 수 있게 되었다.


요즘 와인 관련 모바일 앱을 사용하는 이들이 부쩍 늘어났다. 그 일등공신은 이미지 인식 기술인데, 이를 인공지능으로 잘 못 알고 있는 사람도 있다. 오히려 이미지 인식은 기계학습 및 검색의 범주로 분류한다. 이미지의 여러 부분을 수치로 변환한 뒤, 이와 가장 유사한 값을 찾아내고 그것에 연결된 문자 정보를 제공한다. 학습하는 이미지의 수가 많아질수록 성능이 좋아지고, 최근에는 이 방법을 이용하여 문서 분석이나 단어 간 유사도에도 활용한다. (말이 좀 어렵게 느껴지면 이 문단은 넘어가도 무방하다.)


과거에 와인 라벨의 검색이 어려웠던 이유는 학습에 필요한 라벨 정보가 부족할 뿐만 아니라 그 정보를 분석한 뒤에도 연결된 정보의 정확도가 떨어졌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것이 2000년대 후반 소개되었던 스누스 닷컴(snooth.com)이다. 사용자들의 참여에 의해 사진도 올릴 수 있고 관련 라이브러리를 구성할 수 있게 되어 있었으나 중복자료가 많고 정확도가 떨어져 사용자들의 외면을 받았다. 지금에 와서는 많은 오류가 수정되어서 안정화되었으나 이제는 그 중심축을 비비노(Vivino)라는 앱이 주도권을 쥐고 있다.


이 앱들은 소비자들이 직접 와인 정보를 제공하고 평가한다. 검색에서는 이를 협업 필터링(Collaborative Filtering)이라고 하는 전문 용어를 쓰는데, 간단하게 이야기하자면 여러 사람이 좋은 평가 혹은 가치를 부여한 콘텐츠가 더 좋다는 뜻이다. 사실 요즘 우리가 영화에 대해 평점을 여럿 매긴 뒤에 이 평점 기준으로 영화가 나열되는 것도 이 협업 필터링의 산물이라는 것이다. 와인은 여기에 가격이라는 요소가 다시 반영된다. 누가 얼마에 샀다는 정보가 기록되어 다시 평균 가격이 매겨진다. 가격의 협업 필터링이 이루어지는 셈이다.


가격이나 점수는 이러한 사용자들의 협업에 의한 최종 결과적인 현상이다. 그리고 이러한 선택 방법은 꽤나 효과적이었으며 지금도 유효하고 미래에도 상당히 효과적일 것이다. 얼마 전 모 기사에서 보았듯이 이런 상품 선택 프로세스는 과거 생산자 중심에서 점차 평론가를 지나 소비자 단계로 넘어가고 있다. 아이러니하게도 과거에 비해 유명 평론가의 점수로 인해 소비자들의 선택이 극적으로 변하는 일은 많지 않으며, 오히려 높은 점수를 받은 와인들은 시장에서 가격이 상승해버리기에 소비자들은 가격-점수 사이의 균형감을 찾으려 해서 외면받을 수밖에 없다. 파커 99점에 사람들은 놀라면서도 그 옆의 가격표를 보고는 다시 한번 절망하는 것이 이런 괴리감의 출발점이라 할 수 있다.


내 생각에 앞으로 이러한 현상은 가속화될 것이다. 그렇다면 이러한 현상이 소비자들의 와인 선택이나 상품의 다양성에는 어떤 영향을 미치게 될 것인가? 긍정적인 면은 이미 신문이나 여러 지면에서 취급하고 있으니 언급하지 않겠다. 그 대신 나는 부정적인 측면과 함께 수입 와인업계는 어떤 준비를 해야 하는가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싶다. 현재 국내 주류 관련 법제도, 세금 구조, 유통구조의 문제점이 해소되지 않은 상태에서 이러한 앱이 계속 보급된다면 오히려 소비시장에 왜곡을 가지고 올 확률이 높다고 생각한다. 다음과 같은 시나리오를 생각해보자. 해외 평균가가 1만 원에 나왔는데 국내에서 2만 원에 판매되는 와인이 해외 소비자 평점으로 5점 만점에 4.5점 넘게 받았다고 생각해보자. 국내 수입자는 이 와인에 대해서 애착도 있을 것이지만 소비자들은 이 와인이 국내에서 폭리를 취하고 있다는 압박을 받을 수밖에 없다. 고객들이 요구하게 되면 가격은 내려갈 수밖에 없다. 그리고 국내 앱의 성능이 떨어질 경우 외국 앱을 찾게 되고 국내 앱과 해외 앱의 가격 차이만 눈으로 보여주는 결과를 낳게 될 것이다. 소비자의 눈은 해외의 저렴한 가격에 맞추어지게 될 것이다.


그러나 현실은 녹록지 않다. 수입사는 지속적인 비용 상승 압박을 받을 수밖에 없다. 운송비용, 현지 와인 조달비용, 통관비용, 식검비용 등 각각의 비용은 생각보다 빠른 속도로 인상되고 있다. 특히 준조세 성격이 강한 식검비용, 불시 점검에 따른 검체 검사비용 등은 과거에는 무시할 수준이었으나 이제 더는 무시하지 못할 수준이라고 많은 수입사들이 토로하고 있다. 그러나 와인 앱들이 제시하는 해외 가격과의 갭 차이 때문에 가격을 올리는 것은 언감생심일 것이다. 결론적으로 대량으로 물량을 가지고 와서 식검 비용이 녹아날 수 있는 저가의 와인, 혹은 저렴한 품질이라 하더라도 일단 팔릴 수 있는 와인이 점차 늘어나게 될 것이다.


처음에는 싸게 와인을 마시게 될 수 있고 수입사들이 와인을 그 가격에 맞추려 노력을 하겠지만 수익성이 악화되면 수입사들이 더는 이 와인을 수입하지 않을 확률이 높다. 가지고 온다 하더라도 앱에서 나오는 해외 가격을 보면 더는 손이 가지 않을 것이고 판매성이 떨어지는 와인을 적자를 각오하고 수입할 수입사는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해외처럼 와인 유통이 많고 일상에 주력으로 소비하는 주종인 경우에는 저러한 앱이 합리적 소비의 핵심 요소로 자리 잡을 것이다. 그러나 7~8천억 수준의 작은 규모밖에 되지 않는 한국 와인시장에서 해외 와인 가격과 해외 평가체계가 그대로 소비자들에게 가감 없이 전달되면 단기적으로는 소비자들에게 이익이 될지 모르나 중장기적으로는 소비자들의 와인 선택 범위가 좁아질 것이라는 생각을 가져본다.


시장에서 비싸고 낮은 품질의 제품은 경쟁에서 밀릴 수밖에 없다. 물론 어떤 수입사는 아직도 엄청난 폭리를 취하고 있을지 모른다. 실제 적정 소비자가 2만 원 와인을 10만 원 써 놓고 80% 세일 2만 원이라 하는 수입사나 숍도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대부분의 환경이 투명해지고 유통 채널이 다양화된 지금 시점에서 와인 가격의 거품은 상당히 걷힌 것이 사실이다. 내가 알고 있는 주변의 많은 수입사들은 수입 과정에 발생한 비용을 정직하게 반영하고 이를 수입된 수량에 나누어 수입 원가와 출고가를 책정한다. 해외 가격과 국내 가격이 10배 차이가 난다면 문제가 있겠으나 그렇지 않다면 그 가격에 대해서 그럴 타당한 이유가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는 것은 어떨까 싶다.


앱에 의존하더라도 해외 가격에 경도되지 말고 지금 앞에 있는 와인에 대한 신뢰, 그리고 가격에 대한 신뢰를 어느 정도 가져주는 것이 와인 애호가로서의 마음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물론 해외에서 추산하는 원화 환산 가격이 1만 원인데, 국내 소비자 가격이 20만 원이라 쓰여 있으면 의심해야겠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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