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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휘웅 Jan 20. 2019

와인의 구조감, 보디감, 밀도감

일련의 와인을 평가하는 과정에서 나는 간혹 점수제에 대해서 궁금증을 갖는다. 특히 보디감이라는 부분에서 좀 혼란스러워 하는데 가령 보디감 1~5점 이렇게 되어 있다면 어떤 기준으로 평가해야 할까? 만약 이 기준대로라면 소비뇽 블랑은 0점이 되어야 할 것이고 호주의 진한 쉬라즈는 5점을 받아야 할 것이다. 즉, 종류와 품종적 특성을 따져야 하는 관점에서 보디감이라는 것은 그렇게 좋은 평가 기준이 아니라는 것이다. 나는 개인적으로 와인을 바라볼 때 이를 좀 더 세분화 해서 구조감, 보디감, 밀도감 관점에서 나누어서 접근하는데 다음과 같은 주관적이고 정성적인 기준으로 바라본다.(즉, 공식적인 것은 아니다.)     




구조감

포도 알갱이 하나를 포도송이에서 뜯어낸다고 생각을 해 보자. 그리고 그 연결되었던 부분을 생각해보자. 집에서 포도를 먹다 보면 그 뜯어진 곳이 매끈한 포도도 있고, 껍질이 진무른 것도 있고 간혹 이물질이 묻어 있는 것도 있다. 이 부위가 매끈하게 뜯어지는 포도는 탱글탱글하며 씹을 때에도 껍질 부위가 단단하니 지탱한다. 이런 외연적인 특징을 구조감이 전해준다. 와인의 구조감을 이야기 할 때 혹자는 품종간의 밸런스, 시음 적기의 안정감 등도 이야기 하나 나는 그 포도가 얼마나 온전하게 수확되고 관리가 되었는지에 따라서 보는 측면이 있다.      


보디감

말 그대로 묵직한 느낌이다. 입 안을 가득 채우는 느낌인데 주로 카베르네 소비뇽 포도에서 많이 관찰될 수 있다. 간단하게 설명하자면 두껍냐 누껍지 않냐 하는 느낌이다. 소비뇽 블랑의 경우에는 극도로 얇다. 너무나 하늘거린다. 카베르네 소비뇽이나 호주의 진한 쉬라즈(요즘은 많지 않지만)의 경우 엄청나게 보디감이 강하다. 그런데 이 보디감이 절대적인 평가 기준이 되기에는 좀 무리가 있다. 이 기준대로라면 앞서 이야기 한 바와 같이, 소비뇽 블랑의 점수는 형편없이 낮을 수 있기 때문이다.     


밀도감

꽤 어려운 개념이기는 하나 보디감이 있다고 밀도감이 있는 것은 아니다. 마치 물 위에 보디감이라는 강철배가 떠있는데 그 아래는 공허하고 싱거운 느낌을 주는 경우를 들 수 있다. 이 밀도감을 비교하는 좋은 방법은 고가 와인과 저가 와인을 비교해서 시음해보는 것이다. 같은 포도원은 비슷한 특징을 지니기 때문에 다른 포도원의 것으로 나누어서 해 본다. 밀도감이 너무 강하면 와인을 이해하기가 어렵다. 일반적으로 어린 와인에서도 많이 드러난다. 밀도감이 과하면 아로마의 힘이 약하다. 그렇기 때문에 구조감이 좋은 화이트가 밀도감마저 좋아버리면 아로마를 피우기 위해서 고생을 많이 해야 한다. 온도를 좀 올리거나 브리딩도 많이 해야 한다. 트레이드 오프가 있는 개념이 밀도감이다.      


이 세 개념으로 몇몇 포도품종이나 와인을 설명한다면 다음과 같을 것이다. 대표적인 것이 비욘디 산띠 같은 클래식 스타일의 브루넬로 디 몬탈치노(Brunello di Montalcino)를 들 수 있다. 비욘디 산띠(Biondi Santi)의 경우 색상은 희멀건 투명한 빛에 가깝다고 할 정도로 보는 사람을 당황하게 만든다. 원래 브루넬로 디 몬탈치노는 색이 그렇다. 아로마는 섬세하다. 그러나 입 안에 넣는 순간 미디엄 라이트 보디감에도 불구하고 놀라운 구조감과 밀도감을 보여준다. 밀도감이 강하다 보니 브리딩이나 디켄팅을 6시간 이상 해 주어야 아로마가 피어난다. 그러나 보디감은 미디엄 라이트다. 시간이 지날수록 아름다운 아로마가 피어날 것이다.     


구조감을 잘 보기 위해서는 잘 만든 리슬링이 좋다. 분명히 가녀리고 알콜도 세지 않는데 숙성은 20~30년은 우습게 넘기는 리슬링이 부지기수다. 그 와인들은 분명히 생동감이 있다. 그러나 보디감은 매우 낮다. 밀도감이 있는 것도 아니다. 그래서 아로마는 화사하고 기분이 좋다. 부족한 산도 부분은 당도가 어느 정도 지탱한다.(물론 잘 만든 포도원은 대단한 산도와 당도의 밸런스를 보여준다.) 특급 소비뇽 블랑도 구조감을 이해하기에 도움이 된다. 특히 후리울리 지역의 소비뇽 블랑을 마셔보면 정말로 깊이 있는 캐릭터를 이해하는데 도움이 된다. 오래저 수입 되었던 론코 델 녜미즈(Ronco del Gnemiz)와 같은 부띠끄 포도원들의 와인들이 이런 면을 잘 보여준다.     


오래전에 과일 폭탄이라는 개념의 와인들이 많았다. 이 때문에 평론가들 사이에도 말들이 많았다. 이 와인들은 보디감과 밀도감이 매우 강해서 그 밀도감을 비집고 터져나오는 과실의 느낌을 많이 주었다. 주로 미국의 컬트 와인을 시도하는 신생 포도원들, 그리고 호주에서 뜨거운 태양 아래 최대의 응집도를 끌어내는 포도원들이었다. 그러나 그 와인들의 구조감은 많이 약한 경우가 많았다. 최근에도 고가의 와인들 중에는 보디감과 밀도감은 있으나 구조감은 많이 부족한 와인들이 많다. 이런 와인들은 브리딩 후에 뭔가 보여줄 것 같은 느낌을 주지만 시간이 지나면 거기서 끝나는 경우가 많다. 구조감이 약할 때에는 복합미가 떨어질 때도 많다. 그래서 브리딩을 해도 계속 같은 향만 난다. 좋은 고급와인은 브리딩 할수록 계속 변화무쌍한 모습을 보여주는데 그 만큼 구조에 여러 층위(layer)가 있어서 다양한 모습을 보여준다.     


마지막으로 최근에 많이 각광받고 있는 내추럴의 경우에는 보디감과 밀도감은 많이 떨어질 수 밖에 없다. 인위적이지 않으니 말이다. 그러나 포도 자체의 자생력이 있어서 구조감은 상당히 좋다. 그래서 입 안에 들어가면 편안한 느낌을 준다. 어느 한 쪽을 강화하기 위한 인위적 노력이 잘 안느껴진다. 그래야 정상일 것이다.     


종합해서 살펴본다면 저 각각의 요인에 다시 산도, 당도, 타닌, 아로마, 피니시라는 요인들이 엮여서 다중 복합 방정식을 만들어내는 것 같다. 밀도감 있는 타닌와 구조감 있는 타닌은 다르며, 밀도감 있는 산도와 보디감 있는 산도, 구조감 있는 산도 역시 달라야 할 것이다. 이 각각의 요소는 서로간에 영향을 주어 매우 묘한 느낌의 경험을 와인 애호가들에게 선사한다고 생각한다. 오늘부터 와인을 마실 때 이러한 느낌을 조금씩 느껴본다면 좀 더 와인 생활이 즐거워지지 않을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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