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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휘웅 Apr 29. 2018

위험한 조급증

인간은 경험의 동물이다. 그래서 처음 경험에는 매우 조심스럽게 접근하게 된다. 동물적으로는 동정을 떼는 경험으로부터 해서, 사회생활을 한다면 첫 음주, 그리고 끊기가 힘든 흡연 등등이 있을 것이다. 한 번 경험을 하고 난 뒤에는 이 경험이 중독이나 과도함으로 가느냐 아니냐의 관점으로 생각할 수 있다. 대개 이 경험은 한 번 지나고 난 뒤에는 호기심이 많이 줄어든다. 술이나 담배도 한 번 경험하고 나면 이런 신세계가 있었는지 하는 반응과 내 입에는 도저히 맞지 않으니 절대 먹을 수 없다 하는 것으로 나뉠 것이다. 나의 경우 술은 달콤했지만 담배는 도저히 내 취향이 아니었다. 그래서 지금까지 내가 담배를 태운 수는 아마도 10개비 정도, 그것도 주변에서 분위기가 그러할 때 예의상 취했던 것 같다. 그 마저도 마지막 경험이 6~7년 전인 것 같으니, 담배는 내 취향이 아닌 것 같다.


그런데 완벽하게 언제나 새로움으로 둔갑하여 나를 괴롭히는 존재가 있으니 다들 알겠지만 바로 와인이다. 와인은 빈티지에 따라서, 그리고 숙성된 기간에 따라서, 같은 와인이라 하더라도 품종에 따라서 매번 새로운 모습을 보여준다. 이 변화하는 맛에 한 번 길들여지면 도무지 헤어날 방법이 없다. 새로운 빈티지의 와인을 접하게 되면 그 맛이 궁금하여 계속 다른 빈티지를 기웃거리게 되고, 한 해 두면 그다음 해 어떻게 될지 모르기에 계속 그 와인을 찾게 된다. 저렴한 와인이라도 이런 변화는 꽤나 빠르게 일어나서 수입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와인의 맛을 본 뒤, 1년이나 짧게는 6개월 지나서 맛을 보면 전혀 생각하지 못한 면모를 발견할 때가 제법 많다. 최근에도 한 소비뇽 블랑 와인을 마셨는데, 이전의 강한 알코올 터치가 대부분 사라지고 매우 유려하면서도 안정적인 질감을 선사하고 있어 매우 놀랐던 기억이 난다. 무려 10년이나 흘렀는데도 불구하고 말이다. 이러한 변화의 모습을 살피게 되면 저렴한 와인이든 고가의 와인이든 언제나 즐거운 와인 생활을 이어 나아갈 수 있다.


그러나 이 변화에 대한 호기심이 과하게 되면 점차로 변화에 대한 집착으로 이어지는 경우를 종종 보게 된다. 불가(佛家)에서는 이 집착을 가장 위험한 것으로 보고 있다. 집착은 몇 가지로 나타날 수 있다고 생각하는데, 첫째는 어떤 사물/존재에게 완전히 목이 메어서 내 모든 것을 물불 가리지 않고 내어놓게 되는 것이 있을 것이며(모 전직 대통령의 아들은 한 여인을 위해 아버지 전 재산의 수 백 배나 되는 시계도 샀다 하지 않던가), 둘째는 아끼고 또 아끼나 그것을 소진해버리고자 하는 강렬한 집착이 있을 것이다. 전자의 경우와 후자의 경우 와인에서 모두 다 볼 수 있는데, 내가 좋아하는 와인의 빈티지들을 모으다가 빠진 빈티지를 찾지 못하여 컬렉션의 목표를 위해 와인을 구매하는 경우도 볼 수 있을 것이다. 후자의 경우에는 이렇게 모은 와인에 집착하여 그 와인의 맛을 보려 강한 유혹에 시달리다 결국 집착하고, 모든 환경을 만들기 위해 불필요한 준비나 기획을 한다거나, 필요하지 않은 시점에 와인을 개봉하게 되는 경우를 들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생각은 와인의 가격이 높을수록, 희소가치가 있을수록 더 많이 발생한다. 그리고 이런 것은 마케팅에 의해서 더 유도되는 측면도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예를 들어 평론가들이 시음 노트에 “이 와인을 지금 마실 수는 있으나, 시음 적기는 20년이 지나야 할 것이다”라고 하든가 “이 와인은 네 손자에게나 물려줘라. 그때 되어야 마실만한 상태가 될 것이니”하는 언급을 보게 되면 도무지 궁금해서 못 참게 되는 경우도 많이 발생할 것이다. 그러나 잘 생각해보자. 평론가들 역시 경험에 의해서 와인을 평가한다 하더라도 20년의 간극을 두고 테이스팅을 해본 경험은 많지 않을 것이며 이것이 모든 와인의 평가에 일정한 기준으로 자리 잡을 수도 없을 것이다. 만약 유명한 평론가가 퐁테 카네 2000을 15년 전에 테이스팅 한 뒤 이 와인의 시음 적기가 20년 뒤라고 했다면 이 와인을 지금 까야할까 말아야 할까? 만약 와인을 개봉하지 못하고 지금 번뇌하고 있다면 지금 나는 15년 전 평론가가 시음 노트에 던져둔 한 마디의 유령에 사로잡혀 지금을 제대로 바라보지 못하고 있을 것이다. 그때의 글이나 내용은 참조만 할 뿐 지금 현재가 중요하다.


우리가 물건을 사게 되는 경우, 충동구매를 하는 경우를 잘 살펴보면 두 단어에 조종당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하나는 “매진 임박”이고 하나는 “한정수량”, 마지막은 “특가 세일”이다. 좋은 와인에는 시음 적기가 언제다, 숙성을 더 시켜라 하는 코멘트들이 이런 구매를 부추기는 하나의 요인이 될 수 있다. 그러나 그 무엇도 확정된 것은 없다. 지금 현재 와인이 상했을지, 시음 적기를 지나 꺾였을지, 그 누구도 모른다. 평론가의 말만 믿고 그 와인을 셀러에 재워두고, 언제 깔지 조바심을 내고 그에 집착할 것인가? 그러기보다는 지금 그 와인이 궁금하면 집착하지 말고 미련 없이 꺼내어 맛보는 게 어떨까 싶다. 불가에서 말하는 다음의 문구가 와인의 시음과 집착에 대한 미련을 버리게 하는 가장 좋은 경구가 되지 않을까 싶다. 종교적 색채가 약한 경구이니 살짝 인용하며 글을 마무리한다.


과거를 좇지 말고 아직 오지 않은 미래를 염려하지 말라.
과거는 이미 지나갔고 미래는 아직 오지 않은 것.
오로지 현재 일어난 것들을 관찰하라.
어떤 것에도 흔들리지 말고 그것을 추구하고 실천하라.
-중아함경(中阿含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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