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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휘웅 Feb 27. 2019

내추럴 와인이 시장에
잘 정착하려면

        

얼마 전 와인을 잘 모르는 고교동창과 와인을 마실 일이 있었는데 문득 내게 “(부산 말투를 상기하며)휘웅아, 혹시 니 내추럴 와인이라고 들어봤나? 사람들이 이야기 마이 하던데”하고 질문을 하는 것이었다. 순간 최근에 내추럴 와인이 대중적으로도 많은 인지도가 생기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아마도 와인을 잘 모르는 소비자 입장에서는 ‘건강한’이라는 이미지가 잘 안착되고 있는 경우라고 볼 수 있다. 일련의 신문기사는 지금도 연이어 나오고 있다.



와인이십일닷컴의 칼럼에서 내추럴 와인(Natural wine)에 대한 칼럼을 찾아보면 2013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내추럴 와인(Natural Wine) 움직임?, 엄경자, https://bit.ly/2TQzNV5) 이 당시에 국내에 내추럴 와인에 대해서 아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고 해도 무방할 것이다. 당시 나도 크게 주목하지는 않았다. 그러다가 나에게도 기회가 왔는데 실질적으로 내추럴 와인을 접한 것은 2014년 4월이다. 이름은 기억이 나지 않으나 프랑스에서 맛보았던 내추럴 와인은 진하면서도 풍부한 과실의 풍미, 딸기, 체리 등의 캐릭터가 명징하게 올라오며 각인이 남는 인상적인 느낌을 주기에 충분했다. 당시 프랑스에서도 서서히 각광 받고 있으며 전문 와인바도 생기고 있다는 것이었다. 물론 당시 구글 검색을 해 보아도 많은 곳이 나오지는 않았으며 생산자들은 자신의 와인 스타일을 만들기에도 버거워 온라인 홍보 등은 거의 하지 못하고 있던 때라고 볼 수 있다.      


    

내가 어느 정도 범위를 갖고 테이스팅을 할 수 있는 기회는 2015년 여름에 왔다. 대구에서 한 애호가가 와인을 좋아하고, 특정 수입사에 소량 수입을 위탁한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이 와인(라지오 지역의 괴짜 생산자 Le Coste다)에 대한 시음 기회가 있어서 서울 모처에서 시음회를 연다는 것이었는데 당시 나의 경험은 생소하면서도 재미있었다. 그 이후 이것이 하나의 트렌드가 될 것이라 생각을 했고 칼럼의 한 꼭지를 빌어 이야기는 했으나 내 관심에서는 멀어졌다. 내추럴 와인이 훌륭하고 성장 가능성은 있지만, 메이저가 되기는 어렵고(생산량이나 품질 제어가 매우 어렵기도 한 문제도 있기 때문이리라), 전체 와인 데이터 파악도 힘든데 내추럴까지 보기는 시간적 여유도 없었기 때문이다.       

  

이런 와중에 초기의 몇몇 내추럴 와인 수입자들은 엄청난 고생을 했다.(지금도 상황이 많이 개선되지는 않았다) 소위 “팔 곳이 없다”와 “소비자에게 어떻게 접근할 것인가”하는 이야기였다. 초기에 소량 위탁 수입을 할 때는 판로가 있었으니 문제가 없었으나 직접 팔기 위해서는 많은 고생과 자금이 정체되는 어려움을 겪었다고들 한다. 그랬던 내추럴 와인이 이제는 애호가 시장뿐만 아니라 일반 소비자들에게도 조용하지만 주목할만한 인지도로 알려지고 있다. 어쩌면 한국 시장에 가장 맞는 스타일의 와인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가져본다. 소량 수입에 나만의 개성을 보여줄 수 있는 와인이라면 그 가치는 충분할 것이다.          


다만 아직까지 출발은 작으며, 내추럴 와인이 시장에 안착되기 위해서는 소비자 이해, 쉬운 접근 및 수급, 합리적 가격 세 가지 관점에서 문제를 해결해야 할 것이다. 소비자 이해도가 낮다 보니 마케팅에 많은 비용을 들여야 하고 수급이 좋으려면 많이 수입해야 하는데 생산자가 물량이 되지 않으며, 그러다 보니 운송비, 보관비, 병당 단가 관점에서 가격이 올라갈 수밖에 없는 태생적 어려움 때문이다. 와인의 양조 등에 대한 관점은 이미 많은 글과 기사에서 언급되었으니 이 글에서는 시장 관점에서 어떻게 잘 정착될 것인지에 대한 관점으로만 이야기 하겠다.           


1. 매우 중요한 온 마켓과 소믈리에의 역할     


마치 와인의 초기 시장과 비슷하다. 나는 유명한 포도원들 이름은 거의 다 알지만 최근에 뜨는 내추럴 와인 생산자 이름은 거의 모른다. 나도 백지상태인 셈이다. 이들의 이름을 꼭 외워야 할 이유, 그리고 그들의 와인이 좋은 이유를 알 수는 없다. 그래서 이 와인을 고객들에게 소개하는 소믈리에들의 역할이 크다. 그리고 시음 방법도 조금은 까다롭기 때문에 이에 대해서는 소믈리에들의 공부와 여러 실험적인 노력들이 필요할 것이다.     


시음회를 열고 일반 대중들이 접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 역시 1차적으로는 수입사 역할이나 2차적으로는 소믈리에들의 역할도 클 것이다. 레스토랑의 음식과 내추럴을 매칭하는 것 역시 소믈리에들의 소임일 것이니 이전과는 다른 노력들이 필요할 것이다. 공부하지 않고 그냥 시음만 한 뒤에 내추럴 와인을 소개하는 소믈리에와 정확하게 음식과 내추럴 와인의 특성에 대해 이해하고 고객을 응대하는 소믈리에를 둔 레스토랑 사이의 매출과 인지도는 상당한 차이점을 보여줄 것임에 틀림 없다.    

     

2. 토론은 합리적이고 차가우며 과학적으로     


얼마 전에도 페이스북에서 내추럴 와인에 관한 여러 토론들을 볼 수 있었다. 내추럴과 컨벤셔널로 나눌 것이냐, 내추럴을 마케팅 키워드로 악용하는 곳이 있지 않느냐 등등 여러 이야기들이 있었다. 민감한 사안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것은 언제나 냉정하고 과학적인 자세, 그리고 내 것이 틀린 것을 인정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그런데 토론이 논쟁으로 되는 경우는 추상적, 혹은 정성적으로 이해하고 있는 개념을 명징하게 구분되는 개념으로 이해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다른 분야로 잠시 예를 들자면, 천체물리학에서는 명왕성을 행성으로 볼 것이냐 아니냐를 가지고 오랜 기간 논리적으로 토론해 왔다. 국제학계에서는 아니라고 결론을 내었지만 속내로는 미국과 유럽 천문학계의 주도권 싸움이라는 말도 있다. 어느 경우든 아직도 게임은 끝나지 않았다. 사실 내추럴 와인을 무엇이라 정의하며 컨벤셔널 와인이란 무엇인가 하는 문제역시 우리가 내릴 정의도 아니고, 앞으로도 오랜 기간 다듬어질 개념일 뿐이다. 다만 토론할 때에 어떤 근거로 컨벤셔널을 정의할 것인지에 대한 외국의 사례, 과학적 사례 등을 함께 이야기하며 정리를 해야 할 것이다. 외국의 것이 정답도 아닐 것이고 우리가 생각하는 것이 꼭 틀리거나 권위가 낮은 것도 아닐 것이다. 오랜 생각과 타인의 논리에 대한 진지한 분석에서 좀 더 정교한 분석이 나올 것이다.     


이 것이 중요한 이유는 잘 못 했다가는 감정적 문제로 전환되어 시장 자체에 혼란을 주고 편가르기를 만들 확률이 높다는 것이다. 뒤따르는 것은 상호 비난만 남을 것이다. 매우 작은 시장 내에서 특정 분야가 성장하기 위해서는 보다 냉정한 자세가 필요한데 상호간 비난이 늘어나면 시장 전체적으로는 좋은 영향을 주지 못한다. 일일이 예를 들기는 어려우나 제 3자의 입장인 내 귀에 듣기도 거북하다면 타인의 귀에는 당연히 거북할 것이다.          

3. 초기 시장 진입 투자자들에게 박수를     


어느 산업군이든 경쟁자를 물리치고 내 영역을 키우고 싶은 생각은 누구나 가지고 있다. 그러나 내추럴의 경우 소량, 시장에 풀기까지 안정화 기간, 마케팅의 어려움 등 선투자 규모가 대단한 분야다. 그런데 소비자들에게는 결과물로서 하나의 와인만 존재할 뿐이다. 이 사이에 묶이게 되는 자금은 수억 원 수준이 아니라 내 추산으로는 수십억 원 단위가 될 것이라 생각한다. 그리고 물론 투자에 대한 결과를 기대하기는 하겠지만 그 시간은 대단히 길 것이다. 그러나 시장이 무르익기 시작할 때에는 이러한 노력이 파뭍히는 경우가 많다.     


나는 이탈리아 와인을 전문적으로 수입하는 비노비노라는 수입사를 여전히 존경한다. 지금 국내에서 주력으로 팔리고 있는 많은 이탈리아 와인들이 초기에 비노비노를 거쳤다. 시간이 지나면서 수입사들의 라인업에 변화가 발생할 수 있으며 때로는 특정 와인의 수입사가 변하게 될 수도 있다. 이러한 과정은 거칠지 않고 정중해야 하며, 과거보다는 좀 더 신사적인 방법으로 이루어져야 와인의 가격도 잘 유지되며 시장도 성장할 것이다. 그 과정은 서로간에 수입하는 와인에 대한 존중과 함께 선행 수입자들에 대한 보이지 않는 존중에서 출발되어야 할 것이다. 그래야 수입사들도 더욱 힘을 내어 더 좋은 와인을 열정적으로 수입할 것이다.      

   

4. 마케팅은 공동으로 추진하는 노력을     


이러한 시점에 소비자들에게 조금이라도 오해가 발생 된다면(나쁜 버징을 들 수 있겠다) 오히려 여론은 나빠질 수밖에 없는데 작은 수입사들의 노력만으로는 어려운 부분이 많다. 와인 업계 관계자들과 이야기하다 보면 종종 큰 수입사와 중소수입사들의 역할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는 경우가 많다. 약간 불편하게 들릴 수 있겠으나, 지금까지 형태는 큰 수입사들이 중소수입사에서 잘 나가는 와인을 몇 년간 관찰한 뒤, 그 와인의 브랜드가 잘 익으면 수입 물량을 대량으로 늘리겠다는 달콤한 제안으로 그 브랜드를 인수하는 형태들이 많았다고들 주장되고는 한다. 이 부분에 있어서 개인적으로 공식적인 의견은 없으나, 내추럴은 그런 형태를 갖추기에는 부르고뉴 크뤼 와인들 이상으로 유통이 까다롭기 때문에 직접 참여 보다는 유통체계 지원 쪽으로 흐르게 될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한다. 비즈니스 세계는 매출과 수익으로 설명되기에 정글의 법칙에 자비는 없을 것이다. 현 단계에서 볼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은 비용 절감이라 볼 수 있으며 통관이나 식검이 특히 까다로운 내추럴 와인은 서로간에 공동 대응을 하는 방법도 생각해볼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살롱오 같은 이벤트도 좋은 기획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다만 아직 일부 기업들의 노고와 희생이 너무 많이 강요당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노력의 비용을 분산하고 위험도를 낮추면 소비자들은 내추럴 와인에 더 많은 관심을 가지게 될 것이고 시장의 성장도 더 빨리 이루어지지 않을까 생각 해 본다.     


마지막은 지독한 사견인데, 내추럴 와인이 잘 만들어질수록 내추럴 와인인지 모르게 되는 것 같다. 그리고 결과물은 지독스럽게 맛있는 와인이 나오는데 지금까지 두번 가량 만났다. 장기 숙성에 대해 논쟁들 하는데 내 경험으로는 20년 지나도 아직 어린 와인이 제법 있다. 보관 방법은 상대적으로 까다로우므로 수입사가 잘 보관한것을 마실 때 바로 구매하는 것이 더 좋을 수 있다. 까다로운 만큼 맛으로 보답하는 것이 내추럴이다. 그리고 많이 마시면 취하고 간이 손상되는 진리는 변함이 없으니 과유불급이다. 와인을 구분짓는 기준으로 볼 때 내추럴 와인∈(유기농와인∪비오디나미 와인) 공식이 적절하지 않을까 싶다. 어느 경우든 맛이 있고 가격이 합리적이라면 소비자는 반드시 선택한다는 만고불변의 진리가 내추럴에도 적용된다고 굳게 믿는다.     


ps. 두 개의 와인이 뭔지 궁긍하면 이메일로 문의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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