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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휘웅 Nov 27. 2017

레스토랑 와인 리스트 만들기(1)

2000년대 중반 모 한식당의 와인 리스트 작업을 몇 년간 함께 한 적이 있다. 당시에 와인 리스트를 만드는 작업은 꽤나 시간이 걸리는 작업이었는데, 수입사별로 와인 리스트를 받고 여기에서 다시 수급현황과 공급 가격, 판매 가능성, 시즌 메뉴, 음식과의 매칭, 재고 관리 편의성 등을 고려해야 하는데 여간 어려운 작업이 아니다. 간혹 레스토랑을 처음 연다는 이들이 와인 리스트로 고민하는 것을 많이 보는데 최근에는 이런 리스트를 함께 고민해주는 서비스도 등장했으니 고려해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그러나 와인 한두 개 선정하기 위해 큰 비용을 들일 수도 없는 일이니, 내 경험을 토대로 몇 가지 중요하게 살펴야 할 사항을 이야기해 본다. 이번 글에서는 유의해야 할 사항을 중심으로 쓰고 다음 글에서는 잘 구성하고 관리하는 몇 가지 팁에 대해서 소개할까 한다.  


1. 배달과 수급 안정성 


레스토랑의 리스트는 쉽게 바꿀 수 없다. 그리고 배달이 매우 중요하다. 어디서 한 번 먹어보았더니 맛있더라 하는 것만으로 해결되지 않는다. 수입사에 따라서는 규모가 작아서 6병 들이 묶음으로 주문을 해야 하는 경우도 있고 어떤 곳은 대리점을 통하라고 알려오는 경우도 많다. 배달 문제는 주세법과도 밀접한 관련성이 있어서 신중하게 선정해야 한다. 특히 처음 레스토랑이나 업장을 개업하는 경우에는 리스트 선정, 초기 재고 입고 및 검수, 재고 관리방법, 재고 보관방법 등을 면밀히 검토해야 한다. 만약 주인이 와인을 잘 알아서 와인 리스트를 마음대로 구성했다고 가정하자. 10개의 와인을 선정했는데 공교롭게도 10개 와인이 모두 다른 수입사이거나 해당 대리점이 해당 와인을 갖고 있지 않는 경우는 어떻게 할 것인가? 간혹 대리점 거래를 하는 곳이라면 대리점에 해당 와인의 재고 보관을 요청해야 하는데, 대리점은 해당 와인을 다시 박스 단위로 주문받아 재고로 보유해야 하는 경우도 있기 때문에 대리점에 와인을 요청하는 것도 단순한 문제는 아니다. 결론적으로 보아서 와인 리스트 구성에 있어서 1번 고려 요소는 배달과 수급 안정성이 핵심이라 할 수 있다. 


여기서 와인의 수급 안정성은 배달만큼 매우 중요하다. 1~2병 소량 수입되는 와인은 금방 매진되어 리스트에 X 표시를 해야 할 수 있다. 처음에 깔끔하게 인쇄를 했는데 몇 병 되지 않는 와인 때문에 리스트에 X 표시를 하려면 마음이 아플 것이다. 그리고 고객들 역시 와인을 잘 아는 사람이 왔을 때 해당 와인을 시켰는데 뒤늦게 와서 해당 와인이 없다고 하면 레스토랑의 이미지만 나빠질 수 있다. 언제든 수급을 받을 수 있는 유통 채널과 안정적 물량 확보가 중요하다. 특히 수도권이 아닌 경우, 특히 제주와 같이 거리상으로 먼 경우에는 이러한 유통 채널 확보가 더욱 어렵기 때문에 리스트 선정에는 더욱 신중을 기해야 한다.  


2. 서빙 담당자의 전문성 


일반 삼겹살 식당 가면 우리는 이렇게 술을 주문한다. “카스요, 하이트요, 처음처럼요, 참이슬요” 등 일부 고유명사를 지칭해서 주문한다. 이 것이 가능한 것은 서빙 담당자들이 이 문화를 경험하였을 뿐만 아니라 한글이나 쉬운 용어로 쉽게 인지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실수를 할 경우에도 쉽게 복기가 가능하다. 그러나 와인은 다르다. 만약 일반 식당의 소주 맥주 정도 지식을 가진 사람들이 서빙을 해야 하는데 와인 리스트가 100개가 넘는다면 어떻게 될까? 우선 고객이 답답하다. 자신이 이야기하는 와인을 담당자가 발음부터 알아듣지 못한다. 다음으로는 담당자에 의한 실수 확률이 높아질 수 있다. 병당 단가가 아무리 싸도 소주의 몇 곱절은 되는데 다루는데 실수를 하여 손실로 이어질 수도 있다. 아주 단가가 높은 경우에는 더욱 영향이 클 것이다. 


자금이 넉넉하여 전문 소믈리에를 고용할 수 있다면 이러한 문제점은 당연히 발생하지 않는다. 그러나 이러한 관리체계가 잡혀 있지 않는 곳에서 그저 단순히 와인을 많이 보관만 한다면 이는 적절하지 않다. 특히 고가의 와인은 셀러 관리 등도 중요한데, 주인이 매일 그 자리를 지키지 않는 이상 도난의 위험도 감수해야 한다. 따라서 와인 리스트만 중요한 것이 아니라 이를 관리하고 통제하며 서빙하는 사람이 와인 리스트만큼 중요함을 인식해야 한다.  


3. 재고 부담 


일반적으로 와인 수입사를 하게 되면 물품 대금으로 수 천 만원에서 수 억 원의 와인 대금을 묶어둔 채로 사업을 시작한다. 해당 와인이 다 팔리면 행복하겠으나 이 것은 이상적인 경우이며 이 물품이 묶인 상태로 움직이게 된다. 레스토랑도 마찬가지로 이 재고가 묶여있는 상태가 디는데, 이 회전율이 매우 중요하다. 데일리 와인은 어떻게든 소진시킬 수 있으나 고가가 초고가 와인은 1달, 혹은 1년 이상의 시간이 필요할 수도 있다. 이 재고는 고스란히 레스토랑의 자금 압박으로 다가온다. 처음에는 무턱대고 내가 좋은 와인 리스트를 가지고 있으니 누구나 호응해줄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 그러나 도입 단가가 한 병에 수 만 원에서 수 십만 원 하는 와인을 여러 병 구비하다 보면 적게는 수백만 원에서 많게는 수 천만 원까지 자금이 묶일 수밖에 없다. 월말이 되면 그간 있었던 매출에 대한 결제를 해주어야 하는데 그때 되어서야 재고가 그냥 재고가 아니라는 것과 자금의 융통이 얼마나 중요한 것임을 뼈저리게 느끼게 된다. 그 고통을 체험하기 전에 너무 처음 리스트에 욕심내지 말고 고객의 눈높이와 자금 사정을 적절히 고려하여 타협점을 찾아야 한다.  


4. 레스토랑 특성과의 매칭 


만약 일식집인데 와인 리스트가 모두 호주산 쉬라즈나 나파 카베르네 소비뇽으로 구성되어 있다면? 진한 소스가 얹히는 장어구이 덮밥집이라면 괜찮으나 그 이외라면 아연실색할 것이다. 레스토랑 음식에 맞는 와인 리스트는 업장의 자랑이자 마케팅 요소로 쓸 수 있다. 대표적인 매칭으로는 샤블리와 굴의 마리아주다. 사실 삼겹살에 와인도 잘 맞지만 소주 이상 가는 것을 찾을 수 없다. 중식에는 게부르츠트라미너나 리슬링도 잘 맞지만 중국 백주 이상 가는 것을 찾기 어렵다. 각각의 요리에는 자신에 맞는 술이 따로 있다. 레스토랑의 특징을 생각하고 이에 맞는 와인 리스트를 선별하는 과정 역시 중요하다. 아무리 내가 특정 지역의 와인을 좋아한다 하더라도 레스토랑을 찾는 사람은 다양한 취향을 가진 고객이며, 고객의 요구에 맞추는 생각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간략하게 레스토랑의 와인 리스트를 만들 때 고려해야 할 사항을 기술해 보았다. 다음 칼럼에서는 어떻게 하면 잘 구성할 수 있을지에 대한 몇 가지 팁을 기술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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